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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3세 교황이 1961년 12월 25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공표하는 문헌에 서명하고 있다. 요한 23세 교황이 1961년 12월 25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공표하는 문헌에 서명하고 있다.  사설

공의회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인 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 60주년을 맞았다. 세월이 흘러도 공의회의 여정은 계속 펼쳐지고 있다.

ANDREA TORNIELLI / 번역 이재협 신부

“가톨릭 교회는 이 세계적인 공의회, 곧 보편 공의회를 통해 신앙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들고, 모든 이를 위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온화하고 인내하는 어머니, 다정하고 자비로운 어머니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60년 전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을 알리며 이 같이 말했다. 1962년 10월 11일, 한자리에 모인 2449명의 주교들과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 앞에서 라틴어로 37분간 훈시한 나이 지긋한 성 요한 23세 교황은 이로써 자신이 꿈꿔온 바를 성취하는 한편, 그동안 끈질기게 추구한 공의회에 대한 발상을 마침내 실현했다. 론칼리(요한 23세 교황의 세속명) 교황은 그렇게 공의회라는 배를 출항시켰으나 정작 항구에 정박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농부의 침착하고 결단력 있는 발걸음과 시대의 표징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읽어내는 역량으로 자신의 전임자들이 포기한 결정을 채택해 그토록 많은 일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오직 그만이 보편 공의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후임자인 성 바오로 6세 교황만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업적을 완수할 수 있었으며, 거의 만장일치로 모든 공의회 문헌이 승인되는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다. 몬티니(바오로 6세 교황의 세속명) 교황은 공의회 이후 교회 내 분열과 분쟁으로 점철된 10여 년간, 베드로가 이끄는 배(교회)가 (보수주의라는) 역풍을 맞아 얕은 곳에 좌초되거나 (급진주의라는) 통제불능의 급발진으로 인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지 않도록 배의 방향타를 안정적으로 조정하는 “인내의 순교”라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베드로의 후계자 중 처음으로 공의회 교부나 신학자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길을 구체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는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이 오늘날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 강조하면서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현 로마의 주교(프란치스코 교황)의 최근 가르침은 정확히 60년 전 성 요한 23세 교황의 가르침을 그대로 반영한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모든 이를 위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온화하고 인내하는 어머니, 다정하고 자비로운 교회의 얼굴”을 증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가르침, 곧 “교회는 친밀함과 애정의 역량, 어둠 속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동행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가르침은 60년 전 성인 교황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세속적인 권력이나 언론의 주목을 따르지 않으며 겸손하게 주님 뒤에서 오직 주님만을 신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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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월 2022,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