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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사 마리아 에핑어 알폰사 마리아 에핑어 

복녀 알폰사 마리아 에핑어, 니데브롱의 신비가

9월 9일 주일 오후 2시30분. 새 복녀의 탄생일이기도 한 이 날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대성당에서 시복식이 거행됐다. 이곳은 (새 복녀가) 지극히 거룩한 구세주의 수도회를 설립한 곳이기도 하다. 수녀회는 이후 두 개의 독립된 수녀회로 갈라졌다. 교황을 대신해 시성성 장관 조반니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이 시복 미사를 집전했다.

“고통을 참고 침묵하며 기도하라. 하느님께서는 네가 위대한 성녀가 되길 바라신다.” 엘리사벳 에핑어(Elisabeth Eppinger: 그녀의 세례명은 엘리사벳이였으나, 서원을 한 뒤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에 대한 존경심으로 ‘알폰사 마리아’라는 수도자명으로 불리게 됐다)는 이 말을 어린 시절부터 전 생애 동안 되뇌었다. 그녀는 주님께서 내리신 모든 시련을 견뎌낼 힘을 자신의 깊은 신앙에서 길어 올렸다. 비록 신비체험을 거쳐 신비가의 명성을 얻었지만 악마의 공격을 견뎌야 했다. 비록 수많은 수녀들의 어머니가 됐지만(오늘날 세 수녀회 모두 그녀를 창립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겨우 쓸 줄 아는 정도의 교육만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혜로웠으며 겸손한 인품을 평생 동안 유지했다.

질병으로 힘들었던 유년기

엘리사벳은 19세기에 수차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국경이 변경됐던 알사지아(Alsazia)와 로레나(Lorena) 사이의 평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는 시골 출신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11명의 자녀 중 장녀로 자라며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다. 이런 조건은 그녀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집안의 큰일을 도맡도록 했다. 이어 큰 고통도 따라왔다. 곧, 허약한 건강상태 때문에 자주 몇 달 동안 침대에 누워지내야 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이) 부모와 형제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그 시간의 대부분을 기도와 흠숭을 통해서 하느님과 함께 보냈다. 정규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14세가 됐을 때 비로소 첫 영성체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곧, 성찬례가 평생 동안 그녀를 유지시켜준 힘이 된 것이다.

특별한 선물인 탈혼

질병과 고통은 그녀에게 또 다른 경이로운 선물을 마련했다. 1846년, 특별히 길고 힘겨운 시기 동안 그녀는 처음으로 탈혼을 체험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가까이 계시며 자신에게 말씀하시고 자신을 위로하신다는 걸 구체적으로 느꼈다. 그녀는 유체이탈을 체험했다. 이러한 체험 동안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모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고 재촉하시면서 그녀 자신의 죄를 보여주셨다. 이어 사제들의 시급한 성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함으로써 교황과 교회의 고통에 참여하게 하셨고 정치적 성격의 환시도 보여주셨다. 그녀는 이러한 모든 내용을 고해신부에게 말했고 그 신부는 주교에게 이를 알렸다. 이들 모두는 이 여인 안에 투시력, 예언,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은사가 주어졌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기적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비록 엘리사벳이 사람들의 소란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 부모의 집으로 향했으며 충고나 위로를 얻기 위해 그녀와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녀를 통해 그런 은사를 허락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분명히 하면서, 그녀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는 악마의 유혹을 받던 시기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처럼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제게 그토록 많은 은혜를 베푸십니까?” 바로 그 기간 중에 훗날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가 된 아르스의 본당신부가 겪었던 체험과 비슷한 체험을 했다.

매우 특별한 카리스마

그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는 질병과 고통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이 질병과 고통은 어느 순간 주님께서 수녀회를 설립하도록 그녀를 부르셨던 새로운 수도회 카리스마의 중심이 됐다. 사실, 그녀로 인해 발생한 소란에 대해 신중을 기하기 위해 당시까지 관할 주교는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다른 모든 염원에 앞서 원했던 수도회(리보빌레의 거룩한 섭리의 수녀회) 입회를 보류시켰다. 1849년 엘리사벳은 다른 젊은 수녀들과 함께 지방 사투리로 “작은 수도원(piccolo convento)”이라고 알려진 집으로 옮겨 단순한 규칙을 세웠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9일 주일 삼종기도에서 칭송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곧, 영육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과 태도를 복음 안에서 관상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세주의 딸 수녀회(Figlie del Divino Redentore)는 참된 사랑의 선교사로서, 물질적이고 영적인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종교나 사회적 신분의 차별 없이, 가장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사랑은 나눔을 통해 늘어나기 때문에 점차 14개의 집들이 “작은 수도원”으로 태어났다. 훗날 크림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수도자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섬겼다. 하느님의 섭리는 계속해서 다른 성소자들을 보내시는 아량을 베푸셨다. 국경을 넘어 수도회의 가족 수도회 2개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로 뻗어 나갔다. 이들은 훗날 각기 독립적인 수도회 모습을 갖춰 나갔다. 오늘날 이미 5개 대륙에서 일하고 있는 수도자들의 귀에는 다음과 같은 창립자의 말이 울려 퍼지고 있다. “병자들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병자들을 거부하는 것은 구세주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9 9월 2018,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