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 이발사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7호 이발사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역사

마다가스카르 ‘7호 이발사’ 이야기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유명한 곳이나 “67헥타르의 도시” 같은 곳에는 ‘7호 이발사’가 살지 않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아노시 호수 인근에서, 매우 세련된(?) 동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은 그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칼튼 호텔을 동경하는 곳이자,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곳입니다.

Jean-Pierre Bodjoko, SJ / 번역 박수현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Nihasina Rakotoarimanana). 그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게 “7호 이발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발소에는 이 번호가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의 전문 이발사”라고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두 곳의 이발소와 작은 가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약 3평방미터의 판잣집 이발소에서 온종일 손님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살롱”에서 웃으며 저를 반겼습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마다가스카르 사도적 순방 당시 동행취재단 숙소에서 15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이 이발소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취재단 숙소였던 5성급 호텔 옆에 위치한 작은 동네에 있었습니다. 마치 낮과 밤의 공존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밤은 달빛도 별빛도 없는 밤입니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공존, 부자와 빈자가 공존하는 공간이었습니다.

7호 이발사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공간
7호 이발사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공간

이 “가난한 이들의 골목”에서 소년들은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집에서 만든 당구대에서 당구를 칩니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걸고 카드놀이를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여성들이 길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생계를 위해 바나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7호 이발소 “살롱” 앞에는 손님들을 대접할 카운터가 달린 “레스토랑”이 있지만, 그들은 서서 먹어야 합니다. 한 접시 가격은 2000아리아리, 그러니까 유로 50센트(한화 약 650원)정도입니다.

동네 식당
동네 식당

7이라는 숫자는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등번호입니다. 호날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가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죠. 이발사의 숫자 7번 역시 유명 스타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의 삶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지런한” 삶입니다. 그는 매일 자신과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평온함과 미소입니다. 그를 보는 사람이라면 울림을 주는 미소입니다. 그 미소는 “나는 가난하지만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발 비용은 가게의 가격표에 적힌 대로 2000아르아르, 곧 유로 50센트입니다. 이곳은 모든 것이 2000아르아르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당구를 치고 있는 동네 소년들
당구를 치고 있는 동네 소년들

7호 이발사가 일하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타나나리보 시(市)가 저지대와 언덕들, 산과 산 사이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7호 이발사의 일터 ‘암페필로하’ 지역의 아노시 호수는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지역은 그 도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공화국의 대통령궁, 예수회 생 미셸 대학, 통계청, 사법부, 대형 건물, 부동산 등기소와 호적 등록 관청, 그리고 국영 라디오 방송국 건물과 TVM 등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 본사와 같은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또 인근 지역에는 마다가스카르 중앙은행과 국립도서관도 있습니다. 이 지역의 면적은 46헥타르(약 14만 평)에 달하며, 주거 지역과 국가 행정청사 건물 지역으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암페필로하’는 라보아항기 안드리아발로나 병원, 마나린트소아 다리, 현대 인문 고등학교, 칼튼 호텔과 인접해 있습니다. 하지만 암페필로하는 특히 밤에 치안이 좋지 않습니다. 밤에는 500미터 거리라 하더라도 택시를 타는 게 좋습니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도보로 걷는 걸 피해야 합니다. 현지 사람들은 “이곳에서는 외국인들을 쉽게 알아본다”고 입을 모읍니다. 또 행정 건물과 부처 옆에는 일반인 거주 구역이 있고, 이 구역 안에는 7호 이발사의 “살롱”과 함께 인적 드문 블록과 가난한 촌락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칼튼 호텔
칼튼 호텔

‘암페필로하’는 수도의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입니다. 또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한 곳으로 불리는 “67헥타르의 도시(Cité 67 ha)“ 맞은 편 지역으로 도시의 평원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를 줄여서 부르는 ‘타나’에는 사실 여러 지역이 있습니다. 적어도 북서쪽에 위치한 “67헥타르의 도시”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면 안타나나리보를 가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며, 그곳 사람들의 삶은 역동적입니다. 모든 것이 만나고 합쳐집니다. 이 지역에서 도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골을 떠난 모든 지방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삶은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빈곤은 지속됩니다. “67헥타르의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는 주머니, 지갑, 휴대폰 등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소매치기가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차 안에 있을 때도 조심해야 하고, 창문을 내려서도 안 됩니다. 이 지역에서 머리카락까지 잘려 도둑맞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둑들은 가위를 들고 행인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 가장 긴 헤어스타일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다가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달아난 뒤, 가발을 만들어 쏠쏠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67헥타르의 도시”는 “청소년 통행 금지구역”으로 분류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 대다수는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특히 음식을 구하기 위해 때로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찾아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도, 권할 만한 것도 없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팔립니다. 원하는 모든 것은 언제든 구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길가에서도, 인도에서도 즉시 정육점이 생깁니다. 신발, 옷, 향신료 가게가 순식간에 열리고 금세 좌판이 깔려 불법상점들의 영업 행위가 절정을 이룹니다. 좁은 도로 때문에 병목현상이 일어나 모든 거래과정은 느리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놀라울 정도의 많은 불편과 빈곤에 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살아 있음이, 생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즐겁고 환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 아내의 고객들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 아내의 고객들

7호 이발사는 1975년 7월 11일 태어났습니다. 결혼해서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24세의 토조, 22세의 로바, 18세 무리엘레입니다. 자녀들은 아직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사업을 해왔습니다. 1998년 이발사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벽돌공이었습니다. 아마추어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직업이 바뀌기도 했죠. 그는 퇴근 후 축구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벽돌공으로 일하면 축구를 할 수 없었기에, 이발사가 되면서 축구와 이발사를 번갈아 가며 했던 것입니다.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축구팀, 오른쪽에서 두 번째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축구팀,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발사라는 직업은 저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저는 매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사실, 7호 이발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많은 지출을 해야 합니다. 세 자녀의 등록금과 대학 수업료, 그리고 매달 약 40 유로에 해당하는 임대료 등이죠. 이발 요금은 2000아르아르입니다. 그는 주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일합니다. 하루 10명의 고객이 있다면 수입은 월 52만 아르아르, 약 130 유로를 벌 수 있고 임대료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명의 고객이 있는 날은 별로 없습니다. 7호 이발사의 삶은 힘들기만 하죠. 다행히 그의 아내가 이발소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열었습니다. 맞벌이를 하면서 부담을 덜 수 있었죠. 아내는 우유, 차, 설탕, 견과류, 식용유, 칫솔, 면도날 등을 판매합니다.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아내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아내

그가 내다보는 미래는 어두웠습니다. “이발소 일은 노후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다가올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저는 큰 꿈을 꿉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위해, 제 가족을 위해 큰 집을 갖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안정을 원합니다. 이러한 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은 분명 이발사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아직은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이발소 일을 마치면 야간 경비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야간 경비원 일은 격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익성이 훨씬 떨어집니다. 게다가 우리의 이 이발사는 적어도 “살롱”에 있지 않을 때와, 자투리 시간에 그의 취미인 축구 연습을 계속하고 싶어 합니다. 아울러 그는 국가가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의무를 다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는 자녀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모두 마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들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저처럼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저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자녀들이 학업을 마칠 수 있는 게 가능할까요? 그는 씁쓸하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많은 희생을 감수한다면... 가능하겠지요.” 저는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저축한 돈으로 조그만 오토바이를 살 수 있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생의 행복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었습니다!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오토바이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의 오토바이

7호 이발사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2001년 12월 16일 대통령 선거 직후인 2002년입니다. 나라가 큰 정치적 위기에 빠졌을 때였죠. 2002년 1월 25일 투표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즉각 강력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투표조작으로 승리를 빼앗겼다는 제1야당 후보 마크 라발로마나나(Marc Ravalomanana)는 자신이 1차 경선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디디에 라시라카(Didier Ratsiraka) 대통령은 헌법 재판소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했다면서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디디에 라시라카 대통령의 이러한 독단적 태도에 맞서 안타나나리보 지역의 민중시위는 어마어마한 평화운동으로 전개되었고,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며 마침내 나라를 큰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마크 라발로마나나는 2002년 2월 22일 별도의 정부를 수립하고 스스로를 대통령으로 선언했지만, 마다가스카르의 영토 전체에 대한 권력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라시라카 정부는 5개 연안 지역 도지사들의 지지와 함께 수도 봉쇄 조직을 강화함으로써 이러한 권력 장악 도전에 대응했습니다. 그것은 도로 봉쇄, 전략적 도로축 교량 파괴, 지역 언론 통제, 지방의 라발로마나나 지지 세력들에 대한 테러 환경 조성 등을 통해 실행되었습니다. 상품과 사람의 유통과 순환을 방해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라발로마나나는 국제적 인정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4개월 동안 행정과 경제 활동이 심각하게 혼란을 겪고 부분적으로 마비되었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7호 이발사는 이 위기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더 빈곤해졌습니다. 당시 저는 하루에 1000아르아르(약 25센트)만 벌 수 있었습니다. 2002년의 위기는 저에게 최악의 악몽으로 남아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의 아노시 호수 주변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의 아노시 호수 주변

바로 옆에서는 이웃들이 편안하게 지내는 건물을 보면서, 7호 이발사는 자신이 빈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열심히 살아가지만 불평등에 대한 문제, 곧 뚜렷하고도 심지어 부끄러울 정도의 그 불평등에 대한 물음은 하지 않았습니다. “(불평등한) 이 상황을 제가 설명 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두 개의 골목이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는 인생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빈곤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둘 다 설정되어 작동되는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는 부패가 심하고, (부패의) 뿌리가 깊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게으름을 피웠다거나 일을 잘 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웃으면서 말이죠.”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에서
니하시나 라코토아리마나나,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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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0월 2019,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