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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인사하는 오스카상 수상자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교황과 인사하는 오스카상 수상자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Vatican Media)

교황, 예술 재단 회원들에게 “전쟁 중인 세상에서 경이로움과 조화로움을 만들어 내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창립 75주년을 맞이한 ‘가톨릭 영화 공연 재단‘ 회원들을 만났다. 교황은 이 땅의 많은 전쟁과 악 앞에서, 성경의 창조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하느님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이들을 동행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에는 재단 회원들을 비롯해 재단과 친분이 있는 몇몇 배우와 감독들도 함께했다. “여러분의 작업에 감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작업은 복음적이고 시적인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한 편의 시이기 때문입니다.”

Andrea De Angelis / 번역 이재협 신부

“저는 복음적이고 시적인 여러분의 작업을 좋아합니다. (…) 여러분의 작업은 조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월 20일 오전 바티칸에서 창립 75주년을 맞이한 이탈리아 주교회의 산하 ‘가톨릭 영화 공연 재단’ 회원 약 200명을 비롯한 몇몇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다. 교황은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재단 회원들에게 따로 배부하고 이날 즉흥적으로 원고 없이 참석자들에게 연설했다. 교황은 성령께서 하시듯 차이를 조화롭게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만남에는 오스카상 수상자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을 비롯해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 안토니오 알바네제 배우 겸 감독, 쟈코모 포레티 배우,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 수잔나 니키아렐리 배우 겸 감독 등이 참석했다. “재단의 활동은 차이를 말살하거나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아름다움이란 모든 것의 조화를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

교황은 진리에 대해 말하는 신학 서적은 많지만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신학 서적은 적다며 “교회 내에서 아름다움은 한쪽이나 구석에 치워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매우 중요하다.

“신학 서적은 진리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말하지 않습니다. 과거 철학이 신학의 ‘하녀’로 인식됐던 것처럼 아름다움도 ‘하녀’ 취급을 받는 셈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은 사목신학적 성찰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이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조화를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 장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 장면   (Vatican Media)

모든 것을 뛰어넘는 조화

교황은 다름이나 차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될 기회라며, 이를 위해 성령께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름다움은 모든 것의 조화를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입니다. 성령께서는 반대와 적대적인 것 등 모든 것의 조화를 이루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제 자신에게 매우 자주 상기하며 성령 강림이 있던 날 아침을 상상합니다. 모든 이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큰 혼란이 발생했던 때를 말입니다. 성령께서 이 모든 상황을 조화롭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르고, 모든 것이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조화가 모든 것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활동은 조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황은 위대한 영화로 평가받는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물론 위대한 영화의 기준이 되는 것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기쁨과 고통 속에서 조화를 표현하고 인간적 조화를 드러내는 영화만이 역사에 길이 남는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교황은 참석한 재단 회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한편, 지나온 역사를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초대했다.

“여러분의 작업에 감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작업은 복음적이고 시적인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한 편의 시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는 일은 시적 작업입니다. 여러분이 걸어온 여정에 감사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기반으로 더욱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은 이탈리아인으로서 영화 산업 분야에 있어 영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제작자인 동시에 관객인 하느님

교황은 이날 만남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 대신 즉석 연설로 참석자들을 환영했다. 한편, 사전에 준비한 원고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로 가득해져 점점 더 인공적으로 변하는 세상 안에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다시 눈을 뜨게 하는 임무”를 예술인들에게 당부했다. 교황은 창조 이야기 안에서 “하느님은 제작자인 동시에 관객”으로 드러나는 사실에 주목했다. 성경은 “개입, 아름다움과 열정, 곧 사랑 이야기”인 창조 이야기로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문화적 활동의 의미, 곧 한편에는 창조적 활동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창조된 세상을 조망하며 평가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놀라움의 아름다움

교황은 이탈리아에서처럼 가톨릭 세계가 소셜 커뮤니케이션, 특히 영화를 통해 경험의 다양성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상기했다. 이어 라디오, 연극, 영화뿐 아니라 비오 11세 교황이 설립한 ‘가톨릭 활동’의 방송국 등이 이어온 이 사명을 오늘날에는 이탈리아 주교회의 산하 ‘국립 영화 평가 위원회’가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공동체 마을 회관 및 본당과 주일학교의 결실도 잊지 않았다. 교황의 사전 연설문은 ‘놀라움’에 집중돼 있었다.

“하느님 자신도 피조물의 아름다움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인간을 바라보실 때 더욱 그러해 보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 사실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놀라운 예술작품, 무엇보다 그 놀라운 작품을 제작하는 이가 예술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교황과 인사하는 일리아나 카바니 감독
교황과 인사하는 일리아나 카바니 감독   (Vatican Media)

세상은 놀라운 작품과 표징을 필요로 합니다

교황은 20세기 러시아의 영화 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년 제작)는 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업적을 통해 15세기 러시아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교황은 이 영화를 “걸작”으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르콥스키의 걸작 ‘안드레이 류블료프’를 떠올립니다. 류블료프는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는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화가 류블료프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미를 찾아 헤매던 중 종소리를 듣게 됩니다. 큰 종의 울림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이 다시 열리고, 그의 혀가 풀려 다시 말을 하게 됐으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화면 가득 그가 작업한 각양각색의 수많은 성화가 등장합니다.”

동방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는 안드레이 류블료프는 많은 이들에게 가장 위대한 성화 화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은 그 종소리가 류블료프 안에서 어떻게 놀라움을 불러 일으켰는지 강조했다.

“마치 기적처럼 땅과 청동에서 나온 그 종소리는 류블료프의 영혼을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고, 어떤 의미에서 그는 그에게 속삭이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네 마음을 열어라’라는 목소리를요. 마치 성경의 예수님께서 ‘에파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죠.”

하느님의 놀라움

교황은 성경의 첫 부분에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창조 이야기를 떠올리며, 창조주이시고 관객이신 하느님도 놀라움을 체험하셨다고 말했다.

“창조 이야기는 개입, 아름다움과 열정, 곧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활동을 마치신 뒤 항상 놀라움을 표현하심으로써 스스로 당신 업적의 관객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보시고 이렇게 작품을 평가하셨습니다. ‘보시니 좋았다.’ 특히 당신의 모상대로 만드신 인간을 보시고는 더욱 강렬한 ‘후기’를 남기셨습니다. ‘보시니 참 좋았다.’”

마찬가지로 예술인의 소명, 문화 활동의 가장 심오한 의미 또한 이 창조 이야기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랑하는 감독과 배우를 비롯해 영화 산업에 헌신하는 모든 친구 여러분, 성경의 창조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여러분의 문화 활동의 의미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조 이야기 안에는 한편으로 창조 활동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피조물에 대한 조망과 평가가 있습니다. 저는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이 창조 이야기의 놀라운 장면 속에서 예술인 여러분 자신을 반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 이야기는 상상력과 성찰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놀라움을 줄 것입니다.” 

밀라니 몬시뇰 “영화가 예수님 말씀의 메아리가 되도록 힘씁시다”

교황의 즉석 연설 전 가톨릭 영화 공연 재단 이사장 다비데 밀라니 몬시뇰은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교황에게 전했다. “유서 깊은 잡지 「시네마 매거진」, 디지털 미디어 및 서적, 토론을 거친 편집 사업을 비롯한 여러 행사를 통해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는 진리를 찾는 여정 안에서 질문하고 희망하며, 상처와 선한 역량으로 존재의 물질성을 초월한 실존의 의미를 찾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밀라니 몬시뇰은 자신들의 사명이 “점점 더 풍부해지는 현대 영화 촬영 기법을 통해 예수님 말씀의 메아리가 되고 예수님 얼굴을 밝게 비추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러한 사명의 완수를 위해 “새로운 언어로 말해야 한다”며, 머지않아 영화 제작을 위한 진정한 미디어 컴퍼니가 될 새로운 디지털 편집 허브를 최근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남의 말미에 밀라니 몬시뇰은 영화계 관련 기자와 감독 등 많은 동료들 가운데 2000년과 2018년 각각 브레송상을 수상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을 교황에게 소개했다. 브레송상은 ‘가톨릭 영화 공연 재단’과 협력해 교황청이 수여하는 유일한 영화 관련 상으로 교황청 홍보부와 교황청 문화교육부가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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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월 2023,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