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스페인 카리타스에 “대규모 자선사업 단체가 되기보다 사람들을 돌보십시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5일 창립 75주년을 맞이한 스페인 카리타스 대표단을 만나 지난 세월 동안의 봉사에 감사를 표하는 한편, 본연의 사명과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힘을 길어낼 수 있는 자양분, 곧 ‘자선(carità)’을 강조했다. 교황은 연설에서 그것이 단순히 원조를 제공하고 재원을 질서 있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변화”를 촉진하고 그들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직업이 아닌 소명으로
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교황은 연설 원고를 내려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재원에 관심을 기울이되 한낱 대규모 자선사업 단체의 범주에 들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재원의 40, 50, 60퍼센트를 직원 급여로 사용하는 자선사업 단체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유럽에는 60퍼센트까지 쓰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저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40퍼센트 혹은 그 이상이 급여로 가야 합니다.’ 아닙니다. 자선을 실천하는 데 있어 중간 전달자는 가능한 한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직업이 아니라 소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로 오세요, 카리타스에 취직시켜 줄게요. (...)’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잃어버린 일치
교황은 스페인 카리타스 대표단에게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여러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선이 아니라 사업에 집중하는 다른 구호단체에서 목격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두 번이나 강조한 교황은 스페인 카리타스의 업적에 감사를 표하고 “신념과 이념을 넘어 스페인 사회의 존경을 받은 기관”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교황은 이러한 “하느님 사랑의 방식이 어떻게 카리타스 사업을 위한 모델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과 형제자매들과의 친교로 부르신다면, 여러분의 노력은 정확히 사람들과 공동체 안에서 때때로 잃어버린 일치를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회복의 여정
교황은 그런 의미에서 세 가지 도전 과제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잠재력과 역량, 그에 수반되는 과정을 바탕으로 일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마음이 부서진 사람,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 앞에 서서 그를 맞아들이고 그에게 회복의 여정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자신의 한계와 우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 자리를 찾고 다른 사람들과 하느님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교황은 연설 원고를 내려놓은 다음 몰타 사도 순방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귀국 기내 기자회견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곧, 아메츠 아르잘루스 안티아와 이브라히마 발데의 소설 『아우(Hermanito, Little Brother)』다. 교황은 이 책이 “약 2년 전 스페인에서 출간됐다”며 “두어 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읽기 쉽고 무엇보다도 영감을 줍니다.” “스페인에 도착한 중앙아프리카 출신 이주민 저자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생각에 저자가 스페인에 도착하기까지는 2년 반 혹은 3년이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겪었던 모든 일, 그가 그 지역에서 어떻게 사랑으로 환대를 받았는지, 어떻게 다시 일어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교황은 두 번째 도전 과제가 “의미 있는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그럭저럭 살아가려고 바둥거리면서 사람들의 진정한 변화를 촉진하지 않는 실천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교황은 스페인의 어떤 본당을 예로 들며, 그곳에선 사람들이 본당 신부에게 “무언가 줄 것이 없느냐”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들이 “복지” 상황의 이점을 취하며 지원금이나 장려금에 의존하게 되면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고 교황은 지적했다.
“항상 가난한 이들을 받아들이고, 동행하고, 통합해야 합니다. 막중한 일이죠.”
예수님의 메시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과 행적을 통해 “‘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교황은 요한 복음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먹을 빵이 생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찾고 칭송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가 왕이 된 것처럼 느낀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의 고통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분
따라서 교황은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위한 누룩이 되라”는 초대가 예수님 메시지의 핵심이라며, 바로 여기서 세 번째 도전 과제가 나온다고 말했다. 곧, “스스로 교회 공동체 자선활동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카리타스는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시듯 우리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뻗는 기회를 마련하며, 동시에 형제자매의 고통 속에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교황은 연설 원고를 내려놓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넘어진 형제자매를 바라봅시다. 단,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도와줄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를 제외하고 사람을 내려다보면 안 됩니다.”
“교회 자선활동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그저 재원을 질서 있게 관리한다거나 상처 입기 쉬운 이 교회 사명의 책임을 단순히 이행하는 단체가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교회 자선활동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초대하시는 유일무이하고 필수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 우리 모두가 붙잡아야 할 기회로 이해해야 합니다. ‘네 이웃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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