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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바티칸서 레스보스 섬 난민들 만남

최근 인도주의 통로를 통해 레스보스 섬에서 로마로 도착한 난민들이 지난 12월 18일 교황을 만났다. 「바티칸 뉴스」는 교황청 자선소장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과 산 에지디오 공동체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에 따라 로마에 도착한 이 난민 그룹과 동행했다.

Giada Aquilino / 번역 이정숙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2월 18일 수요 일반알현의 말미에 정치적 망명을 청한 레스보스 섬 난민 33명을 만났다. 이들 중에는 미성년자 14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그리스도인도 10여 명이 있었다. 교황청 공보실장 마태오 브루니는 교황이 벨베데레 뜰의 사도궁 입구에 이주민과 난민들을 기억하는 십자가를 걸도록 주문했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교황을 만난 레스보스 섬 난민들은 인도주의 통로 덕분에 로마로 도착했으며, 교황청 자선소장 콘라드 크라예프스키(Konrad Krajewski) 추기경과 산 에지디오 공동체가 함께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과 산 에지디오 공동체는 난민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확인한 바 있다. 난민들은 그리스 섬에서 몇 개월에 걸쳐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모리아 캠프의 난민들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모리아 난민캠프는 레스보스 섬에서 가장 큰 핫스팟(hot spot)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모리아 난민캠프는 언덕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그저 천막과 함석으로 대충 만든 집들로 이뤄져 있으며, 물은 부족하고 전기도 거의 들어 오지 않는다. 현재 레스보스 섬에 있는 난민들 1만7000명 가운데 1만4000명이 이곳에 수용돼 있다. (멀리서 보면) 캠프는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형성된 마을처럼 보인다. 철조망을 지나 난민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이 교황 특사로 레스보스 섬을 처음 방문했던 지난 2019년 5월의 상황에 비해 현재 적정 수용 인원이 3배를 훨씬 초과했을 뿐 아니라 인도적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난민 중 33명은 교황을 비롯한 산 에지디오 공동체와 유럽 국경 내 인도주의 통로 덕분에 인생이 곧 바뀔 것이다. 

과밀화, 안전, 서비스

터키 해안 가까이에 위치한 모리아 난민캠프는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라크 사람들로 가득하고, 아프리카를 떠난 난민들, 특히 소말리아 난민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페르시아어,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이들 중 고국에서 역사적으로 박해를 받은 하자라 족의 아프가니스탄 출신 사이드 모하메드(Said Mohammad)가 있다. 그는 「바티칸 뉴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여기 모리아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난민캠프의 과밀화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 보건과 질병 문제가 발생하고, 서비스 (질은) 낮아집니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에게는 중대한 비상사태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안전입니다. 매우 많은 가정들이 풀숲의 작은 텐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텐트가 가정들의 첫 번째 집이 됩니다. 이곳의 겨울 밤은 매우 춥고, 매우 자주 비가 내리고, 따뜻하게 할 방법을 찾지만 전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풀숲의 캠프는 (더) 넓어지고 있는데, 불행히도 이런 이유로 전기가 모두에게 전달되지 못합니다. 또 화장실과 샤워시설 같은 시설도 모자랍니다.”

7개월 후

지난 2016년 레스보스 섬을 찾았던 교황의 발자취를 따라서, 교황청 자선소장은 이미 기온이 크게 떨어진 2019년 12월 직접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모리아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산 에지디오 공동체가 그와 함께했다. 교황청 자선소장과 산 에지디오 공동체는 이들과 미소와 악수로 인사했고, 교황의 묵주를 선물했다. 또 이 시기에 점퍼와 코트를 나눠주고 있던 팀 휴머니티의 위로센터에서 만난, 특히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들에게 약간의 기부금을 나눠주기도 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5월 우리가 이곳에 있었을 때, 이러한 텐트들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밤중에 200-300명이 도착했다고 우리에게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강제수용소’인 이곳을 비우기 위해 관리하는 사람의 선의가 필요합니다. 우선 이 수용소에서 33명을 데리고 가는 데서 시작하고, 유럽의 모든 교회들이 이렇게 개방하고, 모든 주교회의가 자신의 교구에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초대하기를 희망합시다.”

가족, 젊은이 그룹, 혼자인 여성들

사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교황의 소망에 따라 정치적 망명을 청한 33명의 난민들을 이탈리아로 데려오기 위해 개인적으로 레스보스 섬을 찾았다. 33명 중에는 14명의 미성년자와 10여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교황청과 산 에지디오 공동체는 (로마에서) 그들을 환대했다. 로마에서 머무는 곳은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공동체의 가정 집이지만, 개인과 종교 주택, 작은 단체와 본당들이 제공하는 아파트에서도 머문다. 산 에지디오 공동체의 이민과 통합 서비스 책임자 다니엘라 폼페이(Daniela Pompei)가 33명의 이민자들이 누구인지 설명했다. “그들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 아프가니스탄의 청년 그룹, 노인들이며, 카메룬에서 온 한 여성과 토고에서 온 한 여성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사람들은 레스보스 섬에서 수개월 동안 기다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망명 신청 위원회와의 첫 번째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의 면담은 오는 2021년으로 예상됩니다. 그것은 향후 2년은 이 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생활을 시작하고, 빨리 하는 게 중요합니다. 통합 과정은 즉시 시작할 것입니다. 미성년자들을 위한 학교 등록과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한 어른들의 (언어) 과정을 등록할 것입니다.” 

키미아, 평화의 상징

산 에지디오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모든 서류가 규정대로 돼 있는지 검토하기 위한 마지막 인터뷰 (준비)에 전념한다. 떠나는 사람들은 모리아에 작별을 고했지만 레스보스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는 아니다. 그들과는 진한 포옹을 나눴고, 어린아이들은 캠프에서 미틸레네 공항으로 이동할 버스에 서둘러 올라탔다. 그러고는 공항 당국 및 경찰의 행정절차, 기억과 희망을 함께 실은 비행인 아테네를 향한 이륙의 기다림으로 이어졌다. 그리스의 수도에서는 긴 밤을 공항에서 보냈다. 우리는 여기서 카메룬에서 온 클라리세(Clarisse)를 알게 됐다. 그녀는 카메룬에서 처음엔 터키, 다음엔 그리스로 가기 위해 도망쳤다. 그녀는 눈 앞에서 도항, 위협, 폭력을 경험했다. 그녀는 평화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3개월 된 딸 키미아(Kymia)를 팔에 안고 다음과 같이 슬픔에 잠겨 말했다. “저는 강제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카메룬을 떠났습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충분한 재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저를 돈 많은 사람과 강제로 결혼시키려 했습니다.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이었고, 저는 (그 결혼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로 오기로 했는데, 그것이 저에게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음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보호 받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네 목을 칠 것이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도망칠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은 살기를 원합니다.” 

인도주의 통로

모리아에서 시작해 아테네에서 로마로 이동하는 일은 17시간30분 뒤에야 끝났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는, 산 에지디오 공동체 창설자 안드레아 리카르디(Andrea Riccardi)가 기자회견에서 “집”의 공기, “가정”의 공기로 정의했던 것을 난민들이 호흡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많은 친구들이 그들을 환영했다. 리카르디는 터키 해변에서 레스보스 섬까지 1200유로 이상을 지불하면서 25분에서 4시간에 이르는 항해를 인신매매자들에게 맡기지 않도록 인도주의 통로가 유럽에서 더 많아지기를 호소한 바 있다. 여행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곧 굶주림, 전쟁, 폭력, 빈곤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 존엄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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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2월 2019,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