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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지금도 이념적 식민화가 있습니다. 원주민의 가치에서 배웁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27일 캐나다 총독의 공식 관저인 퀘벡시 시타델에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과거 동화정책과 반대되는 원주민의 지혜와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고통스러운 과오가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 가정의 보호와 권리가 생산성과 사익이라는 이름으로 침해되지 않길 바랍니다.”

Tiziana Campisi / 번역 이정숙

원주민은 피조물 보호, 가정 보호와 옹호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줄 것이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27일 캐나다 퀘벡시 시타델에서 메리 사이먼 총독과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의 비공개 만남 후 정부 관계자, 원주민 대표단, 외교사절단에게 한 연설에서 피조물과 건강한 사회관계에 대한 조화로운 전망을 회복하기 위해선 원주민의 지혜, 문화, 근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알차고 풍요로운 이날 교황의 연설은 오늘날의 식민화라는 주제도 다뤘다. 

“과거에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 민중의 구체적인 삶을 소홀히 하고 미리 정해진 문화적 모델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실존의 현실과 충돌하고, 민중의 가치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착을 억압하고, 그들의 전통, 역사 그리고 종교적 유대를 뿌리뽑으려는 많은 형태의 이념적 식민화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취소 문화”의 등장

교황은 역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넘겼다고 주제넘게 생각하는 그러한 사고방식이 “당대의 특정 범주를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취소 문화(cancel culture)”로 이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평준화하고,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어 획일화하고,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적 유행이 등장한다. 그것은 “개인의 필요와 권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가장 취약한 이들에 대한 의무를 자주 소홀히 하는” 현재에만 집착한다. 따라서 가난한 이, 이주민, 노인, 병자, 태아 등은 “부유한 사회에서 잊혀지고”, “세상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다.  

교황, 퀘벡 시타델에서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
교황, 퀘벡 시타델에서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

인류 공동체는 열려 있고 포용해야 합니다

캐나다의 자연이 주는 요소에서 영감을 얻은 교황은 동시대인에게 효과적인 이미지를 제안했다. 캐나다의 상징이 된 단풍나무는 “풍성한 다색 단풍잎”으로 “무미건조하게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열려 있고 포용하는 인류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풍성한 나무의 기본인 것처럼, 사회의 기본세포인 가정도 모두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가정폭력, 일 중독, 개인주의적 사고방식, 치열한 경력주의, 실업,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고립”, 가장 취약한 이들의 방치 등이 가정을 위협한다. 교황은 원주민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인식하는 것을 배운다”며 “진실을 말하고, 나눔을 실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다시 시작하고, 용기를 내고, 화해하는 법을 배운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심히 부끄럽게 여기는,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고통스러운 과오가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 가정의 보호와 권리가 생산성과 사익이라는 이름으로 침해되지 않길 바랍니다.”

교황에게 인사하는 원주민 대표
교황에게 인사하는 원주민 대표

하느님, 인간, 자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황은 지구 보호와 관련해 원주민들로부터 피조물에 대한 조화로운 전망인 “하느님, 인간, 자연에 귀 기울이는 역량”을 배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경청은 “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진정한 인간 발전”을 어렵게 만들고 “관상의 맛, 진정한 관계의 맛, 함께하는 신비로움을 되찾기 힘들게 하며” “지치고 환멸을 느끼는 사회”로 이끄는 “어지럽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오늘날의 세상에” 특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만연한 개인주의, 성급한 판단, 널리 퍼진 공격성,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려는 유혹으로부터 한발 물러서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고 서로 대화해야 하는지요!”

동화정책과 해방정책은 개탄스러운 시스템

교황은 “토착 문화에 존재하는 건강한 가치”가 누구에게나 영감이 될 수 있다며 “피조물, 관계, 시간, 인간 활동을 유용성과 수익성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해로운 관습을 치유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가르침은 특히 “기숙학교 시스템을 포함해 원주민의 언어, 문화, 세계관을 훼손함으로써 많은 원주민 공동체에게 피해를 입힌 동화정책과 해방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정부 당국이 추진했던 그 개탄스러운 시스템은 많은 아이들을 부모와 떨어뜨려 놓았으며, 이에 다양한 지역 가톨릭 기관들이 한 몫을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깊은 부끄러움과 슬픔을 표명하며, 캐나다의 주교단과 함께 다시 한번 많은 그리스도인이 원주민에게 저지른 잘못에 용서를 구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 시대에 일어났던 것처럼 믿는 이들이 복음보다 세상의 편의에 순응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교황은 지금이 “원주민의 정당한 권리를 증진하고, 원주민과 원주민이 아닌 이들 사이의 치유와 화해의 여정을 촉진하기” 위해 “협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 관계자들에게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호소에 적절한 방식으로 응답할 것”을 권고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연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연설

토착 문화 진흥에 대한 교황청의 기여

교황은 교황청과 지역 가톨릭 공동체가 원주민의 문화적 전통, 관습, 언어, 고유한 교육 과정에 대한 존중을 비롯해 “원주민 권리에 관한 유엔 선언의 정신”으로 “적절한 형태의 영적 여정을 통해 토착 문화를 증진하려는 구체적 열망”이 있다고 말했다. 

“교회와 캐나다 원주민 간의 관계, 곧 뛰어난 결실을 맺은 사랑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가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깊은 상처로 특징지어진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교황은 최근 몇 달 동안 다양한 원주민 대표단을 만나고 대화를 시작한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그 순간들이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며, 치유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진리와 정의에 따라 모든 캐나다인과 함께 착수하는 형제애적 여정과 인내의 여정”에 나서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선견지명 있는 정책

교황은 원주민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성찰하면서 “반대 세력의 극단주의를 진정시키고, 증오의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는 현실과 “전쟁의 무의미한 광기”에 초점을 맞췄다. 교황은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에디트 브루츠크(Edith Bruck) 여사의 증언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화에는 비결이 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마십시오. 생존하려면 절대 미워하면 안 됩니다.” 아울러 교황은 군비 경쟁과 억지 전략으로는 평화와 안보에 이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을 어떻게 계속 이어갈 것인가가 아니라 전쟁을 어떻게 종식할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고조되고 있는 끔찍한 냉전의 손아귀에 사람들이 인질로 붙잡히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당파적 틀을 넘어설 수 있는 창의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퀘벡 시타델의 프란치스코 교황
퀘벡 시타델의 프란치스코 교황

동시대 세계의 문제들

교황은 평화, 기후변화,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 국제 이주 흐름 등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도전”을 언급했다. 이 같은 과제들은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정치는 당파적 이해관계의 포로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가 “당장의 편리함, 다음 선거나 이런저런 로비를 지지하는 모습”에 주목하기보다는 미래 세대로 눈을 돌려 “형제애, 정의, 평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자격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오늘과 내일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 특히 공동의 집 보호에 관한 결정에 참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원주민의 가치와 가르침은 소중합니다.”

다문화주의

끝으로 교황은 오늘날 사회의 영구적 도전이 다문화주의라며 “단번에 모든 과정이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전통과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을 환대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황은 캐나다인들이 많은 우크라이나·아프가니스탄 이주민들에게 보여준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이어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의 수사에서 벗어나” 국가의 가능성에 따라 이주민들에게 “책임 있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도록 격려했다. 

“바다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땅인 캐나다의 순례자인 저는 이 위대한 나라가 특히 원주민의 뿌리를 보존하고 가치를 존중함으로써 미래를 건설하고 모든 이를 환대하는 집이 되는 데 항상 모범이 되길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돌보십시오

교황은 연설 말미에 캐나다만큼 번영한 나라에서도 “교회와 푸드뱅크에 의존해 도움과 필요를 충족하는 노숙자들”이 많다며, 가장 약한 이들을 잊지 말자고 초대했다. “이 형제자매들은 우리 세상을 더럽히는 근본적인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을 반성하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교황은 캐나다에서 원주민들의 “빈곤율이 높게 나타나고” “낮은 비율의 학교 교육” 등 부정적인 지표가 관찰된다면서 “주택 마련과 의료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궁핍한 이들을 위한 참여와 돌봄을 증진하는 경제적, 사회적 결정”을 내리라고 권고하며 연설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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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7월 2022,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