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사제들에게 “고해소에서 엄격함으로 일관하지 말고 많이 기도하십시오”
Salvatore Cernuzio / 번역 박수현
첫째, 사제는 친밀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함을 지르고, (...) 서너 가지 일에 매달려 대화할 줄 모르는” 사제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제는 온유한 사랑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왜냐하면 온유한 사랑이 없다면 “아이를 어루만지거나 노인을 안아줄 줄 모르는” 사제가 되기 때문이고,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를 구하러 오는 신자들에게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사제들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제는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제는 “쓸모없이” 늙어가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10일 중남미 지역 신학교 총장 및 사제 양성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내려 놓고 즉흥적으로 연설했다. 사전에 준비한 연설문은 다음날(11일) 참석자들에게 전달됐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친밀함, 자비, 온유한 사랑”의 역량을 갖춘 선한 사제의 모습을 강조하는 한편, 사제가 맞닥뜨리는 한계와 위험 그리고 온갖 유혹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교황은 12쪽 분량의 기존 연설문을 내려 놓고 즉흥적으로 연설했다. 교황은 준비된 연설문의 내용이 “묵직하다”며 “시간을 내어 차분히 읽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교황은 스페인어로 연설하며 “여러분의 사제 생활, 특히 신학교에서 양성 지도자로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에 대해 마음에 품고 있는 서너 가지”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온유한 사랑의 역량을 갖추십시오
교황의 첫 번째 권고는 신자들에 대한 행동과 태도에 관한 것이다.
“고함을 지르고, 모든 일에 과부하가 걸리고, 서너 가지 일에 매달려 대화할 줄 모르고, 아이를 어루만지거나 노인을 안아줄 줄 모르고, 병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그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병문안을 가지 않는 사제가 본당 사목 계획이나 그 밖의 다른 것은 잘 지킵니다.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양성 중 식별
교황은 언제나 민감하고 복잡한 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아울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변화를 겪은 사제 생활의 측면도 언급했다. “저희들 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일련의 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양성은 그 제도, 그 체계대로 이뤄졌습니다. ‘오늘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내일은 이것저것을 하고, (…)’ 그렇게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서품을 받았고, 다른 사람은 불운하게도 신학교를 떠났습니다. 당시 훌륭한 사제들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훌륭한 사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예전처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른 시대, 다른 모습, 다른 내용이므로 오늘날에 더 이상 적용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그 당시의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그때와는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우리가 신학교에 있는 것입니다.”
엄격함의 유혹
“엄격한 양성 프로그램으로” 훈련을 받은 젊은이는 모두 결국 엄격성이라는 유혹을 받게 된다. “재앙과 같은 수도회들이 생겨나면서 조금씩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태도로 무엇이든 ‘안 됩니다’,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이 엄격함 뒤에 틀림없이 부패가 숨어 있습니다.”
사전에 준비한 대답은 소용이 없습니다
교황은 전체 양성 기간 동안 젊은이들을 동행하는 법을 “제대로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일 양성 지도자가 식별할 역량이 없다면 자신의 주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교님, 저를 다른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저는 여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식별은 침묵과 기도, 동행을 전제로 하고 또한 함께 고통을 겪을 준비가 돼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식별은 사전에 준비한 대답이 없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사전에 준비한 대답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명확한 교리와 함께 그들을 동행해야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동행해야 합니다.”
성소자의 양적 감소
교황은 성소자의 양적 감소 문제도 언급했다. “신학생의 양적 감소도 문제입니다. 몇 안 되는 신학생이 있는 신학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학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함께하십시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가까이, 고해성사에서 자비롭게
‘친밀함’은 교황의 또 다른 권고 사항이다. 교황은 친밀함에 대해 열정을 갖고 있다고 직접 말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표현되므로 “친밀함”이다. “친밀함이 널리 퍼져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제와 신학생은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가까이 있어야 하냐고요? 교구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야 할까요? 그들 중 일부는 그녀들과 가까이 지내다가 혼인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가까이 있어야 할까요? 어떻게 가까이 있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자비와 온유한 사랑으로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신학생들 안에서 구현돼야 합니다. 그들은 선하고 자비로우면서도 온유한 사랑이 넘치는 사제가 돼야 합니다.”
교황은 “고해성사를 했지만 고해사제에게서 야단을 맞고 울면서 고해소를 나오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신자들이 한 가지, 두 가지, 수만 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고해를 하더라도 여러분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용서하십시오! 고해자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굳이 그에게 혹독하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죄가 대죄이기 때문에 사해줄 수 없습니다. 주교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자녀가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신부는 좋든 싫든 한마디로 범죄자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교황은 모든 사제들에게 “기도하라”고 분명하게 권고했다.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제는 ‘쓸모없이’ 살게 됩니다. 아마도 그는 노년까지 견디며 살 수 있을 테지만 기도하지 않고 안일하게 살면서 쓸모없이 늙어갈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러한 것을 대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죄보다 더 나쁜 안일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대죄는 여러분을 두렵게 하고 즉시 고백하러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일함은 삶의 방식, 너무 과하지 않는 삶의 방식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끝까지 참아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안일함에 빠집니다. 진지하게 기도하고, 여러분의 영성 지도 신부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영적 동반자와 함께하는 기도를 확신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아들처럼 주교들과 가까이 지내십시오
교황은 우리가 의무적으로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게 아니라 “기도할 필요성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제가 바쁠수록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도 안에서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교황이 지적한 세 가지 친밀함이 있다. 첫 번째로 주교와의 친밀함은 타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주교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주교는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요컨대, 불쌍한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교는 여러분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주교의 면전에서 말할 용기가 없다면 엉뚱한 사람에게 가서 말하기보다 차라리 침묵을 지키십시오. 그렇지만 남자답게 주교에게 가거나 주님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주교 가까이에 머물고, 주교를 찾아가십시오. 주교도 사제들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무언가를 얻으려고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아들처럼 주교 가까이에 머물러야 한다. 이는 “존중”을 의미한다. “노아의 작은 아들처럼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누워 잠든 아버지를 보고 박장대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은 노아의 다른 두 아들이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준 것처럼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주교가 종종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그러면, 아들인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의 포도원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를 덮어주십시오. 그는 여러분의 아버지입니다. 용기 내어 주교에게 말하십시오. 그러나 그 주교의 상처받고 죄 많은 모습을 다른 이들과 함께 비판하며 비웃거나 여러분의 일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지 마십시오. 주교는 여러분의 아버지입니다.”
험담을 조심하십시오
사제들 사이에서도 이와 동일한 친밀함이 필요하다. 교황은 “험담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험담은 우리 성직자들의 가장 추악한 악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는 동료를 헐뜯습니다. (…) 하지만 그들은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면전에서 말할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말하지 마십시오. 험담하지 마십시오!” 교황은 교회에도 험담이 “너무나 많다”고 지적했다. “어디에나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더 이상 험담하지 맙시다. 험담이 우리 삶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백성과의 친밀함”을 권고하며 이날 만남을 마무리했다.
“저는 사제들이 피로에 절어 하느님 백성을 잊어버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매우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의 협력자를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신학생들에게 그들이 나고 자란 마을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십시오. (...) 하느님 백성의 냄새를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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