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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와 학대로 신음하는 무수한 어린이들... 우리는 입 다물고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1월 8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지금도 만연한 “아동 노동의 폐해”에 대해 성찰하며, 전 세계 곳곳에서 “생명의 가치를 경시한 채 이윤만을 좇는 경제 체제가 어린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현실을 규탄했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이 “희망과 사랑의 보화를 무참히 파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어린이들이 소중한 어린 시절을 빼앗기는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 아버지께 가장 사랑받는 이들 (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와 다음 주 교리 교육에서는 ‘어린이들’, 특히 ‘아동 노동’의 폐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화성이나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열심이면서도, 정작 우리 주변에서 소외되고 착취당하며 학대받는 아이들의 아픈 눈빛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다른 행성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연구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모욕당하고 착취당하며 죽음에 이르도록 상처를 받은 아이들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는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봅시다. “성경은 아이들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가?” 흥미롭게도,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아들”을 뜻하는 ‘벤’(ben)입니다. 무려 오천 번이나 나옵니다. “보라, 아들들은 주님의 선물이요 몸의 소생은 그분의 상급이다”(시편 127[126], 3). 이처럼 자녀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귀한 선물이 늘 존중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역사의 현장으로 인도합니다. 그곳에서는 기쁨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고통받는 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옵니다. 예를 들어, 애가서에는 이런 가슴 아픈 구절이 나옵니다. “젖먹이는 목말라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고 어린것들은 빵을 달라고 애원하건만 그들에게 한 조각 주는 이가 없구나”(애가 4,4). 예언자 나훔은 고대 도시인 테베와 니네베의 비극을 전하며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젖먹이들도 거리 모퉁이마다 내동댕이쳐졌구나”(나훔 3,10 참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림과 가난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전쟁터에서는 무고한 아이들이 폭탄에 희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깊이 새겨보아야 합니다.

심지어 갓 태어난 예수님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헤로데왕은 베들레헴의 어린 아기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라 명했고, 이는 예수님께도 큰 시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는 시대와 장소만 달리한 채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가족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낯선 땅으로 떠나야 했습니다(마태 2,13-18 참조). 마치 오늘날 전쟁과 박해를 피해 떠나는 수많은 난민들, 난민 어린이들처럼 말입니다. 시련의 때가 지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작은 마을 나자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신의 법적인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우며 성장하셨죠(마르 6,3; 마태 13,55 참조). 그리하여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루카 2,40)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제자들과 함께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어느 날, 몇몇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축복해 주시길 바라며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를 못마땅히 여겨 그들을 꾸짖었죠. 당시에는 어린이를 자기 생각도, 의견도 없이 어른들 말씀만 따라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관습을 깨뜨리시고 제자들을 불러 이르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루카 18,16).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어른들의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이어 엄숙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루카 18,17).  

또 다른 비슷한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이를 불러 제자들 한가운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이어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태 18,6).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어린이들이 홀대받거나 학대받는 일을 절대 눈감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어린이들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린이를 향한 모든 폭력과 학대를 적극적으로 막아내고,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목소리를 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원치 않는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웃음을 잃은 아이, 꿈조차 꿀 수 없는 아이는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지도 모르고 그 재능을 꽃피우지도 못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생명의 가치를 경시한 채 이윤만을 좇는 경제 체제가 어린이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가장 귀한 희망과 사랑의 보화를 무참히 파괴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하느님의 마음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누구든 반드시 하느님 앞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사람, 특히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현실 앞에서 눈을 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어린 형제자매들은 사랑과 보호 속에서 자라야 하지만, 지금 그들은 어린 시절과 꿈마저 빼앗긴 채 착취당하고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비극적 현실을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주시어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필 수 있게 하시고, 모든 어린이가 예수님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혜와 은총도 함께 자라나며(루카 2,52 참조), 넘치는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길 청합시다.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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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1월 202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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