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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새 추기경들에게 “강력하고도 은은한 그리스도의 불을 세상에 전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신임 추기경 20명의 서임을 위한 정기 추기경회의가 2022년 8월 27일 오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됐다. 신임 추기경 가운데 16명은 교황 선거권이 있다. 이번에 몽골, 파라과이, 싱가포르, 동티모르에서 사상 처음으로 추기경이 나왔다. 교황은 추기경의 사명을 고취시키는 정신에 대해 설명하며 모든 사람과 세상의 지평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하느님 보시기에 큰”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라고 당부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창욱

강력한 불꽃과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은 한편으로는 사도적 용기, 구원과 넓은 마음을 위한 열정의 원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온화함, 충실함, 친밀함, 온유한 사랑의 원천이다. 겉보기에 상반되는 이 특징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의 됨됨이와 사명으로 삼은 명제다. 교황은 불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며 새 추기경들에게 “큰 문제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문제를 다룰 때”에도 용감한 돌봄을 실천하라고 권고하는 한편 “겸손한 넓은 마음, 온화한 힘, 섬세한 보편성”을 강조했다. 이날 서임식을 시작하며 교황청 경신성사부 장관 아서 로시(Arthur Roche) 추기경이 모든 신임 추기경을 대표해 교황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0명의 신임 추기경 가운데 가나의 와교구장 리차드 쿠이아 바우오브르(Richard Kuuia Baawobr) 신임 추기경은 건강상의 이유로 추기경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루카 12,49-50)”

강력한 불꽃과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

‘불’과 ‘세례’는 교황이 서두에 언급한 루카 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이미지다. 먼저 교황은 “하느님 영의 강력한 불꽃”, “모든 것을 정화하고 다시 태어나게 하며 변화시키는 열정적인 사랑”을 뜻하는 강력한 불의 이미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교황은 요한 복음이 강력한 불의 이미지와 달리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던 불을 묘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는 동안 숯불을 지피셨다. “숯불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은은하게 오래 지속되며” 친밀한 가족 분위기를 조성한다.

추기경들에게 건네진 횃불

교황은 새 추기경들의 삶을 언급하면서 루카 복음사가의 말이 ‘불의 사명’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교회 안에서 특별한 섬김의 직무를 위해 하느님 백성 중에서 선택을 받은 우리에게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건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불을 받아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아무도 예외 없이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사도적 용기와 열정을 우리에게 전해주려 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은 아버지의 자비로 타오르기에 그분은 당신의 관대함과 무한한 사랑을 우리와 나누려 하십니다.”

복음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봉사

교황은 이런 종류의 불이 사도 바오로의 마음속에서 “복음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봉사”로 타올랐다고 말했다.

“이 불은 많은 남녀 수도자들의 불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 수고로움과 감미로운 기쁨을 체험했으며, 무엇보다도 증거자였던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기쁜 소식이 됐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지르러’ 오신 불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이들의 마음과 손과 발에 그 불을 지피십니다.”

신임 추기경 중 최연소로 추기경으로 임명된 몽골 울란바토르지목구장 조르조 마렌고 신임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추기경을 상징하는 빨간색 비레타(사제 각모)를 수여받고 있다.
신임 추기경 중 최연소로 추기경으로 임명된 몽골 울란바토르지목구장 조르조 마렌고 신임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추기경을 상징하는 빨간색 비레타(사제 각모)를 수여받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 피어오르는 불

활활 타오르는 불 옆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은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많은 이에게 맛보게 해주는” 온화함, 충실함, 친밀함을 뜻한다. 교황은 은은하게 타오르는 이 불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특히 ‘성체조배’의 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주님의 현존을 인식할 때 이 선물은 매일의 삶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교황은 오랜 시간 비그리스도교 문화권과 광야의 고독 속에 머물며 말씀과 성체성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존과 “그분의 형제적 현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체험을 떠올렸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은 또한 일터, 대인 관계, 사소한 형제애의 실천 안에서 작지만 오래 지속되는 불꽃을 키워가며 재속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혹은 본당 신자들 속에서 잡음 없이 인내와 넓은 마음으로 맡은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 또한 매일 많은 그리스도인 부부의 삶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불도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이 아닐까요? 혼인을 통한 성화 말이죠. 그 불은 ‘집에서 바치는’ 소박한 기도, 부드러운 눈길과 몸짓, 자녀들의 성장 여정에 인내심을 갖고 동행하는 사랑으로 더욱 타오릅니다. 또한 노인들이 지켜주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꽃도 잊지 맙시다. 노인들은 보화, 교회의 보화입니다. 그들은 기억의 난로입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똑같은 사랑으로

교황은 다시 한번 추기경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상기하며 “예수님의 이 두 가지 불”이 신임 추기경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곧, 추기경은 큰 문제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사소한 문제를 다룰 때에도 항상 동일한 사랑의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세상의 눈에 높은 사람이든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 

“저는 예를 들어 카사롤리 추기경님을 떠올려 봅니다. 그분은 냉전 이후 유럽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도록 지혜롭고 끈기 있는 대화로 뒷받침해준 열린 시야로 유명합니다. 카사롤리 추기경님이 제안한 새로운 지평을 인간의 근시안적 조치가 가로막을 수 없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길 빕니다! 하지만 동시에 추기경님이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라고 불리며 정기적으로 로마의 소년원을 방문했던 일도 하느님께는 똑같이 귀중한 일이었습니다.”

교황은 20세기의 또 다른 잔혹한 역사 안에서 끝까지 하느님 백성을 돌본 목자 반 투안(Van Thuân) 추기경의 모범을 떠올렸다. 반 투안 추기경은 감옥에 갇혔을 때 자신의 간수인 한 사람의 영혼을 돌보기 위해 온 마음을 다했다. 

내가 너희를 신뢰해도 되겠느냐? 

교황은 추기경들이 보편적 시선뿐 아니라 각 개인에 대한 관심의 시선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추기경들은 작은 이들을 위해 부름받았고, 그 관심의 비결은 예수님의 시선에 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이 불을 세상에 지르려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매일 역사의 강가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을 지피길 원하십니다.” 교황은 주님께서 우리 이름을 제각각 부르신다며 다음과 같이 물으신다고 말했다. “내가 너희를 신뢰해도 되겠느냐?”

추기경 상징의 전달

추기경 서임식은 교황이 새로운 추기경을 서임한다고 선포하고 새 추기경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교황은 새 추기경들에게 차례로 빨간색 비레타(사제 각모), 주케토, 추기경 반지, 명의 본당 지정 칙서를 수여했다. 교황과 새 추기경들은 한 사람씩 포옹하며 감사의 말과 인사를 나눴고 종종 개인적으로 애정 어린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복자 2위 시성 승인 예식

이후 오는 2022년 10월 9일로 예정된 복자 2위의 시성 승인 예식이 이어졌다. 시성 대상 복자는 성 가롤로 선교 수도회와 성 가롤로 보로메오 선교 수녀회의 창립자 겸 피아첸차교구장 조반니 바티스타 스칼라브리니(Giovanni Battista Scalabrini) 주교다. 성인품에 오를 또 다른 복자는 돈 보스코 성인이 창설한 살레시오 수도회의 아르테미데 자티(Artemide Zatti) 수사다.

추기경회의를 마친 뒤 프란치스코 교황과 새 추기경 전원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예방한다. 저녁에는 가족, 친지,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축하행사가 바티칸의 여러 장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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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8월 2022,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