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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이면에는 재물 욕심, 무기거래 스캔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31일 연중 제18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탐욕은 사회에도 위험한 질병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날 다른 역설, 역사상 유례없는 불의에 이르렀습니다. 곧, 소수가 많은 것을 갖고 다수가 작은 것을 갖거나 아무것도 갖지 못합니다.” 교황은 캐나다의 환대에 감사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멈추고 협상하라”고 호소했다. 또한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축일을 맞아 ‘이냐시오의 해’를 폐막한 예수회 회원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전례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이런 요청을 드립니다.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12,13). 이는 매우 흔한 상황입니다. 지금도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입니다. 얼마나 많은 형제와 자매가, 얼마나 많은 한 가족의 형제와 자매들이 불행히도 유산을 두고 서로 다투는지요! 유산 때문에 더 이상 서로에게 말을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세부지침을 일러주지 않으시는 대신 무엇을 소유하는 데서 나오는 분열의 근원으로 나아가시며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15절). ‘탐욕’이란 무엇인가요? 소유에 대한 무절제한 욕심, 항상 부자가 되려는 욕심입니다. 이는 사람을 파멸시키는 질병입니다. 소유욕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갈수록 더 많이 갖기를 원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유롭고 평온하게 살기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에 집착하며 역설적으로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돈을 ‘사용하는(servirsi)’ 대신, 돈의 ‘종(servo)’이 됩니다. 탐욕은 사회에도 위험한 질병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날 다른 역설, 역사상 유례없는 불의에 이르렀습니다. 곧, 소수가 많은 것을 갖고 다수가 작은 것을 갖거나 아무것도 갖지 못합니다. 전쟁과 분쟁도 생각해봅시다. 자원과 재물에 대한 욕심이 항상 뒤에 감춰져 있습니다. 전쟁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있는지요! 그중 하나는 분명 무기거래입니다. 이런 거래는 우리가 해서도 안 되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스캔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단순히 일부 권력자나 특정 경제 시스템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봅시다. 나는 재산이나 재물에 얼마나 초연한가? 나에게 부족한 것에 대해 불평하는가,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가? 나는 돈이나 기회를 명목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간을 희생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는가? 더 나아가, 합법성과 정직을 탐욕의 제단에 바치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가? 저는 탐욕의 제단, 곧 “제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제단이라고 말했는지 아시나요? 왜냐하면 물질적인 재화, 돈, 재물은 하나의 숭배, 곧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강력한 말씀으로 경고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 주인을 하느님과 악마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하느님과 악마가 아닙니다. 선과 악이라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과 재물’(루카 16,13 참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두 주인, 곧 하느님과 악마를 함께 섬길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길 기대하겠지만, ‘하느님과 재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재물을 섬기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우상숭배이고,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도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말아야 하는가? 물론 부자가 되고 싶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소망은 타당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좋지만, ‘하느님에 의한 부자’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보다도 가장 부자이십니다. 그분은 연민과 자비가 넘치십니다. 하느님의 부유함은 그 누구도 가난하게 하지 않으며,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주고, 나누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유함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물질적 재화를 축적하는 것만으로는 잘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인생은 가진 것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루카 12,15 참조). 반면에 인생은 좋은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곧, 하느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심지어 덜 가진 이들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문해봅시다. 나는 어떻게 부자가 되고 싶은가? 하느님에 의한 부자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나의 탐욕에 의한 부자가 되고 싶은가? 상속과 유산이라는 주제로 돌아가서, 내가 남기고 싶은 유산은 무엇인가? 은행에 예치된 돈, 물질적인 것들을 남기고 싶은가, 아니면 내 주변의 행복한 사람들, 잊히지 않는 선행들, 자라고 성숙하도록 내가 도와준 사람들을 남기고 싶은가?

인생의 진정한 재화가 무엇인지, 영원히 남는 재화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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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7월 2022, 19:59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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