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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문은 좁지만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21일 연중 제21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구원에 대해 설명했다. 구원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매일 형제애를 실천하며 자신의 실존을 내어주기로 택한 이들을 위한 것이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전례의 루카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좁은 문’은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구원이 마치 소수의 선민이나 완벽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른 많은 기회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과 모순됩니다. 하지만 사실 주님께서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참조). 그러므로 이 문은 ‘좁지만’, ‘모두’에게 ‘열린’ 문입니다! ‘모두’라는 말을 잊지 마십시오. 그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 ‘좁은 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생활상을 언급하십니다. 저녁이 되면 도시의 성문이 굳게 닫히고 사람들이 귀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좁은 문만 열어 둔다는 점을 언급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를 생각해봅시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요한 10,9 참조). 하느님의 생명, 구원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 오직 그분을 거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곧,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도시로 들어가려면 유일하게 열려 있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자신을 맞추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리스도께 맞추는” 삶입니다. 곧, 그분을 토대로 삼고 그분을 본받는 삶입니다. 그 척도, 그 기준은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만 통과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의 좁은 문을 통과하신 그분을 따르고, 주님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며, 섬김과 사랑에 전념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인생 프로젝트에 들어가려면 이기심을 없애고,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줄이며, 자만과 오만이라는 높은 벽을 낮추고, 사랑의 위험을 건너기 위해 게으름을 이겨내야 합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져야 할 때도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상적인 사랑의 행위를 생각해 봅시다. 자기 시간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자녀들에게 전념하는 부모를 생각해 봅시다.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지 않고 다른 이들을 걱정하는 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행동합니다. 좋은 분들입니다. 노인들,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끊임없이 헌신적으로 일하고, 불편함을 참으며, 심지어 오해를 감내하는 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신앙 때문에 고통을 겪지만 계속 기도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자신의 본능을 따르기보다 선으로 악에 대응하고, 용서할 힘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찾는 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이들은 자신의 편의라는 넓은 문을 택하지 않고 예수님이라는 좁은 문, 사랑에 전념하는 삶을 택한 이들의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미 구원받았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삶에서 “불의를 일삼는 자들”(루카 13,27)보다 그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훨씬 더 많이 인정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어떤 편에 서기를 원하나요?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는 쉬운 길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우리의 이기심을 문제 삼고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삶을 받아들일 역량을 갖추게 하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복음의 좁은 문을 택하나요? 우리는 어느 쪽에 있나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르셨던 성모님께서 우리가 주님의 좁은 문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영원한 생명의 충만함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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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8월 2022, 09:25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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