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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서품식 사제 서품식  (Vatican Media)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자유로워진다는 것”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유 추기경은 인터뷰를 통해 사제는 직무 사제직 이전에 보편 사제직이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Roberto Cetera, Francesco Cosentino / 번역 이정숙

봄의 온기로 따뜻해진 성 베드로 광장이 소란스럽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 자기 자신을 반영하고 세상으로부터 그러한 반영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듯하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벌써 그런 자세로 이 같은 반영을 표현하고 있다. 소파 끝에 앉아 상대방 쪽으로 몸을 기울인 그는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쁨만이 줄 수 있는 열정으로 넘쳐흐르는 강물처럼 대답했다. 

이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과의 일문일답:

추기경님, (...)

“추기경님이라뇨, 아니, 아닙니다. 저는 라자로, 불쌍한 라자로 신부입니다. 저 역시 예수님의 친구 라자로처럼 다시 살아나고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불쌍한 라자로입니다.” 

무슨 뜻으로 라자로 신부라고 하시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저는 16살에 세례를 받고 새 삶을 얻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신자가 아니었고, 저도 그리스도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톨릭 학교가 최고의 학교 중 하나라는 이유로 가톨릭 학교에 등록했습니다. 여러분의 편집장님이 고등학교 종교 교사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음, 그분께 종교 수업이 제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주세요! 종교 교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추기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녀님들입니다. 가톨릭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수녀님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를 그리스도교로 이끌어준 이들이 바로 수녀님들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 여전히 다소 방황하며 인생의 길을 찾아나서는 아이였던 저를 돌봐줬습니다. 그분들은 큰 사랑으로, 매번 식별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지난 1966년 세례를 받은 직후 신학교의 길로 이끌어준 이들도 바로 수녀님들이었습니다. 제가 성소를 발견하기 전에 그분들이 먼저 제 성소를 본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수녀님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감사하고 또 애정을 느낍니다. 저는 수녀님들을 아낍니다.”

그러다 사제가 되셨군요. (...)

“예. 신학교 경험은 교리적 관점 이전에 인간적 관점에서 훨씬 더 흥미로웠습니다. 제 시야가 넓어졌고, 동시에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바로 그 아름다운 경험 때문에 나중에 신학교 총장이 되었을 때 저는 아주 행복했고, 이제는 전 세계 사제 양성을 담당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 불쌍한 라자로의 삶에 대해 누군가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물론이죠. 한 사람의 역사가 그 사람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니까요. (...)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제 이야기가 대한민국 천주교 확산을 어느 정도 정형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하셔서 강조하셨듯이, 한국의 그리스도교 신앙은 외국에서 온 선교사를 통해 전래된 것이 아니라 토착적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 호기심과 진리 탐구에 목마른 한국인의 마음과 정신이 만들어낸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이야기는 제가 젊었을 때부터 영감을 줬습니다. 지금까지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분은 복음과 교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습니다. 저는 항상 그분을 부활한 삶의 본보기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만날 기회가 있었던 모든 교황님들에게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는 그분의 말씀을 되풀이하며 제 것으로 삼았습니다.”

라자로 신부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됐나요?

“그것은 교황님에게 여쭤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300명의 한국 청년들과 함께한 ‘아시아 청년대회’에서 교황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불쌍한 라자로’가 그분께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자로 “신부” 추기경님은 전형적인 동양적 온화함으로 입증된 강력한 공감능력과 뚜렷한 의사결정 태도를 독특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겸비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한국 문화에는 강한 위계질서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는 유교에서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가톨릭 문화에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예컨대 순명 서약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돌아가자면, ‘미닫이 문’이 저의 일평생을 인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문을 통해 은총이 신비하고 헤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가톨릭 학교 입학, 세례, 제가 말씀드린 수녀님들, 총장이 되어 돌아간 신학교, 주교직,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주형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이 창문 앞에 서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대화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예측불허’의 순간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것은 말씀과의 만남입니다. 어느 날 저는 제가 익숙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 말씀을 저에게 소개한 포콜라레 소속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복음을 아름다움과 도덕적 측면에서 바라봤지만, 멀리서 그렇게 바라봤을 뿐 제 일상에 구체적으로 육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복음이 자신을 완강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편견 없이 받아들이라고 가르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말씀은 읽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저에게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복음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오늘날 훌륭한 모범으로 봅니다. 교황님은 복음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곧,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 존재를 근본적으로 재고할 것을 요구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대답은 바로 이것, 곧 복음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교황님 자신이 하시는 것처럼요. ‘밖으로 나가는 교회’, ‘야전병원’, ‘세상의 변방’, ‘자비를 입었기에 자비로운 이’ 등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든 말씀은 ‘복음으로의 회귀’를 선언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황님을 이해하고 싶으세요? 그러면 복음을 읽으세요!’ 교황님은 강론하실 때 일상의 작은 일에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을 담으면 그 사랑이 사랑을 낳고, 우리의 외로움을 깨뜨리며, 좋은 관계를 맺게 하고, 우리의 삶을 좋은 삶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위대해진다는 것을 항상 보여주십니다.”

라자로 신부님, 지금 신부님은 전 세계 약 50만 명의 사제를 이끄는 부서의 수장이십니다. 오늘날 사제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섯 대륙에서 가톨릭 토착화 과정이 단순하지 않고, 이로 인해 종종 국가마다 매우 다른 프로필이 결정되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밑바닥에는 예수님께 속한 사제직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직무의 성사성이 남아 있지만, 그 역할에 대한 감수성과 해석은 매우 다양합니다. 제가 성사성에 대해 말할 때, 배타적인 지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께 부름받은 사람의 삶에서 사랑의 율법이 육화되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가 세상 어디에서 살고 일하든 착한 사제의 패러다임은 다른 어떤 도덕적 규범이나 교회법적 규범을 넘어서는 법, 곧 사랑의 율법입니다. 사제는 사랑을 향하도록 부름받았으며, 그 자신이 사랑으로 살아갈 때만 효과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한계에 가로막힌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 한계를 자비로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음대로 산다는 것은 도덕적인 율법을 성문화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하느님의 무한하고 자비로운 사랑과 만나게 함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제에게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요?

“제가 말했듯이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탈그리스도교화되지는 않았더라도 세속화된 서양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사제가 되는 일과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도처에서 사랑의 율법이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돼야 하고 또 종종 적용되곤 하는 몇 가지 특정 관행이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의 중심성을 생각합니다. 말씀이 마음을 열어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말씀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문화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고 자기중심주의 문화에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결국 메말라버립니다. 그렇게 종교인의 고용인이 됩니다. 자신의 영을 제대로 기르지 않고는 다른 이의 영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저는 이를 장상의 권위로 말하는 게 아니라 제 개인적 경험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매일 바티칸 정원에 있는 루르드 성모님(성모상)이 계신 곳까지 걸어가면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제가 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동체 생활입니다. 고독하게 살거나 고독을 갈망하는 사제는 제대로 양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공동체 생활이 종종 어렵고, 장애나 서로 간의 오해가 많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어려움이 좋은 사제의 성품을 형성합니다. 곧, 세상이 주는 많은 다른 것들을 잘 이해하는 역량,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역량, 겸손하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공동체 생활은 또 세상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사제는 평신도, 특히 가정들과 친밀해야 하고,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실적인 감각을 잃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중심주의라는 위험에 대한 진정한 해독제입니다.”

라자로 신부님,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사제의 존재론적 우월성에 대한 생각을 극복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저는 단순한 사람이고, 사제입니다. 저는 종종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논쟁처럼 보이는 신학적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여러분과 제가 평등하다는 것, 성품을 부여하는 성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세례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중재’에 기초한 우리 같은 종교에서 사제의 모습이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제사장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을 여는 것이 직무인 사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 참조). 다른 한편으로 사제의 직무는 굳건한 평신도적 교회로 입증됩니다. 사제는 보편 사제직이 있는 한 직무 사제직이 존재한다는 것,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세례에 따른 보편 사제직과 교회의 성직에 대한 가치 평가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

“사실 저는 이것이 여전히 예외로 간주된다는 사실에 놀랄 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의 삶에 잠겨 이제 그분의 제자가 된 이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데서 오는 친교를 체험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거기에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으며, 자유인도 노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성도 여성도 없습니다. 때때로 교회는 여전히 남성우월주의적 세계라는 인상을 줍니다. 이런 이유로 사회가 종종 우리를 잘못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덕분에,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여정,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추진력과 선택 덕분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좋은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치와 책임의 역할에 관한 일부 교회법적 측면을 극복하고 무엇보다도 교회 생활에서 여성의 정상적인 참여에 관한 사목적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훌륭하고 타당한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책에서 언급했듯이 교황청 주요 부서 직책에 여성을 기용하고, 여성 독서직과 여성 시종직을 임명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진전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학교 양성팀에 여성을 포함시켰고, 이런 유형의 선택을 장려합니다.”

추기경님의 한국에서의 경험을 이 새로운 임무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요?

“제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한국에서 천주교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엄격한 사회계층 구조와 문화 속에서 천주교가 내포하고 있는 자유에 대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 한국 사회는 매우 위계적인 사회, 배타적인 계급주의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교의 특징인 형제애는 해방감을 선사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환영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도 젊은이들이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곳 서양에서는 교회가 도덕적으로 선과 악을 가르는 규범적 제도, 곧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구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초대하시는 새로운 사목은 이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을 회복하고 복음을 진정한 자유의 참된 원천으로 기쁘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쁜 소식은 허가 및 금지 목록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곧 우리가 더 이상 죽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하는 빈무덤입니다.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 복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름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 곧 우리 부활의 첫 열매이신 분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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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4월 2023,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