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한 우크라이나의 젊은 군인의 묵주와 신약성경을 들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수요 일반알현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전사한 우크라이나의 젊은 군인의 묵주와 신약성경을 들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수요 일반알현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Divisione Foto)

교황, 가자지구서 사망한 인도주의 활동가 애도 “전쟁의 광기 속에서 너무 많은 젊은이가 죽어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3일 수요 일반알현 말미에 이스라엘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의 인도주의 활동가 7명을 기억했다. 교황은 가자지구의 “분쟁을 확대하려는 모든 무책임한 시도”를 그만두고 전쟁에 종지부를 찍자고 호소했다. 아울러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우크라이나 군인 알렉산드레의 유품(묵주와 성경)을 신자들에게 공개했다. “이 젊은이와 전쟁의 광기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다른 이들을 생각하며 잠시 침묵했으면 합니다. 전쟁은 언제나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Salvatore Cernuzio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3일 수요 일반알현을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2만5000여 명의 신자들을 반쯤 눈을 감고 바라보며 심호흡을 두 번 했다. 교황은 말하기 전 감정을 억누르는 듯 입술을 꽉 다문 다음, 방금 전 수행사제가 건넨 원고에 시선을 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중동에서 슬픈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

“저는 가자지구에서 즉각적인 휴전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합니다.”

월드센트럴키친 인도주의 활동가 사망에 유감 표명

가자지구에 대한 교황의 호소가 지난해 10월 7일 분쟁 발발 이후 계속되었다. 하마스측 가자지구 보건부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3만2900명이 사망했다. 이 수치에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민간인에게 식량을 나눠주다 사망한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인도주의 활동가 7명이 더해졌다. 이스라엘군의 드론 한 대가 WCK 구호차량을 세 차례 폭격했다. 미국·캐나다 이중 국적을 지닌 팔레스타인인 2명을 비롯해 호주, 영국, 폴란드 시민 5명으로 구성된 WCK 인도주의 활동가 7명은 공격을 받지 않도록 모든 예방조치를 취하며 이스라엘방위군(IDF)과 사전에 합의한 경로로 이동하고 있었으나 모두 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 사건은 국제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사건을 두고 “우리 군이 의도치 않게 무고한 이들을 공격한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전시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생한 새로운 희생자들에 대한 교황의 슬픔은 매우 크다.

“가자지구에서 식량 지원 활동을 하다 희생된 인도주의 활동가들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그들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황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황

인도적 지원과 인질 석방에 대한 접근

교황은 “지치고 고통받는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다시금 요청하는 동시에, 지난해 10월 7일 잔혹한 공격으로 납치돼 여전히 하마스의 포로로 붙잡힌 이스라엘측 “인질들을 즉각 석방”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이 지역의 분쟁을 확대하려는 모든 무책임한 시도”를 삼가하고, “세상 곳곳에 끊임없이 죽음과 고통을 초래하는 이 전쟁과 다른 전쟁들도 하루빨리 종식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23세에 전사한 우크라이나의 군인이 남긴 묵주와 신약성경             

이스라엘 성지에서 전 세계로 시선을 돌린 교황은 “너무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있는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를 기억했다. 이어 한쪽으로 몸을 돌려 군용 위장 표지로 감싼 소책자와 작은 검정가방을 집어 들었다. “저는 전쟁에서 전사한 한 병사가 남긴 묵주와 신약성경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알렉산드레, 당시 23세였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도미니코 관상수녀회 소속으로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며 우크라이나 분쟁 초기부터 지원활동에 헌신해온 루시아 카람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즉위 11주년을 맞이한 지난 3월 13일 알렉산드레의 유품을 교황에게 직접 전달한 바 있다. 당시 루시아 수녀는 바오로 6세 홀 서재에서 수요 일반알현 직전에 아브디카에서 전사한 바흐무트 출신의 젊은 군인의 묵주와 성경을 교황에게 전달했다. 그 묵주와 성경을 일반알현 참석자들에게 공개한 교황은 “그 군인은 성경과 시편을 읽으며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시편 130,1-2)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젊은 청년의 앞길은 창창했지만 세상을 떠났다”며 “이것이 그가 읽고 기도한 묵주와 신약성경”이라고 덧붙였다.

“저는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이 젊은이와 전쟁의 광기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다른 이들을 생각하며 잠시 침묵했으면 합니다. 전쟁은 언제나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그들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전사한 우크라이나의 젊은 군인의 묵주와 신약성경을 손에 든 교황
전사한 우크라이나의 젊은 군인의 묵주와 신약성경을 손에 든 교황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교황이 눈을 감고 잠시 기도하는 동안 광장엔 바람 소리만 들렸다. 모두가 기도하며 로마 주교(교황)의 기도에 동참했다. 아울러 교황은 폴란드어권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전하며 며칠 후(부활 제2주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선포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라고 떠올렸다. 이어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가 전한 메시지를 상기하며 기도를 요청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결코 의심하지 말고, 변함없는 믿음으로 우리의 삶과 세상을 주님께 의탁하며, 특히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을 위해 정의로운 평화를 간구합시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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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4월 2024,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