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아시시,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모임, 1986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아시시,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모임, 1986년  사설

모든 이를 향한 그의 손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행적은 현재진행형

5월 18일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탄생 백주년이다. 새로운 여정을 걸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항로를 항해했던 교황의 모습을 짚어본다.

Andrea Tornielli / 번역 이재협 신부

1986년 10월 27일은 현대사 안에서 핵전쟁에 대한 전망이 가득했던 급박한 시기였다. 이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회 안에서도 적지 않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용기를 내어 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을 아시시로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기도하기 위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그 자체로, 평화의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과 평화를 증진하는 다른 방법이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초대입니다. 그 평화는 교섭의 결과도, 정치적 타협의 결과도, 경제적 협상의 결과도 아닙니다. 비록 다양한 종교 안에서 거행되는 기도일지라도, 평화를 위한 기도의 결실은 우리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교황은 이어서 덧붙였다. “우리는 여기에 모였습니다. 세상이 마침내 참되고 항구적인 평화의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면, 겸손하고 간절한 기도, 믿음 가득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5월 18일은 ‘철의 장막(냉전시대)’의 종식을 위해 노력한 위대한 교황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28년이라는 긴 사도좌 직무의 수행기간 동안 그는 교회를 새로운 천년으로 인도했고, 유럽을 양분했던 장벽이 무너짐을 보았다. 교황은 새로운 평화의 시대의 도래를 보고싶어 했으나 오히려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며 죽음과 혼돈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잔악한 전쟁과 테러리즘에 맞서야 했다. 2002년 1월 교황은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고 문명 충돌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다시 한 번 종교 지도자들을 아시시로 초청했다. 그는 민족, 문화, 종교 간 만남 안에서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는 확고한 신앙, 위대한 신비로 드러나는 고행, 넘쳐흐르는 인류애를 증명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했으며, 충돌의 폭발을 피하기 위한, 평화의 길을 도모하기 위한, 그리고 정의와 평화의 증진을 위한 모든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복음을 선포하며 모든 백성을 껴안기 위해 전 세계 곳곳을 방문했으며, 모든 인간 개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는 로마 유대교 회당 방문이라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이슬람교 모스크의 문지방을 넘어선 첫 교황이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항로를 항해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촉진하기 위해 사도좌 직무 수행을 위한 방법을 기꺼이 논의할 의사를 표명하면서 한 번도 걸어간 적 없는 새로운 여정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행적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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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5월 2020,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