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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AFP or licensors)

“기도하기 위해 작아집시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22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알현 훈화를 통해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을 마무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대담함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16.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아버지께 청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하느님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대담함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근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 기도문이 아니라 은총으로 들어간 자녀의 친밀감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계시해 주신 분이시며,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밀감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기도문을 우리에게 남겨 주시지는 않았다. 모든 소리 기도의 경우가 그렇듯이,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성부께 기도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766항).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해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복음서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입술에서 피어나는 이러한 기도의 표현들이 ‘주님의 기도’를 상기시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겟세마니의 밤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우리는 이미 마르코 복음의 이 대목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짧은 기도에서 ‘주님의 기도’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과 괴로움을 느끼시면서도, 자녀의 신뢰를 갖고, 하느님을 ‘아빠’라는 이름으로 부르시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십니다.

복음서의 다른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정신을 기르라고 강조하십니다. 기도는 지속적이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형제들의 기억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특히 형제들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 우리는 이 표현에서 ‘주님의 기도’와의 유사성을 어떻게 인식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례들은 수없이 많을 수 있습니다.

성 바오로의 서간에서는 ‘주님의 기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문의 존재는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아빠!’라는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는 놀라운 요약에서 나타납니다(로마 8,15; 갈라 4,6 참조).

루카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종종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하루는 제자들이 그들의 요구를 온전히 만족시켜 주시는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그러자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를 고려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첫 번째 주인공은 성령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주인공은 성령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우리는 성령의 힘 없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잘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령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청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기도의 주인공이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참된 기도를 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된 우리가 자녀답게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파신 ‘밭고랑’에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신비입니다.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삼위의 사랑의 대화에 매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때때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 내용과는 분명히 거리가 먼 표현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신 시편 22장의 첫 구절을 생각해 봅시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당신 아드님을 버리실 수 있을까요? 진정 버리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과 하느님이 멀리 계심을 경험하는 이 시점까지 우리 죄인들을 위한 사랑을 가져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당신이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뇌에 찬 외침 속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이 남아 있습니다. 이 “저의” 안에, 아버지와의 관계의 핵심이 있으며, 믿음과 기도의 핵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 핵심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상황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기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성경, 특히 시편의 모든 기도들을 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천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솟아났던 표현들을 통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우리 인류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결코 중단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그들 중 그 누구도, 특히 가난한 이들이 위로와 작은 사랑 없이 남겨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을 마치면서, 예수님의 다음의 기도를 반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기도하기 위해 우리는 작아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기도로 인도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22 5월 2019, 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