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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인사 “악마는 다시 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2일 오전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인사를 전하는 자리에서 “예의 바른 악마”를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예의 바른 악마는 교회에 봉사하는 이들이 더 이상 회심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도록 유혹한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기억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평화를 강조했다. “이 땅에 오시는 평화의 주님을 맞이하며 온갖 종류의 무기를 손에서 내려 놓읍시다.”

Alessandro De Carolis / 번역 이재협 신부

“우리는 집 안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형태와 제도가 매우 질서정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무결점 가운데에서도 ‘지옥’이 존재한다. 예의 바른 악마는 복음을 섬기려는 축성받은 이의 마음에 슬며시 들어와 유혹한다. 자신이 악에서 멀어졌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회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가장 유용한 덕목 중 하나인 깨어 있음(vigilanza)”을 실천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관례에 따라 12월 22일 오전 사도궁 ‘베네디치오네 홀’에서 교황청 관료들을 만나 성탄 인사 연설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말했다.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복수가 정의로 변질될 위험에 처한 오늘날, 교황은 세상의 폭풍우를 헤쳐 나가는 사명에 임하며 교회라는 배를 모는 이들(교황청 관료들)에게 긴 연설을 통해 당부의 말을 전했다.

악을 비난하기보다 악에 맞서야 합니다

교황은 연설을 통해 “본질로 다시 돌아갈 것”을 당부했다. 본질로 돌아간다는 말은 끊임없이 우리가 받은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고, 항상 “회심”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회심이란 단지 “악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아울러 2022년 개막 60주년을 맞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여정과 전체 교회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오늘날 시노드 여정의 순간을 가리켜 모두 회심을 위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회심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가운데 은밀하게 활동하는 악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회심을 결심하며 악에 대응해야 합니다. 단순히 악을 고발하는 일은 그 자체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더 중요한 건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악의 논리에 사로잡혀 방치된 상태로 두지 않도록 변화를 꾀하는 일입니다. 악의 논리는 흔히 세속의 논리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베네디치오네 홀’에서 교황청 관료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베네디치오네 홀’에서 교황청 관료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완고함과 “예의 바른 악마”

교황은 최근 “식별”을 주제로 진행 중인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에서 언급한 “깨어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실천해야 할 가장 유용한 덕목 중 하나가 깨어 있음입니다.” 특히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자세”, 곧 “이제 우리가 복음에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은밀한 확신”이라고 교황은 지적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원히 유효한 형태로 결정화하려는 오류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이 견지해야 하는 자세는 바오로 사도처럼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방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일”이다. 완고한 사람은 자신 안에서 악이 점점 진화하고 있으며, 한번 쫓아낸 유혹들이 이전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하지만 우아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다. 교황은 최근 이 같은 주제를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그들은 ‘예의 바른 악마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며시 내면으로 들어옵니다. 매일 양심성찰을 통해 악마가 내면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안주하지 않도록 성가시게 하는 용기

교황은 루카복음 15장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집 안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직과 단체라는 성벽 내에서, 곧 교회의 중심인 교황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더 나아지기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면서 말이죠.” 교황은 교황청 관료들을 향해 자신이 왜 가끔 이렇게 쓴소리를 하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손에 화려한 꽃을 들고 찾아오는 ‘예의 바른 악마’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끔 여러분에게 엄격하고 혹독하게 들릴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친절과 애정의 가치를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치고 억눌린 이들을 위한 애정을 아껴두고, 나아가 토니노 벨로 주교님이 좋아하신 표현처럼 ‘안락하게 안주하는 이들을 성가시게 하는 용기’를 저도 내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누리는 안락함은 그저 악마의 눈속임일 뿐 성령의 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황이 교황청 관료들에게 선물한 두 권의 책
교황이 교황청 관료들에게 선물한 두 권의 책

분노가 아닌 자비를

교황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화두인 ‘전쟁’으로 연설의 주제를 옮겼다. 교황은 우크라이나에서 고통받는 평화,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세계의 많은 나라를 기억하며 강제수용소에서 숨을 거둔 신학자 본 회퍼 목사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오직 그 고통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교황은 평화가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며, 우리가 진정으로 전쟁 종식을 원한다면 그로부터 평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일을 쏘는 전쟁을 비롯해 언어 폭력, 정서 폭력, 권력에 의한 성 학대 등 숨겨진 모든 폭력도 마찬가지다. “모든 전쟁을 종식하려면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가 정의로운 일이 되고, 사랑은 나약함의 한 형태로 인식될 뿐입니다.”

“이 땅에 오시는 평화의 주님을 맞이하며 온갖 종류의 무기를 손에서 내려 놓읍시다. 모든 이가 자신의 위치와 권력을 이용해 다른 이를 모욕하지 않길 빕니다. 자비는 다른 사람에게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 용서는 언제나 또 다른 가능성을 다시 줍니다. 용서는 바로잡고 다시 시작하는 데서 성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교황은 이날 만남을 마치며 참석한 이들에게 「바티칸 뉴스」 편집장 안드레아 토르니엘리의 저서 『예수의 생애』와 베니토 조르제타 신부가 쓴 『저편으로 건너가자』를 선물했다. 『예수의 생애』는 나자렛 출신 예수님의 삶을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책으로, 이 책의 서문을 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설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몰리제 주 성 티모테오와 테르몰리 성당 주임 신부가 쓴 두 번째 책은 마피아 생활을 청산한 루이지 보나벤투라와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루이지가 은드랑게타(‘Ndrangheta,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 중 하나)에 속해 있던 당시 경험과 현재 정의를 위해 힘쓰도록 다시 태어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에필로그는 루이지 초티 신부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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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2월 2022,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