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시성성 장관 베치우 추기경 교황청 시성성 장관 베치우 추기경 

베치우 추기경 “복자 제라르도 사쏘, 가난한 신사들 가운데서 걱정없던 수도자”

최근 살레르노 지방 산 피에트로 인 스칼라에서는 오늘날 몰타기사단으로 성장한 구호소 설립자인 복자 제라르도 사쏘 선종 900주년을 위한 큰 축제가 열렸다. 교황청 시성성 장관 겸 몰타기사단 특별 대표 베치우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아말피 해안부터 예루살렘 성지까지의 복자 제라르도의 영웅담을 들려줬다.

Roberta Barbi / 번역 이정숙

시대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큰 신앙에 고무돼 항상 전진했던 세상의 자녀들, 시대의 자녀들이 있다. 복자 제라르도 사쏘(Gerardo Sasso)는 1040년 아말피 해안의 가장 오래된 마을에서 태어난 작은 수도자였다. 그는 민족, 출신,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순례자들을 환대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려고 예루살렘까지 여행하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9월 3일 목요일, 교황청 시성성 장관 겸 몰타기사단 특별 대표 안젤로 베치우(Angelo Becciu) 추기경은 아침 미사 강론에서 복자 제라르도를 이끈 것이 무한한 신앙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정신의 수호와 이웃을 위한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복자 제라르도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신앙의 수호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원조(tuitio fidei et ubesquium pauperum)’라는 모토를 전달하면서 자신의 발자취를 따르길 원하는 사도적 성과를 잘 이해한 인물이었습니다.”

신앙 수호는 복음을 전하는 것

베치우 추기경은 복자 제라르도에게 있어 신앙의 수호란 “우리의 인생에서, 일상의 선택에서, 그리고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만드는 열정에서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두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할 때, 몰타기사단 회원 각자는 복음 선포자, 곧 예수님의 말씀의 착실한 전달자가 된다. 다시 말해 타인을 존중하고 문화적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며 “강요하지 않고 매력으로, 곧 신앙의 기쁨과 삶의 양식의 모범으로 소통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다. “세례 받은 이, 사제, 축성생활자, 남자, 여자로서 우리의 사명은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수나 규모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화를 이루고, 기적과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우리의 역량에 좌우됩니다.”

유일한 계명 “사랑하십시오”

몰타기사단 회원은 신앙을 수호하도록 불림받은 것 외에도 봉사하도록 불림받았다. 사랑 없는 봉사란 없다. 베치우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선택사항이나 교회 삶에 대한 결과가 아닙니다. 일차적 요구입니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우리를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인식하게 하는 표식입니다.” 지상에 천국의 일부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혁신적 가치이자 그리스도의 독창성이다. 베치우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인격과 업적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이며 선포입니다.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절대적인 독창성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을 영광스럽게 하고, 상대방 안에서 자신도 영광스럽게 됩니다.” 물론 복자 제라르도의 영적 상속자들에게 있어 이 모든 사랑을 쏟을 곳은 전 세계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몰타기사단이 자주 보여준 것처럼 사랑은 봉사와 섬김을 위한 가장 적절한 도구다. 몰타기사단은 특히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비상사태에서 도움이 필요한 노숙자들, 노인들과 함께 최전선에 있었다. 

모든 이의 수도자

1099년은 제라르도 수사가 성 요한 구호소를 설립한 해다. 그는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예수님이 발 디디신 이 땅에 그분 사랑의 증거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라르도 수사는 모든 종교와 모든 인종의 순례자들을 환대하고 의료에 자신을 열정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 자선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이루기 위해 그는 환대의 집과 성 세례자 요한 성당을 세웠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 요한 구호소는 예루살렘의 성 요한의 구호형제회(구호기사단)로 성장했다. 이 기사단은 설립자 선종 7년 전인 1113년, 파스칼 2세 교황으로부터 기사수도회로 정식 승인됐다. “몰타기사단의 회원들은 복자 제라르도의 모범을 따라 신앙인으로서 그들의 삶이 신뢰할 만하고,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맺도록 일치를 증거하며, 서로를 환대하고, 존중하고, 조화와 형제적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베치우 추기경에 따르면 “양보나 타협 없이” 자신의 소명과 교회의 사명을 살아가는 이 유산은 창립자가 남긴 것이다. 베치우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복자 제라르도의 말을 인용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여러분이 빈곤을 줄이고 고통을 더 견딜 수 있게 만드는 데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한, 우리 형제회는 지속될 것입니다.” “사회적 고통과 빈곤은 슬프게도 인류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900주년 행사

스칼라의 작은 마을은 복자 제라르도 사쏘에게 중요한 주제인 종교 간 대화, 민족 간 연대, 형제애 등 다양한 회의와 토론으로 진행되는 3일 축하행사를 위해 동원됐다.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사로는 이탈리아 정부 대표 로베르토 스페란자 보건부 장관, 캄파냐 주의 빈첸초 데 루카 주지사, 스칼라 시의 루이지 만시 시장, 몰타기사단의 프라 루이 곤살루 두 바예 페이쇼투 데 비야스 보아스(fra’ Ruy Gonçalo do Valle Peixoto de Villas Boas) 임시 기사단장 등이다. 또한 이탈리아 우체국은 2장의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이 가운데 한 장은 예술가 밈모 팔라디노가 그렸고, 다른 한 장은 지난 2009년 스칼라에 초대돼 산 로렌조 대성당의 전면(파사드)을 그린 다리오 포의 스케치를 교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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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9월 2020,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