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대림 특강 첫 번째 대림 특강 

첫 번째 대림 특강 “누이인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지난 11월 28일 추기경으로 서임된 교황청 강론 전담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바오로 6세 홀에서 첫 번째 대림 특강을 진행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도록 초대하면서 “믿는 이의 생명은 영원하다”고 강조했다.

Amedeo Lomonaco / 번역 안주영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시편 90,12). 교황청 강론 전담 라니에로 칸탈라메사(Raniero Cantalamessa) 추기경은 12월 4일 금요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첫 번째 대림 특강을 시편 말씀으로 시작했다. 대림 특강 일정은 오는 12월 11일과 18일에도 진행된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 속에 숨어 있던 참전 용사들의 마음 상태를 묘사한 주세페 운가레티 시인의 “군인들”이라는 짦은 시를 인용했다. “가을 나무가지에 달린 (마른) 잎사귀들 같도다.” 이어 코로나19 대유행의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 인류 전체가 “덧없는 삶의 의미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죽음, 곧 모든 인간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측면에 대해 묵상하길 촉구했다. 또한 믿는 이들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기에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상기시켰다. 

누이인 죽음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태어나면서 걸리는 결정적인 질병이 죽음”이라고 말했다면서, “누이인 죽음은 진실로 좋은 누이이며 훌륭한 교육자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또한 죽음 이후 즉시 하느님의 심판이 이어진다(히브 9,27 참조)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음은 인간들 가운데 존재하는 온갖 차별과 불의의 끝입니다. 우리의 희극 배우 토토(Totò)는 죽음이란 모든 특권을 없애는 하나의 ‘수준기(水準器)’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억압하는 이들이 자신들 또한 머지않아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세상에 발생하는 수많은 전쟁과 잔혹한 행위를 훨씬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삶을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잘 살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문제들과 어려움들로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러한 것들을) 눈앞에 놓고, 올바른 관점으로 바라보십시오. 곧, 임종을 맞이한 침대에서 그것들을 바라봅시다. 자, 어떻게 행동하고 싶습니까? (고민했던 문제들과 어려움들에) 어떤 중요성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계신가요? 임종을 맞이한 침대에서 한 번 바라보십시오.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굴복시키거나 치욕을 당하는거요? 아니면, 위압하거나 용서하는거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 위에 우리를 위한 안정된 거처가 없다’(히브 13,14 참조)는 것을 잊은 채 사물에 집착하거나 지상에 마음의 거처가 고정되지 않도록 막아줍니다.”

영원한 죽음의 재앙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죽음이라는) 독이 인간의 생명을 참으로 앗아가기 때문에 인간이 두려워해야할 죽음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죽음! 요한 묵시록은 이를 ‘두 번째 죽음’(묵시 20,6)이라고 부릅니다. 이 죽음은 부활로 건너가는 통로가 아닌 끔찍한 종착역으로, 참으로 죽음의 이름을 부여받은 고립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재앙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설교를 반복해야 합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새로운 면모, 곧 부활을 잘 알았던 이가 없습니다. 성인의 죽음은 프란치스칸 전례에서 기념하는 것처럼 진정 파스카의 여정으로 ‘지나감(transitus)’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죽음에 이르렀다고 느꼈을 때 ‘나의 누이 죽음이여, 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게다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피조물 찬가)’에는 죽음을 표현한 가장 달콤한 언어와 함께 가장 끔찍한 표현들도 섞여 있습니다.”

“나의 주님, 살아 있는 모든 이가 피할 수 없는 우리 누이인 육체의 죽음을 통해 찬미받으소서. 대죄에 묻혀 죽은 이들이여, 불행하여라. 지극히 거룩한 뜻을 따라 산 이들이여, 복되도다. 두 번째 죽음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로다.”

예수님의 죽음에 참여한 이들

“대죄에 묻혀 죽은 이들이여, 불행하여라. 대죄 안에 사는 이에게 죽음은 여전히 침과 독을 지닙니다. 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죽음에서 바로 그 침을 제거한다는 의미입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죽음을 대비하는 특권적 (실행)방법을 제시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에 참여할 뿐 아니라 당신과 하나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는 바로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참되고 옳고 효과적인 길입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또한 우리의 죽음을 (미리) 기념하며 날마다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의 죽음을 봉헌합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의 ‘아멘, 예’라는 응답은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 올라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를 위해 허락하실 죽음의 유형에까지 다다르게 해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누구에게 생명을 맡기고 누구를 위해 죽을 것인지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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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12월 2020, 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