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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피살 40주년

19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장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 집전 중에 피살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를 “신앙의 순교자”로 선언하고 2018년 성인품에 올렸다.

Seàn-Patrick Lovett / 번역 김단희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의 아버지는 아들이 목수가 되길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려서부터 고장나고 부러진 것을 고치는 데 재능이 있었다. 

국가

1977년 오스카 로메로 주교가 산살바도르대교구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엘사바도르는 ‘고장난’ 상태였다. 국민의 대다수는 가난에 시달리고, 엘리트 집단이 나라의 모든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부가 관리하는 ‘암살단’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암살단

로메로 주교가 대교구장으로 임명되고 불과 3주만에 절친한 친구였던 예수회 사제 루틸리오 그란데(Rutilio Grande)가 암살단에 피살됐다. 산살바도르대교구에서는 이후 3년 동안 5명의 사제가 암살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독재 정권

1979년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로메로 대주교는 주간 라디오 강론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는 방송을 통해 현정권과 정권의 지지 세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그들이 자행하는 납치, 고문, 대학살 등을 고발했다. 

이 시절 로메로 대주교는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로 알려졌다.

내전

나라 안의 사회적 긴장감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져 1980년부터 12년 간 7만5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로메로 대주교는 압제의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사목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군부의 인권 침해를 비난하고 빈민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옹호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 나갔다.

호소

로메로 대주교는 정부군에게 자국민 살해를 멈춰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명령을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여러분께 간청합니다.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압제를 멈추십시오!”

이 호소가 그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이 됐다.

피살

1980년 3월 24일 월요일 오후 6시 30분, 로메로 대주교는 ‘하느님의 섭리’ 병원 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이윽고 건물 바깥에 자동차 한 대가 멈춰서고 괴한 한 명이 내리더니, 성당으로 진입해 로메로 대주교의 심장에 한 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사건 직전 로메로 대주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은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 하나처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시성

2015년 5월 23일 로메로 대주교는 “신앙의 순교자”로 복자품에 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0월 1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를 시성했다. 이날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 당시 하고 있었던 피 묻은 허리띠를 착용했다.

 

 

“더 가지려 하지 말고, 더 나아지려 하십시오.”  - 성 오스카 로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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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월 2020, 2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