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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장례미사, 교황 “그분은 우리에게 지혜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5일 약 5만 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 베드로 광장에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를 거행했다. 기도 분위기 속에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이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일부는 박수로 고인을 맞이했다. 제대 앞쪽에 위치한 고인의 관 위에는 펼쳐진 복음서가 놓였다. 교황은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이 복음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평생을 바쳐 전하고 증언한 복음”이라며 “우리의 형제를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맡긴다”고 말했다. 장례미사가 끝나자 광장에 모인 이들은 “산토 수비토!(Santo subito, 즉시 성인으로!)”라고 외쳤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교회 공동체인 우리도 우리의 형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고자 합니다. 평생을 바쳐 전하고 증언한 복음의 기름으로 불을 밝힌 그분의 등불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손으로 받아 주시길 빕니다.”

2022년 1월 5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를 거행했다. 오르간 소리와 종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이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광장에 모인 많은 이들은 차분한 박수로 고인을 맞이했다. 운구하는 이들이 고인의 관을 카펫 깔린 제단 앞 넓은 공간 한가운데에 안치하자 검은 옷을 입은 메모레스 도미니(Memores Domini) 회원들 및 유가족들과 함께 입장했던 전임교황의 개인비서 게오르그 겐스바인(Georg Gänswein) 대주교와 교황전례원장 라벨리 몬시뇰이 고인의 관 위에 복음서를 펴서 올려놓은 뒤, 무릎을 꿇고 관에 입을 맞추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한편, 입관 예절은 전날(1월 4일) 저녁 거행됐다. 측백나무로 만든 전임교황의 관은 장례 후 아연으로 만든 관에, 최종적으로 참나무 관에 삼중으로 모셔진다. 관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교황직을 상징하는 동전과 메달, 증서와 팔리움이 함께 모셔졌다. 복음서가 펼쳐진 채 성 베드로 광장에 전임교황의 관이 놓인 모습은 과거 전임교황이 추기경 시절 직접 주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장례미사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 옆에서 전임교황의 개인비서 겐스바인 대주교와 교황전례원장 라벨리 몬시뇰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 옆에서 전임교황의 개인비서 겐스바인 대주교와 교황전례원장 라벨리 몬시뇰   (VATICAN MEDIA Divisione Foto)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이날 성 베드로 대성전 앞 광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남녀노소 5만여 명이 광장 곳곳을 가득 메웠다. 젊은이들과 학생들, 많은 사제와 수녀들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온 여러 단체들은 자신들의 깃발을 흔들며 “베네딕토 교황님, 고맙습니다”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손에 들었다. 새벽 5시30분부터 입장을 위해 줄을 선 이들은 짙은 안개가 낀 시간부터 소지품 검사를 위해 1시간 정도 줄을 서서 경찰의 확인을 받고 입장했다. 지난 사흘간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된 유해 앞에서 조문한 신자들은 이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이탈리아 정부 대표단을 비롯해 여러 국가 당국자, 민간 대표 및 여러 그리스도교 교회 대표들이 함께했다. 장례미사는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으며, 생전 고인의 유지에 따라 검소하게 진행됐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   (Vatican Media)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전 9시20분경 휠체어에 앉아 야외에 마련된 제대에서 추기경 130여 명, 주교 400여 명, 사제 3700여 명과 함께 공동주례로 장례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으로 강론을 시작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교황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께 자신의 온 삶을 바친 전임교황을 기억했다. 

양떼를 사랑한 목자

교황은 하느님 아버지의 손이 “용서와 연민의 손, 치유와 자비의 손, 기름부음과 축복의 손”이라고 말했다. 또한 못에 꿰뚫린 그리스도의 손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보고 우리가 그 사랑을 믿도록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임교황의 삶은 “온전히 거저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며 주님과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조건 없는 헌신”과 “사목자라면 누구나 맞닥뜨려야 하는 갈림길과 반대 속에서 당신 양떼를 돌보라 하신 주님의 초대에 신뢰로 순종하며 기도에 헌신”한 삶이었다고 말했다.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목자는 자기 백성을 위해 전구하는 수고로움과 백성에게 도유하는 수고로움을 어깨에 짊어집니다. 특히 선의 승리가 필요한 곳, 형제자매들의 존엄이 위협받는 데서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   (Vatican Media)

고통스럽지만 견고한 평화

교황은 “주님께서는 어떤 오해가 생기더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희망하고,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된 온유함을 주신다”고 말했다. “돌본다는 것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고통을 받을 준비가 돼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황은 이러한 마음이 “성령의 위로로 지탱되는 헌신”이라고 강조했다. “이 마음은 성모님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십자가 발치에서 기도하는 모든 이의 충만한 증언입니다. 고통스럽지만 공격적이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견고한 평화로 말입니다.”

복음의 증인

교황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온 삶으로 보여준 증언을 견고하게 연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 공동체인 우리도 우리의 형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그분을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고자 합니다. 평생을 바쳐 전하고 증언한 복음의 기름으로 불을 밝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등불을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손으로 받아 주시길 빕니다.” 교황은 끝으로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사목규칙』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친구에게 영적 동행을 부탁하며 쓴 글을 인용했다. “그대에게 간청하니, 현세의 삶에서 폭풍우가 닥쳐올 때 그대의 기도로 나를 지탱해 주십시오. 내 잘못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굴욕을 주더라도 그대의 공덕이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입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의 말에서 우리는, 정녕 혼자서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의 기도와 돌봄에 자신을 내어 맡길 줄 아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충실한 벗 베네딕토여”

교황은 “여기 모인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은 이제 자신들의 목자였던 이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며 그의 생명을 하느님께 맡긴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처럼 우리도 스러지지 않는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주려고 감사의 향유와 희망의 유향을 들고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오랜 세월 우리에게 베풀었던 것과 똑같은 기름부음과 지혜와 온유한 사랑과 헌신을 전임교황에게 베풀고자 합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충실한 벗 베네딕토여, 마침내 영원히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대의 기쁨이 완성되기를 빕니다!”

군중의 외침 “산토 수비토!”

장례미사 후 마지막 인사와 고별식이 이어졌다. 조용히 미사에 참례했던 이들은 큰 박수를 쳤고, 일부는 “산토 수비토!(Santo subito, 즉시 성인으로!)”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산토 수비토!”를 적은 현수막도 보였다. 운구자들은 전임교황의 관을 메고 성 베드로 대성전 안으로 향하다가, 제단 뒤쪽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던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잠시 멈췄다. 교황은 전임교황에게 축복하고 관에 손을 얹은 뒤 몇 초 간 침묵 중에 기도한 다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시 운구자들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안치하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무덤으로 향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신의 전임자이자 10년간 함께 일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묻혔던 곳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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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1월 2023, 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