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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국립경기장 강론 “하느님의 자비를 나누기 위한 선교사들이 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1일 오후 방콕 국립경기장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강론을 통해 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첫 선교사들처럼 거리로 나가서 선교하는 제자가 되라고 당부했다. 또 여전히 관심 밖에 있는 모든 태국 형제자매들을 주님의 식탁으로 초대하라고 권고했다. 그들 중에는 매춘과 인신매매에 노출된 어린이와 여성들, 마약에 중독된 젊은이들, 집과 가족을 빼앗긴 이주민들, 착취 당하는 어부들, 잊혀진 노숙자들이 있다.

번역 김호열 신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군중들로 하여금 명백하고 확실해 보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하셨습니다. ‘누가 우리의 가족 구성원인가?’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인가, 아니면 우리가 속한 사람들이 우리 가족인가?’ 이 질문이 그들 안에서 충분히 울려 퍼진 다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의 종교적, 율법적 결정론들뿐 아니라 예수님 당신에 대한 특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든 과도한 주장을 깨뜨리십니다. 복음은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초대이며 조건 없이 주어진 권리입니다. 

복음이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짜여 있다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곧, 생명을 주고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초대하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대고 위기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질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새로움과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의 지평을 열어주는 질문들이기도 합니다. 스승님의 질문들은 항상 우리의 삶과 우리 공동체의 삶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새롭게 하길 원하십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11항 참조).

이러한 것들은 태국 땅에 도착한 첫 선교사들이 여정을 시작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요청에 응답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혈연, 문화, 지역 혹은 특정 그룹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큰 가족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힘에 감도되어 복음의 기쁜 소식에서 나온 희망으로 그들의 보따리를 채웠고, 그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이러한 가족 구성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찾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첫 선교사들은 항상 분열을 일으키는 모든 수식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에 마음을 열어야 했습니다. 성찬례를 모르는 많은 태국인 어머니와 형제들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받을 필요가 있는 모든 것에 마음을 열어야 했습니다. 신앙과 성경에 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 8항 참조).

그러한 만남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에는 여러분의 얼굴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태국인들의 미소를 대표하는 노래와 춤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우리의 모든 계산과 예측보다 훨씬 크며, 소수의 사람들이나 특정 문화적 상황으로 축소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계획을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하는 제자는 신앙의 용병이라거나 개종자들을 양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되돌릴 수 없는 화해의 은총을 함께 기념하고 축하할 수 있는 형제자매들과 어머니들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난뱅이입니다. 잔치상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거리로 나가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십시오(마태 22,4.9 참조). 이러한 파견은 기쁨과 감사와 완전한 행복의 원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벗어나 우리 존재의 가장 완전한 진리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되고, “바로 여기에 복음화 활동의 원천이” 있기 때문입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8항 참조).

이 땅에 가족적 포옹을 낳은 표징인 시암(태국의 옛 국가명)대목구가 설립된 지 350년(1669-2019)이 지났습니다. 그 먼 시간 이래로 오직 두 명의 선교사만이 씨앗을 뿌릴 용기를 지녔습니다. 그 씨앗은 태국의 삶에 기여한 다양한 사목적 시도 안에서 싹트고 자라났습니다. 이 기념일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희망의 불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결단과 동일한 힘과 동일한 자신감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복음에서 나오는 새로운 삶을 나누기 위해 기쁨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축제와 감사에 대한 기억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가족의 살아있는 지체가 되기로 결심할 때 선교하는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행하신 것처럼 타인과 나누면서 그렇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의 식탁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식탁과 이 세상의 식탁에는 죄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를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루만지셨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셨으며,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고 실제로 그들이 축복받은 사람임을 이해하도록 도우셨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11항 참조). 

여기서 저는 특별히 어린 소년소녀들과 여성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성매매나 인신매매에 노출되어 참된 존엄을 훼손당합니다. 저는 노예가 된 젊은이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꿈을 불태우고 눈을 가리는 마약과 무의미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저는 집과 가족을 빼앗긴 이민자들, 그리고 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친교에서 위로와 빛을 받지 못하고 힘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을 뒷받침해 줄 신앙 공동체도 없고, 삶의 의미와 목적도 없는” 고아들과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이들을 생각합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49항 참조). 저는 또한 착취당한 어부들과 무시 받는 노숙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 가족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우리 어머니들이며 형제들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그들의 얼굴, 그들의 상처, 그들의 미소, 그들의 삶을 박탈하지 맙시다. 그들의 상처에 하느님 사랑의 자비로운 기름을 발라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선교하는 제자는 복음화가 가입자 명단을 늘리거나 힘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선교하는 제자는 복음화가 우리를 한 가족으로 만드시는 하느님의 자비롭고 치유하시는 포옹을 체험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 문을 여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압니다.

사랑하는 태국 공동체 여러분,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모든 형제들의 얼굴을 기쁨 안에서 발견하고 만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첫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앞으로 걸어 나갑시다.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시고자 하시는 사람들이며, 또한 우리의 주일 만찬상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콕 국립경기장에서 미사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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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1월 2019,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