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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렌고 신부와 몽골 복음화의 속삭임

지난 4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몽골 울란바토르의 지목구장 주교로 임명된 조르조 마렌고 신부의 주교 서품식이 8월 8일 오전 10시 토리노 콘솔라타 대성당에서 거행됐다. 46세 피에몬테 출신인 그는 선교지 신생 교회의 목자다.

Benedetta Capelli / 번역 박수현

몽골은 이탈리아의 5배 크기의 국가다. 한 마을과 다른 마을 사이에는 광활한 초원이 놓여있다. 350만 명의 주민 가운데 약 1300명이 세례를 받았다. 전체 인구의 30퍼센트가 유목민이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몽골 교회는 변방의 교회이자 작은 교회이지만, 고요하고도 사려 깊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곳이다. 가장 힘든 순간에 함께 의지하려는 위대한 사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몽골 교회는 몇 명의 수도자들의 헌신이 자양분이 되어 성장했다. 그 수도자들은 이곳의 (특별한) 공동체 의식과 형제애를 느낀다. 사제는 목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실제로 사제에게서 양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몽골 소녀와 함께 있는 조르조 마렌고 신부
몽골 소녀와 함께 있는 조르조 마렌고 신부

추위 속의 선교

1901년 복자 요셉 알라마노가 창설한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는 2003년부터 몽골 우바르칸가이 지역의 아르바이헤어에 파견됐다. 주요 활동은 소규모 양떼를 돌보거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요구사항을 돕는 일이다.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활동, 공공 샤워시설, 여성들을 위한 공예 프로젝트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 보육 센터와 알코올 중독 남성들의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침묵의 전령이 아닌 증거자

조르조 마렌고(Giorgio Marengo, I.M.C.) 신부는 1974년 이탈리아 쿠네오에서 태어났다. 17년 동안 쿠네오에서 지낸 후 토리노로 이주했다. 로마에서는 스카우트와 신학 공부를 했으며 선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품을 받은 후 대부분 몽골에서 사목활동을 펼쳤다. 지난 4 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렌고 신부를 울란바토르의 지목구장 주교와 카스트라 세베리아나 명의 주교로 임명했다.

불교 공동체와의 만남
불교 공동체와의 만남

오늘(8월 8일) 오전 10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님이 토리노의 콘솔라타 대성당에서 주교 서품식을 주례하시면서 조르조 신부님을 “중요한 기준점”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조르조 신부님은 몽골이 아닌 이곳 이탈리아에서 주교품을 받으셨지만 몽골로 곧바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에서 시행중인 코로나19 규정으로 인해 현재 매우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 미사를 거행할 장소가 폐쇄됐고, (몽골에) 입국할 수 있는 비자도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주교 서품식을 거행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몽골에서 주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온전히) 거저 베푸신 주님의 크신 은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몽골로 보내시며 저에게 말씀하신 소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서 말입니다. 저는 몽골에서 주교가 되는 것이 초기 교회의 주교 직무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또한 오늘날 몽골에서의 선교와 매우 유사합니다. 몽골에서 교회는 매우 작은 현실입니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주님을 따르고자 큰 용기와 책임감으로 가톨릭교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택한 몽골 신자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몽골에서 주교가 되는 것은 사도들이 초기에 경험했던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몽골의 그리스도교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고대에도 그리스도교가 (이미) 존재했습니다. 1000년 전에는 이른바 ‘네스토리우스파’라고 불리는 시리아 기원의 그리스도교가 존재했으며 몽골에도 뿌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단했던 몽골 제국시대 이후 다양한 역사·문화적인 이유로 그리스도교적 관습이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반면, 불교-티베트 전통이 (훨씬) 우세해지면서 몽골 불교라 불리는 매우 독창적인 불교 형태가 활성화됐습니다. 사실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가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몽골 내) 그리스도교가 훨씬 오랜 역사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근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유입된 새로운 종교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몽골에서 주교가 되는 것은 매우 큰 선물인 동시에 큰 책임감을 함께 느끼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도 (매우) 떨리는 동시에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 갖는 아름다운 의미에서 (커다란) 무게감을 느낍니다. 동시에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선교의 진정한 의미에 더 가깝게 이르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주교가 되는 것은 확실히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해, 곧 그들이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더 깊이 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아직 복음을 만나지 못한 사회도 고려해야 합니다.”

마렌고 주교님이 쓰신 박사 논문 제목은 「영원한 푸른 하늘의 땅에서 복음을 속삭이기」(Sussurrare il Vangelo nella terra dell'eterno cielo blu)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다른 인터뷰에서 마렌고 주교님은 우선 ‘경청’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속삭임, 침묵, 경청 등 이 세 가지는 공동체에서 살면서도 매우 밀접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선에서는 어떤 ‘속삭임’으로 살아가야 하나요?

“우선 이 표현은 인도 구와하티의 은퇴 대주교님인 토마스 메남파람필(Thomas Menamparampil) 대주교님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메남파람필 대주교님은 위대한 선교사이자 하느님의 위대한 사람, 그리고 이 창조적인 직관을 갖춘 아시아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선교에 대해, 아시아의 중심에서 복음을 속삭여야 한다고 묘사하셨습니다. 메남파람필 대주교님은 이를 아시아 전반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었으나, 저는 이를 (특히) 몽골에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단순한 방법입니다. 조금은 암시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선교는 우선 우리를 보내시는 주님을 향한 깊은 경청과, 우리 안에 거처하시고 활력을 주시는 성령을 향한 깊은 경청, 그리고 민족들을 향한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민족들은 깊은 뿌리를 지닌 그들의 역사와 문화로 이뤄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자주 말씀하셨듯이, 그리고 그 이전에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도 말씀하셨듯이, 선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조건)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받고 있는 은총의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도) 내어준다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로 간의) 진정한 공감을 위해 우리를 보내신 주님과 우리가 파견된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도록 시간을 바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는 (그들의) 언어를 알고 공부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사람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가치관과 역사, 문화·종교적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다듬는 걸 뜻합니다. 아울러 이 모든 일을 위해서는 복음 자체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는 때때로 위험을 무릅쓰기 위해 침묵의 전령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받은 이 소중한 진주를 크나큰 겸손과 진심을 다해 바치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주님과 친교를 나누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그러므로 '속삭임'은 여전히 ​​용기 있는 선교행위이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과 맥락에 맞는 형태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행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갖고 있던 삶의 가치관에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동시에 그들에게 깨닫는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인간이 되심,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생애의 매순간마다 발견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 복음이 (몽골인들에게는) 낯설고, 다르고, 도발적으로 보이더라도, 이 복음을 전파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전례를 주례하고 있는 조르조 신부
전례를 주례하고 있는 조르조 신부

선교지에서 정말 많은 사업이 있었습니다. 조르조 주교님이 쓴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 입문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기보다는 사랑을 드러낸 사업이었습니다. 복음화돼야 하는 선교지이자 이전에 살았던 삶과는 거리가 먼 이 땅에서, 조르조 주교님이 체험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핵심 키워드는 ‘무상’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 앞에 있는 당신이 저에게서 무슨 대답을 어떤 식으로든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조건을 기대하는)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복음에 나와있듯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과 행동,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이 모든 방법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노력하신 이유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헌신하며 그들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기본입니다. 우리는 활동주의 뒤에 숨으려는 마음을 언제나 경계해야 합니다. 활동주의는 때론 우리의 기분을 좋고 편하게 하며 어쩌면 그렇게 투명하지 않게 하고 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게 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필수적인 일부터 시작해 사람들의 요구사항들을 해결하고자 답을 찾아가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내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선교직을 통해 인류의 많은 상처, 빈곤의 상황, 사회적 불의,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든 극복하고 뿌리뽑고자 하는 사회의 불의와 차별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이타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과 너그럽게 할 수 있는 일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이를 목격한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심 없는 사랑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가 제안하는 것을 반드시 고수하거나 따르기로 단번에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우리 삶의 요점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될 것이므로, 저는 그 자체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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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8월 2020,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