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께는 어떤 죄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연중 제24주일의 복음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비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하고 말하며 투덜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삼종기도를 통해 그들의 이 말이 사실은 “경이로운 선포”라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루카 15,1-32)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루카 15,2)하고 말하며 투덜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사실 경이로운 선포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십니다. 이는 모든 성당에서, 미사 때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시는 성찬식에 우리를 흔쾌히 받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성당 문 위에 이런 글귀를 쓸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분을 비판하는 자들에게 대답하시며, 그분에게서 멀어졌다고 느끼는 이들에 대한 당신의 총애를 드러내주는 세 가지 비유를, 아주 놀라운 세 가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오늘 우리 각자 복음을 펼치고, 루카 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를 읽으면 정말 좋을 겁니다. 아주 놀라운 내용입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루카 15,4) (여기서)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누구입니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계산을 해보고 아흔아홉 마리를 확보하기 위해 한 마리를 희생할 겁니다. 반면 하느님께서는 체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마음 안에는 그분의 아름다운 사랑을 아직 모르는 여러분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러분이, 어쩌면 인생에서 일어난 불행한 일 때문에 사랑을 믿지 못하는 여러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 비유에 나오는, 주님께서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찾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그 작은 은전 한 닢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 비유는 여러분이 그분 눈에 소중하고, 여러분이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은 있는 그대로의 위치가 있고, 그 누구도 여러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그 누구도 하느님 마음 안에서 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비유에서 하느님께서는 방탕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시고, 지치지 않으시며, 마음을 놓지 않으십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 각자가 되찾은 아들이요, 되찾은 은전이며, 기뻐하며 어깨에 맨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깨닫기를 매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일을 저질렀고, 너무 망쳤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이 여러분의 삶을 바꾸실 수 있음을 아십니다.

그런데 복음의 핵심인 우리 죄인을 위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이 행동하는 태도가 그렇습니다. 큰아들은 그 순간에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아버지라는 의식보다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위험한 생각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보다 엄격한 하느님, 용서를 통해서보다 오히려 힘을 통해 악을 무찌르시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 구원하십니다. 강요가 아니라, 제안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큰아들은 마음이 닫히고, 더 나쁜 잘못을 저지릅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배신 당했다고 추측하며, 자기 생각을 정의의 토대로 삼아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아우에게 분노하고 아버지를 질책합니다. “아버지(당신)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30 참조). ‘당신의 아들’이라는 이 표현을 보십시오. 그를 ‘내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를 유일한 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을 때, 타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 또한 잘못을 범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혼자 힘으로, 선하신 하느님 도움 없이, 우리는 악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잊지 마십시오. 복음서를 펼쳐 루카 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를 읽으십시오. 아주 좋을 것이고, 여러분에게 구원의 말씀이 될 겁니다.

어떻게 악을 무찌를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용서와 형제들의 용서를 받으면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러 갈 때마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의 죄를 이기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습니다. 더 이상 죄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잊어버리십니다. 하느님께서 용서를 하실 때, 기억을 잃어버리시고, 우리의 죄를 잊어버리십니다. 잊어버리시는 겁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좋으신 하느님이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자마자 즉시 잘못된 일들을 떠올리는 우리와 같지 않으십니다.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을 지워버리시고,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만드십니다. 우리 안에 슬픔이 아니라 기쁨을 소생시켜주십니다. 마음속에 어둠이 아니라, 의심이 아니라, 기쁨을 다시 탄생시켜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하느님께는 어떤 죄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삶의 매듭을 풀어주시는 성모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억측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언제나 우리를 껴안아주시기 위해, 우리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주님께 나아갈 필요를 느끼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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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월 2019,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