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sto_pantocrator_istanbul_1547451066.jpg

사순 피정 지도 보바티 신부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예언자적 체험”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은 3월 1-6일 로마 남동부 아리차에서 사순 피정에 들어간다. 「바티칸 뉴스」는 이번에 피정 지도를 담당하는 성서학자 피에트로 보바티 예수회 신부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Amedeo Lomonaco / 번역 이정숙

“불타는 떨기 나무: 탈출기, 마태오 복음, 시편 기도에 비추어 본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 이는 3월 1일부터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로마 외곽 아리차에 위치한 ‘카사 디빈 마에스트로’ 피정센터에서 시작되는 사순 피정 주제다. 교황청 성서위원회 사무총장 피에트로 보바티(Pietro Bovati) 예수회 신부가 이번 피정 묵상을 지도한다. 보바티 신부는 「바티칸 뉴스」와 일문일답을 통해 이번 사순 피정 일정을 설명했다.

이하 피에트로 보바티 신부와의 일문일답:

“피정의 주제는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의 만남으로 대표되는 하느님 체험과, 이 떨기나무, 불꽃에서 나오는 말씀의 경청에 대한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인간의 삶을 비추고 그들 삶의 여정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기본적으로 피정은 하느님과 영적으로 인격적 만남을 도와줍니다. 피정 기간 동안 영성지도자의 임무는 각자 인격적인 방법으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느님과의 만남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러한 체험에 필요한 지침들을 주실 수 있으며, 동시에 규범적이고 위안이 되는 지침들을 각자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피정 일정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제가 생각했던 방식은 각자 예언자들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성경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귀 기울이는 것은 사실상 예언자적인 체험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모세가 체험한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또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평생 동안 당신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그리스도께서, 형제들이 예언자적인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지를 보여주면서, 성경 내용의 일부 본문들을 다룰 것입니다.”

예언과 기도가 이번 피정의 중심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기도와 예언이라는 주제가 피정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탈출기의 내용, 마태오 복음서의 일부 구절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사순 시기의 역동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할 것입니다. 사순 시기 동안 우리는 영적으로 하느님의 산을 향해 나아가는, 파스카 체험을 향해 나아가는 사막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을 다시 걷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느님 말씀에 따른 여정이 되겠네요. (...)

“성소와 하느님 은총의 저항에 대한 몇몇 주제를 다루면서, 그리고 특히 공동체 안에서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몇 가지 책임을 다루면서, 기본적으로 제가 하려고 하는 게 그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 가까이에 계시고, 그를 이끌어 주시며, 그가 하느님의 빛을 발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위안이 되는 체험으로 이 피정을 마칠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진정한 예언자적 체험을 위해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

“저는 기도가 대화나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차원이긴 합니다만, 기도의 더 깊고, 더 진정한 차원은 인간이 주님께 이야기하고,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장막에 들어갔을 때,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한 친밀함이 예언자적 체험입니다. 이러한 만남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것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귀 기울임은 인간을 진정한 종교적 체험을 구성하는 순종, 신뢰, 믿음의 차원에 있게 해줍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기도 안에서 살려고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를 단순히 하나의 요청이나, 하느님께 드리는 암송 기도처럼 해석하면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가 광야에서 한 것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시편 95,7-8 참조)의 말씀처럼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모세의 체험이 예언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와 첫 번째 사도들처럼 모두 특별한 체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들은 인간이 기도 안에 있고, 성령을 받았을 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각자의 마음에 친밀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신자의 성령강림 체험입니다. 진정한 체험은 인간을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로 들어가게 합니다.” 

어떻게 이 관계를 일궈낼 수 있을까요?

“성경에 전해진 하느님 말씀 자체인 예언적 말씀을 받아들이고, 또 그것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충만한 말씀이며,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감도를 받은 모든 말씀은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데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오늘, 우리 삶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역사와 시간의 의미도 밝혀준다고 생각됩니다. (...) 

“말씀은 그저 이론적이고 일반적인 시각이 아닙니다. 말씀은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말씀은 우리가 현재 실현되고 있는 역사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빛과 안내, 격려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등불과 빛, 누룩이 되어 우리 형제들에게 증거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 책임자들에게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황님과 교황청 관료들의 존재는 신부님께도 특별한 영감의 원천이 될 것 같은데요. (...)

“이 상황에 처한 게 거의 황송한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형제로서 저의 의무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임으로써 얻은 종교적 체험을 전하고, 또 기도를 위한 약간의 도움과 실마리를 주는 일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아름답고, 심오하며 진실한 체험을 하게 하기 위해서죠. 우리에게 깊고 인격적으로 도달하는 말씀 말입니다.”

깨우친 말씀과 새로운 마음.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연결고리인 것 같습니다 (…)

“어떤 의미로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을 내적으로 새롭게 하며, 마음을 더더욱 영적으로 심오하게 해줍니다. 또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 계시의 핵심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부드러움과 자비, 연민의 능력을 지니게 해줍니다. 이는 바로 우리 인간을 돕기 위해 다가오시고, 종말론적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삶의 신비를 더욱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9 2월 2020,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