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술에서 폐허 가운데 한 군인이 소녀를 들어올리자 소녀가 미소 짓고 있다. 모술에서 폐허 가운데 한 군인이 소녀를 들어올리자 소녀가 미소 짓고 있다.  사설

소녀의 미소에 담긴 이라크의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순방은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파괴된 땅에 새로운 빛을 남겼고, 살아가기 위해 다시 일어서려는 이라크 국민의 평화와 형제애에 대한 갈망을 세상에 드러냈다.

MASSIMILIANO MENICHETTI / 번역 이창욱

“우리에겐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보고도 믿지 못했죠. 우리 나라는 정말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단순한 문장에 지난 3월 5일부터 8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했던 이라크 국민 전체의 희망이 담겨있다. 교황 순방의 이미지는 일순간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ISIS)의 점령 당시 ISIS의 수도였던 모술에 새겨졌다. 모술에서 수백만 개의 탄환에 구멍 뚫린 폐허 사이로, 파괴되고 손상된 교회들, 집들, 사원들이 보였다. 자기 형제를 부수고, 짓밟고, 절멸시키는 인간의 광기, 전투의 폭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공포가 만연해 보이는 그러한 상황에서, 교황은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노래하던 어린이들의 인사를 받았다. 교황과 어린이들이 만났던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포탄으로) 땅이 꺼진 빈터에서 놀고 있었고, 아스팔트는 중심가에만 남아 있었다. 분홍 꽃무늬 ‘투티나(tutina, 상하의가 일체형으로 된 의복)’에 슬리퍼를 신은 네댓 살의 한 소녀가 일행에게서 떨어져 뒤로 걸어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한 군인의 발치 앞에 멈췄다. 그녀는 군인 아저씨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

수류탄을 허리에 차고, 헬멧과 햇빛 차단용 선글라스를 쓴 군인은 고개를 숙이고 꼬마 숙녀의 눈을 바라본다. 소녀의 얼굴과 몸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다. 그들의 뒤편에는 집들이 있던 잔해만 남았다. 어두운 선글라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이 마주쳤고, 남자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 올렸다. 그러자 소녀는 미소를 터뜨렸다. 군인도 미소로 화답했다. 이 이미지에 이라크의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있다.

아브라함의 땅에 발을 내디딘 최초의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순방은 기념비적인 방문이었다. 교황은 무슬림들과 야지디족과 같은 소수 민족들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믿음 안에서 굳건하게 했고 용기를 북돋았다. 교황의 이번 순방은 (2년 전) 아부다비에서 수니파들과의 만남 이후 시아파들과의 교류를 시도했다는 점이나 교황이 (이라크에서) 받은 환대에 미뤄볼 때 역사적인 순방이었다. 특히 ISIS에 의해 자행된 전쟁, 폭력, 박해로 파괴됐지만, 이제는 코로나19 대유행과 빈곤의 재앙을 경험하고 있는 곳에 교황이 선과 해방의 빛을 가져갔다는 점에 있어서도 역사적인 순방이었다.

(이라크 순방 동안) 인상적인 것은 군인들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교황이 방문하는 곳은) 어디든지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다. 그들은 두터운 방탄 재킷을 입고, 수류탄이 장착된 벨트를 두르고, 정밀 바이저가 달린 헬멧을 쓰고, 중화기로 무장했다. (교황이 탑승한 차량 행렬에는) 기관총을 장착한 10여 대의 경호차량이 뒤따랐으며, 교황이 지나가는 곳에는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됐다. 작은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교황을 맞이하는 사람들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뒤편에는 출입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희고 노란 바티칸 시국의 수많은 국기가 바그다드, 나자프, 우르, 모술, 카라코쉬, 에르빌에서 철조망이 쳐진 장벽을 따라 휘날렸다.

2020년, 이라크는 약 1400건의 테러 공격을 받았다.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경제적 어려움도 극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두드러지게 거론되고 종종 유일하게 거론되더라도, 이라크는 단지 이러한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돕는 이들, 나눔과 재건의 현실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교황의 순방은 이라크에 또 다른 빛을 밝혔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이라크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환대, 전망, 미래라는 말로 표현됐다.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고통뿐 아니라, 과거에 고대문명의 요람이었고 평화로운 공존의 본보기였던 땅을 회복하면서, 이곳에 남으려는 뜻과 그들의 희망과 힘을 교황에게 전했다. 모든 이가 교황이 현자로서 언급한 말을 “위대한 말씀”으로 여기며 귀 담아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를 위한 빛이 되어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함께 기도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역사로 점철되고 다져진 이라크 국민은 테러와 근본주의의 저장소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증오를 극복하려 노력한다. 교황은 어둡고 죽음의 색으로 묘사하는 것을 듣는 데 길들여진 (이라크의) 현실에 새로운 누룩을 가져왔다. 교회와 이슬람 사원의 신자들을 보호하는 담벼락과 바리케이드가 쳐진 바그다드는 축제로 밝혀진 불빛이 소수의 주민들만 거주하는 건물들과 도시의 광장들을 번갈아 비췄다. 여러 양식으로 지어진 가난한 구역의 건물들엔 전투로 인한 균열이 가득했다.

교황은 순교자들을 기억했다. 또한 온갖 형태의 근본주의를 단죄하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했으며, 고통받았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바짝 다가갔다. (이라크의) 온 가족이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온 “평화의 사람(교황)”을 잠시라도 보려고 경찰 통제선 뒤로 모여들었다. 종교간 만남이 열린 칼데아의 우르에서는, 나자프 공항에서 우르까지 길을 따라 세워진 현수막들이 사막의 바람을 받아 나부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지구라트(Ziggurat, ‘신전의 탑’이라는 의미로 피라미드처럼 돌을 쌓아 올린 형태) 중 하나를 배경으로 한 이곳은 전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집이라 일컬어지는 곳으로, 대낮에도 하늘의 별이 보이는 곳이자, 교황이 땅에서 걷고 만남과 대화와 평화의 길을 건설하기 위한 나침반이라며 가리킨 창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참석자들은 여러 가지 언어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만남”이라고 말했다. 주민 대다수가 그리스도인인 카라코쉬 공동체의 기쁨과 감동은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교황은 ISIS에 의해 자녀들, 아내, 형제들이 피살되는 장면을 본 사람의 상처와 신앙의 증거에 귀를 기울였다. 교황은 살인자들을 위해 용서를 청하는 것에 감명했다. 이곳에서 교황이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축제의 옷을 입은 노인들과 젊은이들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교황에게 건넨 이라크 국민의 희망에 찬 인사는 수많은 이라크인들과 시리아인들이 피난처를 찾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쿠르드 자치구) 내 에르빌의 대형 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다. 이라크 전국에서 모여든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묵상과 침묵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마음에 품으며 교황과 함께 (이렇게) 기도했다. 이라크는 달라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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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월 2021, 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