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켈라 대주교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복음화는 소용이 없습니다”
Michele Raviart / 번역 이창욱
“교회는 세속화라는 큰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향후 수십 년 동안의 프로젝트가 이 단순한 생각에 집약돼 있습니다. 그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이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부과된 책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황청 복음화부 세계복음화부서 장관 직무 대행 살바토레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가 아일랜드 메이누스 소재 성 패트릭 대학교에서 열린 “복음화와 성소” 컨퍼런스 연설을 통해 이 같이 강조했다.
그리스도교는 역사에 접목됩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로 “역사에 접목된다는 개념”을 꼽았다. 따라서 교회가 “문화에 스며들고 역사를 창조하는 방법”을 잊어버리면 복음화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토착화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복음화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피시켈라 대주교는 설명했다.
디지털 대륙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성령의 활동 아래” 그 길을 따르는 복음화의 용기를 통해 “‘모든 이가 모든 곳에서 항상 믿어왔던 것’을 전하는 한편, 앞으로의 세기를 결정할 새로운 문화인 디지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터넷이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은 물론 사람들 간의 대화, 만남, 교류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디지털 대륙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가 진짜 문제라고 강조했다.
주님과의 만남
디지털 도구의 사용만이 복음화의 유일한 도구일 수는 없다. 복음화는 인간관계의 만남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하지만 우리는 복음화의 가상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빈약하고 비효율적인 복음화의 실질적인 위험을 안은 채 경험한 다른 가상 세계에 접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만남, 우리가 받은 개인적인 소명과 그것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증거, 선교 소명이 항상 첫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요소인 동시에 사목활동의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기쁜 소식”은 입장을 취하라고 요구하는 팩트입니다
갈릴래아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도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위로부터 오는 권위를 받았지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유일하신 스승님의 제자가 돼야” 한다. 사실 그리스도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떠한 중립적 태도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체험한 이는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이러한 인식을 통해서만 “기쁜 소식”(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소식’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소식이란 무엇보다도 사실의 전달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로 우리는 가르침이나 영적 권고, 더 나아가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이론을 접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소식’이라고 말한 까닭은 근본적인 진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듣는 이를 동참하게 하고 그에게 입장을 취하도록 요구하는 하나의 팩트이자 사건입니다.”
동행자들과 동행 과정
피시켈라 대주교는 “우리 삶에서 하느님의 우선권과 그분 은총의 권능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알게 하는 도구가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소명은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아마도 우리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들로 인해 우리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본래 계획하신 것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명의 관점에서 이는 “우리가 함께 걸을 때 우리는 서로를 동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움직임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젊은이들을 동행하는 위대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도록 인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동행하는 봉사는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교회 생활에서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과 생생한 만남으로 이끄는 것”이다. “설교는 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현상입니다. 설교란 질문하고, 자극하고, 이야기하고, 지지하고, 위로하는 것의 의미를 담은 단어입니다. 요컨대 본질적으로 역동적인 단어입니다.”
평범한 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맡기신 하느님의 담대함
끝으로 피시켈라 대주교는 동반자의 태도와 생활방식이 말씀의 선포와 일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기 삶에 대한 자율성을 앞다퉈 좇아가는 세상에서 사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 그러한 자율성과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일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사제의 삶은 사제직으로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선택했을 때 자신의 인간성을 모조리 빼앗겼다기보다 오히려 자신에게 많은 것이 주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사제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며, 곧 “그리스도의 사랑이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 혹은 영웅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칠 수 있을 때 살아낼 수 있는 현실”임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여기에 “평범한 이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시는” 하느님의 담대함, 다시 말해 당신께 오는 이들의 삶에 양식과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의 몸과 말씀을 사제의 손에 맡기시는 하느님의 담대함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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