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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페두사의 이주민 젊은이들과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람페두사의 이주민 젊은이들과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람페두사의 예언

9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중해를 건너는 이주민들의 비극을 상징하는 람페두사 섬을 방문했다. 재임 기간 중 기념비적인 첫 해외 사도 순방에서 교황은 형제애를 지극히 중대한 사안으로 강조했다. 형제애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오늘날, 그리고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더욱 시급한 경고로 다가온다.

Alessandro Gisotti / 번역 이재협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위 기간 중 직접 선택하고 수행한 일들이 있다. 그가 선택하고 수행한 일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며, 어떤 경우에는 ‘예언적’이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차원이기도 하다. 9년 전인 7월 8일,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직무를 시작하고 몇 달 되지 않아 교황은 첫 해외 사도 순방지로 람페두사를 찾았다. 교황의 방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였다. 지중해를 건너는 이주민의 비극을 상징하는 섬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교황이 행동과 표징으로 “밖으로 나가는 교회”가 의미하는 바를 증언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또한 우리가 “실존적 변방”에서, 은유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출발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줬다. 우리가 여전히 보다 정의롭고 연대하는 세상을 건설하고 화해하는 인류를 바란다면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첫 해외 사도 순방의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장면을 기억한다. 이주민들이 타는 배의 형상으로 만든 제대에서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 희생자를 추모하며 교황이 바다에 화환을 던지는 장면, 사고에서 살아남은 젊은이들을 껴안는 교황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교황과 포옹한 젊은이들은 희망을 찾아 여정을 떠난 이들이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그들의 여정은 절망의 여정으로 변한다. 따라서 당시 교황 방문의 핵심은 분명 이주민들의 곤경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그 자리에서 미사 강론을 통해 람페두사라는 하나의 섬을 넘어서고, 그 순간이 주는 의미를 넘어서도록 이날 방문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을 넓혀줬다. 당시 교황의 강론은 오늘날 다시 읽어도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세상은 몇 달간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마치 “평화의 영이 아니라 형제를 살해하는 카인의 영”이 사슬에서 풀려나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의 강론은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직후 하느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묵상한 내용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그리고 언제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경고로 울려 퍼져야 할 질문을 던지신다. “카인아,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교황은 강론에서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라는 따끔한 질문을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 ‘너의 이주민 형제, 가난에 찌든 네 형제, 전쟁으로 무너진 네 형제는 어디 있느냐?’ 람페두사 사도 순방을 마친 뒤에도 교황은 ‘형제애’와 ‘형제살해’라는 결정적인 이율배반적 주제를 수차례 언급했다. 교황은 지난 2017년 2월 13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봉헌한 미사에서도 카인과 아벨의 일화를 주제로 강론하며 “형제애의 유대보다 한 평의 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강하게 단죄했다. 교황은 감히 다음과 같이 말하는 땅의 소유자들에게 경고했다. “나는 이 한 평의 땅이 더 중요해요. 만약 폭탄이 떨어져 200명의 아이들을 죽인다고 해도 저는 관심 없어요. 그건 제 탓이 아니라 폭탄의 탓이니까요.”

회칙 「Fratelli tutti」를 반포한 교황, 아부다비에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 공동 선언문에 서명한 교황,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택한 로마의 주교는 바로 이 ‘형제애’와 ‘형제살해’의 싸움이 우리 시대의 “이슈(issue) 중의 이슈”라고 경고한다. 해가 지날수록 교황은 훗날 “지역적으로 치르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를 암울한 윤곽이 비극적이게도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음을 바라본다. 이것이 “지역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세계적 형제살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왜냐하면 모든 전쟁은 악한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아우는 어디 있느냐’고 하느님께서 물으시자 시치미를 떼며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대답하도록 카인을 지배한 그 악한 뿌리로부터 말이다. 

2020년 3월 27일 전 세계를 위한 특별 기도의 날, 교황은 텅 빈 베드로 광장에서 홀로 기도하며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풍랑이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소위 ‘형제자매들 간의 유대’라고 하는 ‘복된’ 공동의 소속감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2022년 부활절 ‘우르비 엣 오르비’ 메시지를 2년 전 교황의 기도와 나란히 놓고 읽어보면 씁쓸하고 괴로운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교황은 지난 2년 간의 코로나19 대유행을 언급하며 “터널에서 빠져나와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힘과 자원을 모아야 할 때”였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영이 없습니다. 아벨을 형제가 아닌 경쟁자로 보고 제거할 방법만 궁리하는 카인의 영이 여전히 깃들어 있습니다.”

교황은 어떤 위기를 벗어날 때 상황이 이전보다 더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지만, 결코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오늘날 인류는 인류가 마주해야 할 가장 깊고 가장 다층적인 위기의 순간 중 하나를 겪고 있다. 교황은 이 위기를 잘 빠져나오기 위해 삶의 궤도를 바꿔야 한다고 당부한다. 카인이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에서 벗어나 우리 삶의 나침반을 형제애의 북극성으로 과감하게 설정해야 할 때라고 교황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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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7월 2022, 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