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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작은 교회는 은총입니다. 움츠러들지 마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15일 누르술탄의 주교좌성당에서 주교단, 사제단, 수도자, 신학생들을 만났다. “여러분은 다른 이들, 다른 종교인들도 필요합니다. 함께 해야만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평신도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제공하라며, 부패와 거짓을 멀리하라고 경고했다. 끝으로 사제들에게 “종교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백성들과 가까이 있는 목자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아무것도 없지만 부유하고, 모든 것 안에서 가난하며, 자만자족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언제나 다른 이들, 다른 종교인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미래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수가 적다는 이유로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자흐스탄 해외 사도 순방 마지막 날 가톨릭 공동체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연설했다. 카자흐스탄의 가톨릭 공동체는 전체 인구 1900만 명 가운데 약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소규모 공동체다. 교황은 부패와 거짓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평신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라면서도 세속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음악인 가정의 환영 연주

카자흐스탄의 주교단, 사제단, 부제,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 사목위원 대표단이 누르술탄의 주교좌성당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 모였다. 소박한 성당에 모인 이들은 교황이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자 큰 박수로 환영하며 꽃을 전달했다. 교황이 도착하는 순간 바이올린, 플루트, 하프, 카자흐스탄 전통 악기 돔브라 등으로 구성된 한 음악인 가정이 환영 연주를 시작했다. 모피 머리장식을 쓰고 전통의상을 입은 이 가정은 23명의 대가족으로, 친자녀는 3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입양한 자녀들이다. 그중 한 소녀는 음악 덕분에 장애를 극복했다.

주교좌성당에서 교황을 맞이하는 음악인 가정
주교좌성당에서 교황을 맞이하는 음악인 가정

아무도 이방인이 아닙니다

교황은 “다양한 얼굴, 역사, 전통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교회”의 표징과 같은 이 가정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중앙아시아주교회의 의장 뭄비엘라 시에라(Mumbiela Sierra) 주교가 “우리 가운데 대다수는 이방인”이라고 한 말을 기억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저마다 다른 장소, 다른 나라에서 왔으니까요. 그러나 교회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아무도 이방인이 아닙니다. 반복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아무도 이방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민족들로 풍요로워진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기억과 약속

교황은 다양성이 풍요로움이라고 강조하며, 카자흐스탄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위한 지침으로 “상속과 약속”을 제시했다. 상속은 기억을, 약속은 미래를 의미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과거는 우리의 기억이고, 복음의 약속은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의 미래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여성과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여성과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뒤로 물러나려는 유혹

교황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그리스도교가 처음 전파된 시기를 떠올렸다. 초세기부터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와서 가톨릭 공동체, 성당, 수도원, 예배소를 세웠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유산과 교회일치를 위한 유산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신앙은 평범한 사람들,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전수됩니다. 우리의 영적·교회적 여정에서 우리에게 신앙을 전했던 이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기억이란 향수에 젖어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과거에 얽매여 꼼짝도 못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오늘의 사건

교황은 “살아있는 기억” 없이는 믿음, 헌신, 사목활동이 “쉽게 타오르지만 이내 사그라지는 짚불처럼 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기억을 잃으면 기쁨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유혹에 빠지기 때문에 하느님과 형제자매에 대한 감사도 사라집니다.” 교황은 우리가 과거의 유산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믿음이 고정적이며 시대를 초월하는 규범으로 이해되어 따라야 할 일련의 일로서 세세대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아닙니다. 믿음은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 믿음은 옛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전시물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박물관에 있죠. 믿음은 ‘언제나 오늘의 사건’입니다. (…) 그래서 저는 신앙이 사투리로 전달돼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황과의 만남의 자리에 참석한 한 수녀
교황과의 만남의 자리에 참석한 한 수녀

작은 교회는 은총입니다

교황은 이 같은 관점으로 미래를, 복음의 약속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는 고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믿음에 대한 많은 도전에 직면할 때 우리는 ‘작고’ 불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젊은이들이 교회 생활에 참여하는 문제, 삶의 어려움 그리고 카자흐스탄과 같은 나라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소수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교황은 “작은 이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행복하다”라는 복음의 말씀을 기억하며, 복음은 숫자의 논리를 뒤집는다고 강조했다. 

“작은 교회, 작은 무리에는 은총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강점, 우리의 숫자, 우리의 조직, 그 밖의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과시하려는 대신, 하느님의 인도 아래 겸손하게 다른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로 함께하기

교황은 ‘작다’는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떠올려준다”고 말했다. 곧,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 나아가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자매들이 필요하다. “겸손한 마음으로, 오직 대화와 상호 환대를 통해서만 우리가 진정으로 모든 이를 위한 선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그것은 카자흐스탄 교회의 특별한 임무입니다. 곧,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집단이 되거나 숫자가 적다고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성령의 불로 타올라 하느님의 미래에 마음을 여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진심 어린 마음을 배우는 학교

교황은 “우리가 서로 형제애 넘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돌볼 때, 우리가 개인적·사회적 관계에서 정의와 진리를 증언하고 부패와 거짓을 거부할 때마다” 그러한 공동체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특히 신학교는 ‘진심 어린 마음을 배우는 학교’가 돼야 합니다. 경직되고 형식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진리와 열린 마음, 나눔의 훈련장이 돼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임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저마다 동등한 존엄을 지닌, 없어서는 안 될 제자들입니다.” 

평신도에게 더 많은 기회를

교황은 평신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경직되거나 성직자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시노드 여정을 걷는 교회, 성령께서 그리시는 미래를 향해 걷는 교회는 참여와 책임을 함께 받아들입니다. 친교로 빚어진 교회는 세상을 만나러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황은 “어디서나 선한 씨앗을 뿌리는 친교와 평화의 사람들”이 되길 당부했다. 이어 “교조주의와 원칙주의”로 완고해지지 말고 “두려움과 한탄”을 거부하면서 기쁨을 살아내고,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강조했다.

복자 부코윈스키의 신부의 모범

교황은 연설을 마무리하며 폴란드 출신 사제로 복자품에 오른 부코윈스키 신부를 기억했다. 그는 병자와 가난한 이,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일생을 바쳤으며 옥고와 노고 속에서도 복음에 충실했던 사제다. “복자품에 오르기 전부터 신부님의 무덤에는 언제나 싱싱한 꽃이 있고, 촛불이 켜져 있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이 사실은 하느님 백성이 성덕을 인정하고 그가 복음을 사랑했던 사제라는 점을 확인시켜줍니다.” 교황은 복자의 모범이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좋은 권고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의 사명은 거룩한 것을 관리하거나 종교 규칙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백성들과 가까이 있는 목자, 그리스도의 연민의 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이콘이 되는 것입니다.”

교황은 또한 그리스 가톨릭 교회 순교자들로 시복을 위한 심사를 시작한 부드카 주교, 자리츠키 신부, 게르투루데 데첼 여성 평신도를 기억하며 참석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상속자입니다. 여러분이 성덕의 새로운 모범이 되길 바랍니다!”

성모님께 의탁

교황은 카자흐스탄 신자들이 평화의 모후로 공경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께 기도를 바치고 카자흐스탄 백성을 의탁했다. 이날 만남을 시작하며 교황 앞에서 아기 예수를 팔로 안고 있는 “대초원의 성모님” 그림이 공개됐다. 이 작품의 화가는 카자흐스탄 출신 무슬림으로, 이 또한 형제애의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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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월 2022,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