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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악에 대응하십시오. 사랑이 갈등을 변화시킵니다”

셈이나 이익의 척도로 사랑을 가늠하지 말고 무상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월 19일 연중 제7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은 “특별”하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능한 회계사”가 아니라고 짚은 교황은 모든 이가 “사랑의 불균형”을 살아냄으로써 선으로 악에 대응하도록 당부했다. 하느님의 사랑은 “갈등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사랑”이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쉽지 않은 것을 요구하는 말씀,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초대하십니다(마태 5,38-48 참조).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와 친구인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우리를 자극하십니다. “만일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47절)”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오늘 제가 여러분의 관심을 끌고 싶은 요점이 이것입니다.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straordinario)이 무엇이겠느냐?’

“남보다 잘하는 것”, 곧 남들과 다르게 “비범하다”(straordinario)는 것은 일반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것, 지혜를 통해 습관적인 관행과 통상적인 셈법을 넘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기대치와 우리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정돈하거나 통제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보상을 받지 못할까봐, 혹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하게 드러내는 바람에 나중에 실망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그러한 실망을 피하기 위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주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너그럽게 대하길 선호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나쁘게 대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나쁘게 대함으로써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경고하십니다. 우리도 ‘그것은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기 마련’이라는 태도로 범속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이런 논리를 따르신다면 우리에겐 구원의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느님의 사랑은 항상 “특별”(straordinario)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우리는 공리주의 이론의 범속함에 머물려고 애를 쓰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함, 거저 주어지는 사랑의 특별함에 우리 마음을 열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셈법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를 쓰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불균형’을 살아내라고 우리를 자극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능한 회계사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사랑의 불균형으로 이끄십니다. 이에 놀라지 맙시다. 하느님께서 불균형을 살아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십자가의 불균형’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불균형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길을 잃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으러 오시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없고 아무것도 보답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썼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로마 5,7-8).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일 때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착하거나 그분께 무언가를 돌려드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은 항상 넘치고, 항상 셈법을 넘어서고, 항상 불균형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그분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리사욕의 논리를 버리고 셈이나 이익의 척도로 사랑을 가늠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에 악으로 대응하지 말고, 과감히 선을 행하고,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위험을 무릅쓰라고 초대하십니다. 비록 그 대가로 거의 혹은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갈등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거리감을 좁히고, 적개심을 이겨내고, 증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보상의 논리를 따르는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것처럼 무상의 논리를 따르는가?’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합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성령과 당신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주심으로써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성모님께 기도합시다. 성모님께서는 사익을 따지지 않고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심으로써 하느님 은총의 걸작품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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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월 2023, 00:22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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