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영원히 남습니다. 선을 행하는 이는 영원에 투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 삼종기도에서 돈, 성공, 외모, 육신의 행복 등 지상적인 것들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직 사랑만이 남을 것이라며 “선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전례에 나오는 복음 구절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마르 13,24-25). 그렇다면 주님께서도 재앙을 내리신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이런 것은 그분의 의도가 분명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먼저든 나중이든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궁창(firmamento)” – 이 단어는 “견고함(firmezza)”, “안정성(stabilità)”을 나타냅니다 – 을 형성하는 태양, 달, 별들은 사라질 운명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끝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흔들리지 않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31). 주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라질 운명에 처한 ‘영원하지 않은(penultime)’ 것들과 끝까지 남아 있는 ‘영원한(ultime)’ 것들을 구별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위한 메시지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를 안내하고, 인생에서 무엇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 있는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메시지입니다. 지나가는 것들입니까, 아니면 영원히 남는 주님의 말씀입니까? 명백히 주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반면, 주님의 말씀은 비록 아름답더라도 즉각적인 만족을 넘어 인내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에 집착하는 유혹을 받으며 그것들이 우리에게 더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인간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혹입니다. 이런 것은 속임수입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인생을 모래 위에 짓지 말라는 초대입니다. 집을 지을 때는 땅을 깊이 파서 튼튼하게 기초공사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업을 위해 돈을 낭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오직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충실한 제자란 자신의 삶을 사라지지 않는 주님의 말씀인 반석 위에(마태 7,24-27 참조), 예수님 말씀의 굳건함 위에 짓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의 기초입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물음을 –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봅시다. 하느님 말씀으로 뛰는 심장은 무엇이며, 핵심은 무엇인가?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이를 말해줍니다. 그 핵심, 바로 그 고동치는 심장, 확실함을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 다시 말하자면, 사랑입니다. 선을 행하는 이는 영원에 투자합니다. 우리가 너그럽고,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온유하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을 볼 때, 시기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은 사람을 볼 때(1코린 13,4-7 참조), 이런 사람은 지상에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눈에 띄지 않고, 화려한 경력도 없으며,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겠지만, 그 사람의 행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은 영원히 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자문해 봅시다.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는가? 돈, 성공, 외모, 육신의 행복 등 지나가버리는 것에 투자할 것인가? 이런 것들 중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처럼 세속적인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가? 우리가 젊고 건강할 때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지만, 세상을 떠날 시간이 오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무대는 지나간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오직 사랑만이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한 삶을 산다는 것은 역사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현실로 몰입하여 그 현실을 튼튼하게 하고, 사랑으로 변화시키며, 영원의 표징, 곧 하느님의 표징을 새기는 일입니다. 중요한 선택을 하기 위한 하나의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결정적인 선택이나 중요한 선택,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예수님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사랑이신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거기, 주님의 면전에서, 영원의 문턱에서 현재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 오늘을 위한 결정을 내립시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곧, 항상 영원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쉽지 않은 결정일지 모르고, 가장 즉각적인 선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 가장 확실한 결정일 것입니다(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영신수련』, 187 참조).

성모님께서 사랑에 따른 선택, 하느님에 따른 선택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모님의 도움을 받아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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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1월 2021, 19:50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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