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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항상 베드로의 믿음 위에서 전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23일 연중 제21주일의 삼종기도에서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언급하며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신지”, 그리스도가 각자의 삶과 의무에서 중심이신지 자문해보도록 초대했다. 아울러 교황은 연대의 활동에서도 타인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복음(마태 16,13-20 참조)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의 신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 고백은 예수님 몸소 물으신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이 당신과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걸음을 떼어놓도록 이끄시려 하셨습니다. 사실 당신을 따르는 이들, 특히 열두 사도와 함께하셨던 예수님의 모든 여정은 그들을 위한 신앙교육의 여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3절) 사도들은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우리 모두와 같이 말입니다. 가십(소문)을 좋아합니다. 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심혈을 기울일 정도로) 아주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 얘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신상 털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뜬소문이 아니라 이미 확립된 신앙의 관점을 요구합니다. 곧, 이러한 물음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어쩌면 그들 자신도 많은 부분 공유하고 있던 다양한 의견들을 앞다투어 말하는 듯 보입니다. 그들 또한 (그런 의견에) 동조했던 겁니다. 요컨대, 나자렛 예수님은 예언자로 여겨졌습니다(14절 참조).

예수님은 두 번째 질문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을 건드리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 이 시점에서 약간의 침묵이 감도는 순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있던 각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를 드러내며 이에 투신하라는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가장 합당한 머뭇거림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당신에게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고 해도, 약간 머뭇거리실 겁니다. 시몬 베드로는 단숨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라는 고백으로 당혹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렸습니다. 매우 빛나고 충만한 (베드로 사도의) 이 대답은 관대한 마음에서 비롯된 충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특별한 은총의 결실이었습니다. 물론 베드로 사도는 관대한 사람이었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17절). “살과 피가 아니라”, 다시 말해 “네가 공부했던 교육이나 문화가 알려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것이 너에게 계시해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은 아버지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은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청해야 할 은총입니다. “아버지, 예수님을 고백할 은총을 저에게 주십시오.” 동시에 주님은 은총의 영감에 힘입은 베드로의 즉각적인 응답을 인정하시며, 이어 엄숙한 말투로 다음과 같이 덧붙이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8절).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시몬에게 주신 “베드로”라는 새 이름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가 방금 드러낸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고, 하느님의 아드님은 이 반석 위에 당신의 교회, 곧 공동체를 건설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교회는 항상 베드로의 믿음 위에서, 예수님이 인정하시고 그를 교회의 우두머리로 삼으신 그 믿음 위에서 전진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을 듣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 각자에게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이에 대해) 이론적인 대답이 아니라, 신앙이 녹아든 대답을 해야 합니다. 곧 삶이 녹아든 대답 말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게 당신은 (…)”이라고,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말해야 합니다. 이 대답은 첫 제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에 대한 내적인 경청을 요구합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를 중심으로 모인 교회가 지속적으로 선포하는 내용과 조화를 이룰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깨닫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분이 우리 삶의 중심이신지, 그분이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모든 헌신의 (최종)목표이신지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당신에게, 그대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매일 이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우리 공동체의 사목활동이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빈곤과 위급상황에 열려 있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칭찬받을 일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언제나 신앙의 여정과 신앙의 완전함을 위한 주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행하는 이러한 자선 활동이나 연대의 활동이 주 예수님과의 만남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은 단순한 자선 활동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한 이의 얼굴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언제나 중심에 두고 사랑을 실천하는 진면모입니다. 믿으셨기에 복되신,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의 인도자요 모델이 되어주시고, 주님을 믿는 신앙이야말로 우리의 사랑과 우리 존재 전체에 충만한 의미를 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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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8월 2020,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