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기자회견, 피시켈라 대주교 “가난은 나눔으로 이겨낼 수 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재협 신부
“이번 교황님의 담화를 받아 든 이들은 최근 몇 달 동안 경험해 왔고 향후 몇 주 동안 전 세계 인류를 전쟁의 공포에 떨게 할 비극적 사건들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황청 복음화부 산하 세계복음화부서 장관 직무 대행 리노 피시켈라(Rino Fisichella) 대주교는 2022년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 담화의 핵심을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실제로 전쟁은 세계 빈곤의 주요 원인이다. 우리는 오늘날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이를 확인하고 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교황이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을 맞아들이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하는 많은 이들의 부담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부담은 다시 무관심으로 회귀할 위험을 내포한다.
자신들의 장벽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착각
피시켈라 대주교는 책임 있는 연대를 살아내기 위해 교황이 제안한 세 가지 길을 설명했다. 첫 번째 길은 “일관성 없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안일함”을 어떤 형태로든 거부하는 일이다. “이는 교황님의 가르침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극단적인 세속주의의 결과로 드러난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에서 해방됐다는 착각과 함께 만리장성처럼 장벽 안에 갇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덧없고 근거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길은 “연대를 사회적, 그리스도교적 헌신의 한 형태로 취하는 것”이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담화 내용을 인용했다. “연대란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이들과 함께 나누어, 아무도 고통받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의식과 친교 의식을 삶의 방식으로 삼을수록 연대 의식도 성장합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최근 수십 년 동안 많은 나라들이 가족 정책을 장려하고 사회 사업을 지원함에 따라 “넉넉한 살림과 안정된 삶을 누리는 가정이 현저하게 늘어났다”며 이제 그러한 “안보와 안정의 유산”을 나눠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나눔을 실천하는 데 있어 핵심은 돈에 부여된 가치와 그 돈의 쓰임에 달려있다.
진정한 부요함은 주고받는 사랑 안에 있습니다
교황이 제안한 세 번째 길은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주제 성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2코린 8,9 참조)라는 구절에 담겨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예루살렘 공동체의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나 오늘날이나 끊임없이 너그럽게 베풀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모범에 힘입어 한결같이 증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부요함이란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는 땅에 쌓아 둔 보물로 구성돼 있는 게 아니라(마태 6,19 참조) 서로의 짐을 함께 짊어지게 하는 주고받는 사랑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아무도 버려지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로마교구가 실천한 연대 활동
비인간적인 빈곤이 있는 반면, 자유롭게 하고 기쁨을 주는 가난도 있다. 후자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가난이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이 같은 가난에 대한 선택이 오늘날 역설적으로 보인다면서도, 실제로 많은 이들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는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체험한다고 설명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이 맥락에서 교황이 성 샤를 드 푸코 신부의 사례를 통해 가난을 선택할 수 있음을 설명하려 했다고 말했다. 샤를 드 푸코 성인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가난하게 되어 모든 이의 형제가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이 같은 정신 안에서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거행하기 위해 각 지역 교회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은 다양한 형태의 가난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지내는 11월 13일 전주부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또한 지난해 로마교구가 추진한 빈민을 위한 활동을 소개했다. 먼저 몇몇 제약회사와 상점들의 기부를 통해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 키트와 수천 톤의 식료품을 5000여 가정에 제공했다. 또한 일자리를 잃고 어려움을 겪는 500여 가정의 수도세, 전기요금, 가스요금, 보험료, 임대료를 지원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바오로 사도의 초대에 코린토 신자들이 응답한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기부와 나눔의 초대를 받아들여” 이 같은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의 가장 시급한 요구에 응답하기
이날 교황청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관련 세부 활동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한 기자는 광장 주변 노숙자들이 많이 찾는 성 베드로 광장의 무료진료소를 올해도 운영할 계획인지 물었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올해도 무료진료소를 설치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힘든 시간을 겪은 것처럼 모든 시대가 긴급하게 수행해야 할 과제를 갖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는 식량 문제를 비롯해 전쟁이 야기한 시급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로마의 각 가정이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사안을 그때마다 확인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오찬
코로나19로 지난 2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행사가 중단된 가운데 이번에는 교황이 노숙인들과 함께하는 오찬을 재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올해 이 행사를 재개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하며, 전 세계 많은 교구들이 다양한 형태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연대의 오찬을 구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독일 베를린대교구장은 2021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복원 중인 주교좌성당의 문을 열고 노숙인들과 함께 식사했다고 말했다.
교회의 예언적 차원
빈곤 퇴치를 위한 교회의 활동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무엇보다 비상시국에 활동하는 많은 시민단체 및 기관과 협력하며 살아가는 교회의 연대 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교회의 고유한 예언적 차원을 강조했다. 교회의 예언적 차원이란 가난의 원인을 고발하고 알리는 역량을 말한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물질적인 빈곤만 있는 게 아니라 애정 결핍, 외로움, 두려움, 불안 등 실존적 빈곤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존적 빈곤은 인간 존엄을 인정하지 않고 불의를 낳는 세속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따라서 문화적 차원에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와 관련한 교회의 목소리는 종종 변방에 머물러 있다면서도, 모든 이의 존엄을 강조하려는 노력을 교회가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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