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의 신임 추기경 서임식 13명의 신임 추기경 서임식 

칸탈라메사 추기경 “케리그마 중심의 설교가 필요합니다”

지난 11월 28일 서임된 신임 추기경 중에는 1980년부터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로 활동해 온 카푸친 프란치스코회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수사도 포함됐다.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로서 저의 사명을 지속하고 또 ‘봉사할 수’ 있도록 저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쁜 소식(복음)’을 선포하는 활동을 계속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Debora Donnini / 번역 김호열 신부

40년 동안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설교해 온 라니에로 칸탈라메사(Raniero Cantalamessa) 추기경은 소박한 얼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의 임무를 받았으며,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유임됐다. 조용하고 겸손한 성격을 유지한 그는 자신의 소속인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와 강한 유대를 잃지 않은 가운데 많은 책을 저술했고, 과거에는 이탈리아 국영방송 「라이우노」(Rai Uno)의 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2009년부터 그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론 임무와 세계 여러 곳을 누비며 피정을 지도하는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이탈리아 리에티 현의 치타두칼레 시에 위치한 ‘자비의 사랑 은둔소(Eremo dell’Amore Misericordioso)’에 머물면서 인근의 작은 관상 수녀원 공동체를 위해 사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주교가 아닌 이들이) 추기경으로 임명됐을 때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 주교 서품식을 받아야 함에도(역주: 교회법 제351조 참조) 주교 서품식을 면제해 달라고 교황에게 요청한 이유와 자신이 받은 사명의 깊은 의미를 결정지은 성 프란치스코와의 유대에 대해 설명했다. 

 

추기경님은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로 지난 1980년부터 매년 전례력으로 특별한 시기에 교황님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묵상 강론을 해오고 계십니다. 교황님에게 설교하는 기분은 어떤지요? 그리고 묵상 강론을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찾고 있나요? 

“이 경우에 있어서, 실제로 그 역할은 반대입니다. 곧, 교황님이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와 전체 교회에 강론하시는 것입니다. 가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저의 강론을 들으시고 저에게 감사를 표하곤 하셨습니다. 그럴 때 저는 교황님이 저와 전체 교회에 말씀하시는 게 진짜 설교라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교황님이 매년 대림시기와 사순시기의 매주 금요일 오전 9시에 교회의 평범한 한 사제의 설교를 들으려고 시간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으로 받은 세례’(사도 1,5 참조) 체험에서 오는 새로움으로 이 임무를 시작할 때부터, 전체 교회뿐만 아니라 이 임무 수행의 중심에 가장 필요한 것은 덕이나 악습에 관해 윤리적이거나 윤리학자적 선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수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현대 세계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주권을, 마치 숨 쉬게 하는 것처럼 선포하는 케리그마적 설교(역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핵심적으로 선포하는 것)가 필요합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케리그마(Kerygma)에 대해 권위있게 말씀하신 내용에서 그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곧, 케리그마는 그리스도인 선포의 시작이요 중간이며 마침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은 ‘가톨릭성령쇄신운동’ 활동과 깊게 연관돼 계십니다. 오늘날 많은 평신도사도직운동 단체들이 교회 안에서, 특히 교회일치운동의 여정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제가 교회일치운동 사목에서 했던 일들은 부분적으로는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로서의 임무 덕분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여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한 ‘성령쇄신운동’ 체험과 ‘새 오순절 운동’ 체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체험들은, 성 요한 23세 교황님이 ‘새로운 오순절’을 계기로 생각하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매였습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저는 이 운동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1977년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저는 사도행전 1장 5절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에 따라, ‘성령의 세례’라고 부르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세례성사와 수도서원 및 사제서품 이후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은총이었습니다. 이전의 모든 은총들을 새롭게 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준 은총이었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성령께서 각자에게 제공하시는 방식과 기회를 통해 이 체험을 하도록 권하는 바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의 진정한 쇄신은 오직 ‘성령 안에서’ 이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 역시 성령의 작품입니다. 교회가 시작되던 시기에 사도 교회가 (성령강림 날) 먼저 ‘모든 나라의 전통 유다인들’에게 개방하도록 하고, 다음에는 (백부장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이교도들에게 개방하도록 재촉하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바로 이 성령께서 반목으로 점철된 수세기 동안 만들어진 장벽을 극복하도록 여러 그리스도교 교회의 신자들을 부추기십니다. 하느님께서 가톨릭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똑같은 현상과 외적 표현으로 당신의 영을 허락하시는 것을 보고 저 역시 코르넬리우스에 대해 베드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내린 결론처럼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사도 11,17) 저는 이와 같은 생각이 가톨릭 신자들에 비해 더 많은 개신교 신자들과 오순절 교회 신자들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카리스마적 쇄신 운동’에 관한 것이지만, 모든 ‘평신도사도직운동’ 또한 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주교가 아닌 이들이) 추기경으로 임명됐을 때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 주교 서품식을 받아야 하는데 주교 서품식을 면제해 달라고 교황님께 요청한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주교로 축성된다는 것은 명예 직함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주교는 목자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86세라는 저의 나이 때문에 한 지역에서 하느님 백성의 목자가 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황님께 주교 서품식을 면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제가 주교 서품을 받으면 수도자의 신분에서 면제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주교 서품을 면제받으면 모든 측면에서 저는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요청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님의 재임시기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재임시기에도 이미 다른 분들이 주교 서품 면제 요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황님은 이번 신임 추기경 서임식에서, 여러분에게 “주님의 종”의 길인 예수님의 길을 따르도록 권고하시면서, 만약 “여러분이 더 이상 하느님 백성 곁에 있는 목자로 느끼지 않고” 단지 “존경하는 추기경님(l’eminenza)”이라는 존칭에 맛들이면 “정도(正道)”에서 이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이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이 말씀들이 제 마음속에서 강하게 울려 퍼졌으며, 저 역시 이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로서 저의 사명을 지속하고 또 ‘봉사할 수’ 있도록 저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쁜 소식(복음)’을 선포하는 활동을 계속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추기경님은 추기경 서임식 때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적인 갈색 수도복을 입으셨습니다.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에 소속돼 있다는 것이 추기경님의 성소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요?

“저는 열두 살 때 주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평생 이 부르심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했습니다. 저는 항상 이 부르심을 그리스도께서 저에게 주신 특별하고도 과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저는 젊은이들을 위한 피정에서 저의 성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성소의 표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죠. 혹은 수도자들에게 저의 성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모든 사건들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삶의 모든 것을 꽃피운 성소의 씨앗을 재발견하며, 새로운 출발을 위한 힘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자로 60년을 산 다음, 추기경의 진홍색 수단을 입으려고 프란치스코회의 수도복을 벗는다는 것은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특별한 가치들을 부인하고 저의 정체성을 잃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저의 요청을 자비롭게 허락해 주심으로써 저에게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제가 저의 수도복을 입고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로 죽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09 12월 2020,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