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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교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상처 치유를 돕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26일 ‘락 세인트 앤’ 호숫가 순례행사에 참여해 원주민들이 함께한 가운데 말씀 전례를 거행했다. 거룩한 곳으로 여겨지는 이 호수 앞에서 교황은 “식민화의 끔찍한 결과”와 “많은 가족의 아픔”으로 얼룩진 과거에 대한 치유, 버려진 노인과 오락이나 휴대전화에 “마비된” 젊은이를 돌보는 현재에 대한 치유를 간구했다. 아울러 노년 여성을 기억하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유산의 몫은 “원주민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안에서 신앙을 물려주는 일을 가로막은 데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를 락 세인트 앤(Lac Ste. Anne) 호숫가의 “순례자”로 소개했다. 나코타 수(Nakota Sioux) 부족은 이 호수를 와캄네, 곧 “신의 호수”라고 불렀고, 크리(Cree) 부족은 “정령의 호수”라고 불렀다. 수백년 동안 캐나다 원주민들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에게서 치유를 받기 위해 몸을 담근 이 짙은 색깔의 성스러운 호수에서 말씀 전례를 주례하는 교황도 치유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곧, “식민화의 끔찍한 결과”와 “수많은 가정과 조부모와 아이들의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점철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치유, 고독과 버림받음의 위험에 처한 노인을 바라볼 수 있는 치유, 애정을 받기보다는 “죽음”에 내몰리는 “귀찮은 환자들”과 오락과 휴대전화에 마비된 젊은이를 위한 치유다.

하느님께 간구

“주님,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교황은 원주민들에게 그들이 교회 전체에 얼마나 “귀중한지” 거듭 강조한 후 차분한 목소리의 스페인어로 기도했다. 교황의 캐나다 “참회 순례”의 둘째 날은 에드먼턴에서 서쪽으로 약 72킬로미터 떨어진 앨버타 중북부에서 마무리됐다. 지난 2004년 캐나다 정부에 의해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천혜의 보화인 락 세인트 앤 호수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예수님의 할머니인 성녀 안나의 은총을 구하는 원주민들에게 치유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락 세인트 앤’ 호숫가를 순례하는 교황과 함께한 원주민 지도자들
‘락 세인트 앤’ 호숫가를 순례하는 교황과 함께한 원주민 지도자들

오래된 순례

성녀 안나 호숫가를 처음으로 순례한 역사는 188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 오블라띠 수도회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된 후, 매년 많은 원주민 공동체가 공경하는 성녀 안나 축일인 7월 26일이 속한 주간에 순례가 이어진다. 시간이 흘러 이 행사는 북미 순례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영적 만남의 장소 중 하나가 됐으며, 특히 퍼스트 네이션 원주민들에게 귀중한 장소가 됐다. 교황은 지난 4월 1일 바티칸에서 메티스·이누이트·퍼스트 네이션 등 원주민 대표단과의 만남에서 이 심오한 영성의 순간에 함께 참여할 수 있길 바랐다고 떠올렸다.

교황과 원주민의 열망은 7월 26일 오후(현지시각) 약 5만 명의 신자들이 참례한 에드먼턴 커먼웰스 스타디움에서의 미사를 마친 후 거행되는 말씀 전례로 실현됐다. 많은 사람들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녹지에 자리 잡고 우산으로 햇빛을 가리거나 많은 묵주를 손에 들고 난간에 기대어 있거나 호수 한가운데 있는 배에 타고 있었다. 호숫가 인근에는 지난 2009년 화재 이후 재건된 오래된 본당이 있다. 휠체어를 탄 교황은 사제들과 신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곳에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음에도 교황은 이동하는 도중에 갓 태어난 두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선착장에 이르러 잠시 침묵 중에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성수로 쓸 물을 축복하고, 원주민 지도자들과 함께 폴리스 라인을 따라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렸다.

‘락 세인트 앤’ 호숫가에 있는 성녀 안나 성지
‘락 세인트 앤’ 호숫가에 있는 성녀 안나 성지

북소리와 심장소리

캐나다에 도착한 첫 순간부터 교황의 사도 순방 여정에 항상 동행한 것은 원주민 전통 북소리였다. 이날도 교황은 성지에서 이동하는 동안 따라오는 북소리에 감명을 받았다. 교황은 긴 강론을 시작하며 ‘안녕하세요’를 뜻하는 현지 크리어 “아바-워시-디드! 탄시! 오키!”라고 발음하며 인사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북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의 고동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지난 수백년 동안 “삶의 짐에 짓눌리고, 허덕이며 열망하는 수많은 마음들”이 이 호수를 찾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위안과 힘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피조물 안으로 잠긴 “또 다른 박동”도 느낄 수 있다며 “어머니 대지(지구)의 모성적 박동”이라고 말했다. “태중의 아기의 심장이 어머니의 심장과 조화를 이루며 뛰듯 (...) 우리 삶의 리듬이 창조의 리듬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어머니와 할머니

교황은 과거로 눈을 돌려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비극을 돌아보며 수많은 아이들이 언어·전통·문화·애정을 박탈당한 학대에 대한 아픔을 떠올렸다. 그 비극은 당사자에게 상처이지만 가족에게도 상처가 된다. 교황은 정확히 어머니와 여성, 특히 원주민들이 코쿰(Kokum)이라고 부르는 할머니들의 존재에 대해 묵상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유산의 몫은 원주민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안에서 신앙을 물려주는 일을 가로막은 데서 비롯합니다.”

“교회는 여성이자 어머니입니다”

캐나다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모성 토착화(inculturazione materna)”의 움직임과 반대된다. 교황은 “모성 토착화”가 “토착 전통과 신앙의 아름다움을 결합”하고 “두 번의 어머니 경험을 한 할머니의 지혜”로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회는 여성이자 어머니”라며 “실제로 교회 역사에서 어머니와 할머니에 의해 모국어로 신앙이 전해지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세계의 많은 지역의 토착 언어와 문화를 보존한 선교사들이 진정한 복음 선포자로서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요!”

“어머니와 할머니는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정복의 비극이 이뤄지는 시기에 과달루페의 성모님은 폭력이나 강요 없이 원주민의 언어로 말하고 그들의 옷차림으로 원주민들에게 진정한 믿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캐나다 원주민과 함께 ‘락 세인트 앤’ 호숫가를 순례하는 교황
캐나다 원주민과 함께 ‘락 세인트 앤’ 호숫가를 순례하는 교황

회복탄력성과 새로운 출발의 증거

기숙학교에서 많은 세대의 아이들이 그러한 유산을 받지 못하게 된 사실과 관련해 교황은 “손실”이자 “비극”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여기 계신 여러분의 존재는 회복탄력성과 새로운 출발의 증거, 치유를 향한 순례이자 우리 공동체의 삶을 치유하시는 하느님께 열린 마음의 증거입니다.” 

“교회인 우리 모두는 이제 치유가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닫으려는 유혹, 진리를 찾는 대신 제도를 옹호하며 복음에 봉사하기보다 세속적인 권력을 선호하는 유혹으로부터 치유돼야 합니다.”

교황은 어머니 교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서로 돕자고 초대했다. “아들과 딸을 하나하나 품을 수 있는 교회,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모든 이에게 말을 거는 교회, 그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고 모든 이와 만나는 교회입니다.” 

원주민 노인들, 살아있는 물이 흘러나오는 샘

교황은 호숫가에 있는 많은 노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의 마음은 신앙의 살아있는 물이 흘러나오는 샘이며, 그것으로 여러분의 자녀와 손주들의 갈증을 풀어주셨습니다.” 교황은 자신의 조모 로사와 함께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렸다. “할머니에게서 저는 처음으로 신앙을 배웠고, 사랑의 보살핌과 삶의 지혜를 통해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신앙은 거실에서 혼자 책을 읽으면서 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신앙은 어머니의 언어와 할머니의 감미로운 사투리 억양으로 집안에 스며듭니다.”

가장 작은 이들에게 귀 기울이십시오

“여기서 이렇게 많은 조부모님과 증조부모님을 뵙게 되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교황은 이 같이 감사를 표하며 집에서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정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여러분은 보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있는 생명의 근원을 잘 지키십시오. 이들을 사랑하고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보살펴 주십시오.” 아울러 교황은 우리가 사실 너무 자주 “그다지 인생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소수의 관심사에 따라 행동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주변을 좀 더 살피고 가장 작은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혼잡하고 획일적인 도시에서 종종 이렇게 소리 없이 부르짖는 이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

노인, 젊은이, 병자들의 부르짖음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는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시설에 버려져 죽을 위기에 처한 노인들, 애정을 받기보다는 죽음에 내몰리는 귀찮은 환자들”의 부르짖음이다. 그것은 또한 “경청 대신 추궁을 듣는 아이들의 숨막히는 부르짖음”이기도 하다. “휴대전화에 자유를 맡기고, 같은 거리에서도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길을 잃고, 어떤 오락에 마비되고, 우울하고 조급하게 만드는 중독의 먹잇감이 되어 방황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거나 삶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없는 아이들의 부르짖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 이는 더 나은 세상을 원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의 부르짖음입니다.”

원주민과 ‘얽혀 있는 교회’

교황은 이 부르짖음을 “영육의 의사”이신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두고 이 자리의 원주민들이 입을 모아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치도록 초대했다.

“주님, 갈릴래아 호숫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를 부르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 저희도 오늘 저녁 우리 내면의 고통을 안고 당신께 나아갑니다. 저희는 저희의 무미건조함과 수고로움, 원주민 형제자매들이 겪은 폭력의 트라우마를 당신께 드립니다. 화합과 평화가 다스리는 이 축복받은 장소에서 저희는 역사의 불화, 식민화의 끔찍한 결과, 수많은 가정과 조부모와 아이들의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당신께 드립니다.”

교황은 끝으로 모든 원주민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색색의 허리띠의 실이 촘촘하게 하나로 엮여 있는 것처럼 교회도 여러분과 조화롭게 얽혀 있기를 바랍니다. 치유의 과정에서 더욱 건강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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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7월 2022, 2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