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산타 프라세데 성당의 모자이크 로마 산타 프라세데 성당의 모자이크  

회칙 「진리의 광채」 반포 25주년…피시켈라 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 비판은 전통에 충실치 못한 태도"

가톨릭 교회의 모든 주교들을 대상으로 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가 반포된 지 25년이 됐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는 이 문헌을 언급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하는 사람은 교회 전통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는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에 대한 근본 물음을 성찰하며 “살아있는 사도 전승과 성경에 기반한 윤리적 가르침의 원리들”을 설명했다. 우리는 이 회칙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들으려면 다시 한 번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합니다”(8항).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Rino Fisichella) 대주교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회칙의 중요한 측면을 떠올리며 “이전의 교도권에 비추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도권을 부정하기 위한 구실”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하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는 세속주의와 그에 따른 강력한 철학적 상대주의(relativismo filosofico)에 의해 변화된 매우 확고한 문화적인 맥락에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의 작품 제목인 『확고한 요점(Punti fermi)』의 표현과 같이, 그리스도교 교의에 대한 호소처럼 남아 있는 근본적인 요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확고한 요점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불변의 진리에 대해 말씀하실 때, 보편적인 윤리 규범으로 무엇을 의도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진리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언제나 역동적인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진리는 고정된 차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서 진리란 무엇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걸 잊지 맙시다. 그러므로 진리의 차원은 개인적인 만남을 열어줍니다. 곧 복음의 진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대변되는 진리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셨고 사도들로부터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온 내용이며, 계시된 신비를 발견하도록 한층 더 열려있는 진리입니다. 교회의 교의신학과 윤리적 가르침 안에 전환점이 되는 몇 가지 근본적인 요점이 있습니다. 이 사항들은 불변으로 남게 될 요소들입니다. 분명히 이 모든 것은 나중에 신학자들 편에서,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가 주장하는 바와도 같이, 커다란 해석작업이 요청됩니다. 불변의 규칙은 복음의 진리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제기된 요구사항(istanza)의 원칙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열려 있어야 한다는 판단기준에 있어서나 그 효력에 있어서나 지속적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전통과 굳건하게 연결된 영원한 진리의 역동성에 직면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따라서 언제나 새로워져야 한다는 연속성이 (...)

“맞습니다. 제 생각에, 가톨릭 교회는 자기 자신에게 갇힌 진리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진리는 그 본성상 충실함(fedeltà)이며 자유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한층 더 열려 있는 진리는 모든 신자, 모든 인간에게도 더 심오한 자유를 발견하게 만드는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신실함과 진리 사이의 연결관계는 진리에 대한 성경적 개념에 있어 전형적인 연결관계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해석은 결국 충실성,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일부 교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가톨릭 교회의 교의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다며 (그 근거로) 바로 이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의의 발전에 반대하려고 교도권을 결코 도구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도구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진리의 발견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며 교회 전통의 충실함(fedeltà)도 사라지지 않을까 저는 우려됩니다. 이전의 교도권에 비추어볼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교도권을 부정할 만한 구실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에 수많은 (전통과의) 연속성이 발전과정에 있었는지 강조할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 전체를 주의 깊게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몇몇 인터뷰를 살펴보는 것 말고요. 모자이크는 하나의 조각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조각들 전체가 맞춰졌을 때 큰 그림이 완성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 곧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교도권은 그러니까 각 조각들에 국한해서 읽을 수 없는 모자이크군요. 그렇다면 이 교도권의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입장에서 그토록 높은 차원의 이 가르침의 전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복음화 사업에 크게 열려 있는 가르침입니다. 복음 선포에 대한 규정을 예측하지 않는 것입니다. 굵직한 요소들은 필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곧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교회가 실천해야 할 지속적인 복음 선포, 모든 사람을 만나러 가도록 부르심 받은 사목자 등입니다. 이것이 바깥으로 나가는 교회라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언급된 것처럼, 새로운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실제로 이해하고 또 어쩌면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 위해서,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과 동행하는 역량,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가까이 가서 걸어가는 역량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차원과 더불어 자비의 필요성이 부각됩니다. 자비의 희년(Giubileo della Misericordia)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의 교황직을 어떻게 규명하고 방향을 잡아 나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표징이었습니다.”

 

06 8월 2018, 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