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묵상

에우제니아 보네티 수녀는 4월 19일 성금요일 로마 콜로세움에서 있을 십자가의 길에 관한 묵상을 발표했다. 보네티 수녀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통해 미성년자 인신매매 피해자와 성매매 피해 여성 등 인신매매 희생자들과 이민자들을 기억한다.

Tiziana Campisi / 번역 김단희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소속 에우제니아 보네티(Eugenia Bonetti) 수녀는 “노예제 근절(Slaves no more)”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4월 19일 성금요일에 로마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십자가의 길 예식을 위한 묵상을 보네티 수녀에게 부탁했다. 보네티 수녀는 인신매매라는 재앙에 맞서 싸운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 내에서 새로운 형태의 십자가형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역설했다.

어려운 이웃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기

제1처 사형 선고 받으신 예수님에 대한 묵상은,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정책에서 비롯된 무관심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어려운 이들의 울부짖음”에 빌라도와 같은 권력자들이 “귀 기울일 수 있길” 바라는 기도로 이어진다. 십자가를 진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십자가형에 직면한 이들의 모습을 본다. 노숙자, 직장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과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 엄청난 고생을 겪으며 (이주해왔으나) 사회에서 소외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민자들, 그리고 피부 색이나 사회계층에 따라 차별을 당하는 아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 발견하기

예수님과 성모님이 만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가족을 돕기 위해 유럽으로 어린 딸들을 떠나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그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굴욕과 경멸, 죽음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처음 넘어지시는 장면에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통해 현대의 사마리아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두려움과 외로움, 무관심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육체적∙도덕적 상처를 사랑으로 보살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네티 수녀는 말한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가장 마지막에 서있는 이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타인의 눈물, 괴로움, 고통의 외침에 무감각해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우리는 하느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인신매매 피해자

이어 보네티 수녀는 십자가의 길 안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산과 들, 바다에서 (노동)착취당하는 아이들,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돼 사고 팔리는 아이들을 본다고 말한다. 이 아이들은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권리를 박탈당했다. 보네티 수녀는 인신매매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며 이 문제의 해결에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예수님께서 슬픔에 잠긴 여인들을 위로하시는 제8처에서 이 점이 잘 나타나 있다면서, 특별히 여성들이 (인신매매 문제를) 이해하고 용기를 갖고 행동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쓰고 버리는 문화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진이 빠지고 굴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제9처에서 세 번째로 넘어지신다. 보네티 수녀는 이 장면을 인신매매 조직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소녀들이 겪는 치욕과 연관지어 묵상한다. 이 소녀들은 신체와 꿈을 망가뜨리고 학대하는 폭력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바로 수많은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는 ‘쓰고 버리는 문화’가 낳은 결과인 것이다.

권력과 돈의 우상화

옷 벗김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존엄을 박탈당하고 ‘상품’으로 전락한 아이들의 모습에 비할 수 있다. 이에 보네티 수녀는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권력과 돈이라는 우상에 대해 묵상하길 청한다. 한편, 이 세상에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이들이 존재한다. 특별히 지중해 지역에 많이 있다. 이들은 빈곤, 독재, 부패, 노예제 등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희망

제14처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한다. 이 묵상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새로운 묘지”, 곧 우리가 돕지 못했거나 돕지 않았던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공간인 사막과 바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각국 정부가 “권력의 궁전” 안에서 문을 잠그고 앉아 토론에 열중하는 동안, 사하라 사막은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쳐 쓰러진 이들의 유골로 가득 찼으며, 바다는 수중 무덤이 되고 말았다.

보네티 수녀는 예수님의 죽음이 국내외 지도자들로 하여금 모든 개인을 보호하는 그들의 역할을 기억하도록 하는 실마리가 되길 희망하면서 올해 십자가의 길 묵상을 마무리했다. “예수님의 부활이 민족 및 종교간의 친교, 인정, 새 생명, 기쁨, 희망의 등불이 되길 바랍니다.”

17 4월 2019, 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