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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Leo XIV celebrates Holy Mass for the Jubilee of Sport Pope Leo XIV celebrates Holy Mass for the Jubilee of Sport  (ANSA)

[미사강론] 삼위일체 대축일, “매일 사랑을 연마할 때 새로운 세상이 건설됩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6월 15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스포츠의 희년’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스포츠가 협력을 가르치고 함께 살아가는 구체적 가치를 일깨워 주기 때문에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의 귀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또한 오는 9월 7일 성인품에 오를 스포츠인들의 수호성인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의 “단순하면서도 빛나는 삶”을 되새기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회에 평화와 희망을 되찾아 준 스포츠의 공헌에 대한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말씀을 떠올렸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스포츠의 희년

레오 14세 교황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2025년 6월 13일 주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제1독서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잠언 8,22.27.30-31).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삼위와 지혜가 깊이 결합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안에서 거룩한 지혜가 드러나고, 지혜는 언제나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 갑니다.

오늘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며 동시에 ‘스포츠의 희년’ 행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스포츠’,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이 둘 사이에는 깊은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모든 인간 활동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도 분명 그러한 활동 중 하나입니다. 더욱이 하느님은 정적인 존재가 아니십니다. 당신만의 세계에 갇혀 계시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살아 있는 사랑, 그 친교 자체이십니다. 이 친교는 인류와 온 세상을 품어 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페리코레시스’, 곧 “춤”이라 부릅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춤을 추는 것이죠.

이 거룩한 역동성에서 모든 생명이 샘솟습니다. 제1독서가 증언하듯이(잠언 8,30-31 참조),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은 당신 피조물에게 생명을 선사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며 “뛰노시는” 분이십니다. 몇몇 교부들은 과감히 ‘데우스 루덴스’, 곧 놀이하시는 하느님, 즐기시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까지 했습니다(제네바의 성 살로니오, 「솔로몬 잠언에 대한 신비적 해석」(In Parabolas Salomonis expositio mystica);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송가」(Carmina) I, 2, 589 참조). 바로 여기서 스포츠가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포츠는 나 자신을 타인을 향해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타인이란 눈에 보이는 상대방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 깊은 곳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없다면 스포츠는 이기심으로 벌이는 메마른 경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할 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주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Dai!”(힘내!) 어쩌면 평소에는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을 테지만, 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외침입니다. “dare”, 곧 “주다”라는 동사의 명령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단순히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라는, 온 마음을 다해 뛰어보라는 뜻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말하자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응원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지도해주는 이들을 위해, 함께하는 동료들을 위해, 관중을 위해, 심지어 상대편을 위해서까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라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스포츠라면 결과를 넘어선 이런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스포츠를 사랑하셨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포츠는 삶의 기쁨이요 놀이요 축제입니다. 바로 그렇게 소중히 여겨져야 합니다. (…) 생산과 소비라는 냉혹한 논리나, 삶을 바라보는 순전히 공리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다른 모든 관점을 뛰어넘어, 스포츠 본연의 무상성과 우정의 끈을 단단히 하는 힘,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게 하는 능력을 되찾아야 합니다”(스포츠인의 희년을 위한 강론, 1984년 4월 12일).

이제 이런 관점에서 세 가지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야말로 오늘날 스포츠를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의 귀한 도구로 만들어 주는 특징들입니다.

먼저, ‘고독’이 깊어가는 사회를 생각해 봅시다. 극단적 개인주의가 관심의 중심을 “우리”에서 “나”로 옮겨놓았고, 마침내 우리는 타인을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포츠는, 특히 팀 경기에서는 더더욱 협력의 소중함을 가르쳐 줍니다. 함께 걸어가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느님 생명의 핵심에 자리한 나눔의 가치를 체험하게 해줍니다(요한 16,14-15 참조). 이렇게 스포츠는 민족과 민족 사이에서, 공동체 안에서, 학교와 일터에서, 가정에서 만남과 화해를 이끄는 소중한 다리가 됩니다!

둘째, 점점 더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어 가는’ 현실을 봅시다. 기술이 멀리 있는 사람들을 가깝게 연결해 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함께 있는 것의 생생함을 일깨워 줍니다. 몸으로 느끼고, 공간을 체험하고, 고통을 견디며, 실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줍니다. 가상 세계로 도피하려는 유혹에 맞서 스포츠는 자연과 구체적인 삶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사랑은 오직 현실 속에서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요한 3,18 참조).

셋째, 강자와 승자만이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스포츠는 지는 법도 가르쳐 줍니다. ‘패배의 기술’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가장 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곧 연약함, 한계, 불완전함이라는 인간 조건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바로 이 연약함을 체험할 때 우리 마음이 희망을 향해 열리기 때문입니다. 절대 실수하지 않고 절대 지지 않는 운동선수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진정한 챔피언들은 완벽한 기계가 아닙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찾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관련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시다. 그분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참된 운동선수”라고 부르셨습니다. 힘이 아닌 사랑의 충실함으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스포츠인의 희년을 위한 미사 강론, 2000년 10월 29일 참조).

우리 시대 많은 성인들의 삶에서 스포츠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수련으로서든 복음을 전하는 길로서든 말입니다. 스포츠인들의 수호성인 복자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를 떠올려 봅시다. 복자는 오는 9월 7일 성인품에 오를 예정입니다. 단순하면서도 빛나는 그의 삶은 우리에게,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챔피언이 아니듯, 아무도 성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중요한 진리를 일깨워 줍니다. 매일매일 사랑을 연마하고 훈련할 때 우리는 궁극의 승리에 가까워집니다(로마 5,3-5 참조).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일꾼이 됩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0년 후, 가톨릭 스포츠 협회 회원들에게 말씀하시며 이를 강조하셨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회에 평화와 희망을 되찾아 주는 데 스포츠가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를 상기시키시면서 말입니다(이탈리아 스포츠 센터 회원들에게 한 연설, 1965년 3월 20일 참조). “여러분이 쏟고 있는 모든 노력은 새로운 사회 건설을 향하고 있습니다. (…) 스포츠가 품고 있는 건전한 교육적 요소들을 통해 인간의 영적 향상을 위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질서 있고 평화로우며 건설적인 사회의 첫 번째이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입니다”(같은 곳).

사랑하는 스포츠인 여러분, 교회가 여러분에게 맡기는 사명이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명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활동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비추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모든 형제자매들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운동선수, 지도자, 단체, 모임, 가정 모두 열정을 품고 이 사명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강조하신 바와 같이, 복음에서 마리아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심지어 “서둘러”(루카 1,39 참조) 길을 떠나십니다.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당신 자녀들을 도우러 나설 준비를 항상 갖추고 계셨습니다(세계청년대회 자원봉사자들에게 한 연설, 2023년 8월 6일 참조). 성모님께 간청합시다. 우리의 모든 수고와 열정에 함께해 주시기를, 그리고 가장 큰 승리에 이를 때까지 언제나 최선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바로 영원이라는 승리, 경기가 더 이상 끝나지 않고 기쁨이 넘쳐나는 “끝없는 경기장”에서의 승리에 이를 때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청합니다(1코린 9,24-25; 2티모 4,7-8 참조).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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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6월 2025,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