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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서명을 지니고 있는 것만이 시간 속에서 지속됩니다”

사도들의 용기는 성령에서 오며, 그 용기가 오늘날의 순교자들을 지탱해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8일 수요 일반알현 훈화를 통해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갔다. 이날 묵상의 주제는 식별의 은총, 곧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발걸음을 볼 수 있도록 성령의 음성을 듣는 능력이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

8.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도 5,39)

현명한 가말리엘이 제안한 식별의 기준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을 계속합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을 가로막는 유다인들에게 베드로와 사도들은 세상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할 수 없다고 용기 내어 대답합니다. 

이처럼 열두 사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깨우려는 “믿음의 순종”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로마 1,5 참조). 실제로, 그들은 오순절부터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시너지 효과를 경험합니다. 이 경험은 그들이 “우리와 성령”(사도 5,32) 혹은 “성령과 우리”(사도 15,28)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나”라고만은 말 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계약에 힘입어 사도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위협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상적인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도들이 겁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도망치고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겁쟁이에서 용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만약 우리 안에 성령이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길 것이며,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을 위해 많은 싸움을 이겨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포함한 모든 시대의 순교자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의 대담한 증인들로서 앞으로 걸어가는 데에 있어 뒷걸음을 치지 않습니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내어 놓으며,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만, 몇 년 전, 4년 전에 리비아 해변에서 참수당한 이집트 콥트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노동자였음에도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예수님, 예수님”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을 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현대의 순교자들입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분이 구원을 주는 말씀을 즉각 지체없이 전하라고 보내신 성령의 “확성기”입니다. 

실제로 이 결단은 유다인들의 “종교 체계”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위협을 느낀 유다인들은 폭력과 사형으로 응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항상 똑같습니다. 그리스도교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위협을 느끼며,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최고의회(산헤드린)에서 동료들의 반응을 저지하며 다른 의견을 낸 바리사이파에 속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이며, 신중한 사람인 가말리엘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사도 22,3 참조). 가말리엘은 발언권을 얻어 말하면서, 평소의 패턴을 벗어난 상황들에 직면했을 때 식별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그의 형제들에게 보여줍니다. 

가말리엘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몇몇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사람에게서 나온 모든 계획은 처음엔 호응을 얻지만 나중에는 흐지부지되어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이어 위에서 오는 모든 것들과 하느님의 “서명(firma)”을 지니고 있는 것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계획들은 항상 실패로 끝나며, 우리들처럼 유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정치적 계획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국가에서 보는 것처럼 그 정치적 계획들이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어떻게 바뀌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제국들과 지난 세기의 독재 정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스스로를 매우 강하다고, 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너졌습니다. 또 오늘날의 제국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사람의 힘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힘만이 지속적입니다. 많은 죄와 스캔들과 나쁜 일들이 있었던 2000년 동안의 그리스도인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생각해봅시다. (교회는) 왜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며, 자주 스캔들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구원하시고 그들은 나중에 구원하십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하느님께서는 항상 구원하는 분이십니다. 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가말리엘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몇몇 사람들을 가리켜 사람에게서 나온 모든 계획은 처음엔 호응을 얻지만 나중에는 흐지부지되어 없어질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의 추종자들이 사기꾼을 믿었다면 뿔뿔이 흩어져 버리겠지만, 만일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을 따르는 것이라면 그들과의 싸움을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도 5,39)라고 경고합니다. (이처럼) 그는 우리가 이러한 식별력을 갖추도록 가르쳐줍니다. 

이 말은 새로운 빛으로 그리스도인의 사건을 볼 수 있게 하고, “복음을 아는” 기준을 제시하는 평온하고 현명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아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마태 7,16 참조). 이는 마음을 건드리며, 원하는 효과를 얻게 하는 말입니다. 최고회의의 구성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사도들을 죽이려던 계획을 포기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식별하는 습관(habitus del discernimento)을 갖출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길 청합시다. 우리 시대와 우리 주변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걸어가시는 하느님의 표징을 통해, 구원 역사의 통일성을 항상 볼 수 있도록 성령께 기도합시다. 왜냐하면 시간과 인간들의 얼굴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메신저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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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9월 2019,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