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정의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때 신뢰할 수 있습니다”
Tiziana Campisi / 번역 안주영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8일 이탈리아 최고사법위원회(Consiglio superiore della magistratura, 이하 CSM)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고귀하고 섬세한 사명”을 요구했다. 교황은 이날 연설을 통해 CSM 위원들의 사명이 정의를 요구하는 국민에게 응답하는 것이라며 “정의는 진리, 신의, 성실, 의도의 순수함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불의에 시달리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귀담아듣는 일은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권력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서로 동맹을 맺을 때 의로운 이가 모든 이를 위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군중이 의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수를 풀어 달라고 요구한” 빌라도의 예수님 재판 장면이 이에 대한 상징적인 일화라고 설명했다. 빌라도는 나자렛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이상히 여기다가 “손을 씻었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증언에 대한 신뢰, 정의를 위한 사랑, 권위, 다른 기득권 세력으로부터의 독립, 공정한 다원주의는 정치적 영향력, 비효율성, 부정행위가 만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해독제입니다. 덕망 있는 사법부를 다스린다는 것은 여러분이 부름받은 역할과 고위직을 종합한다는 걸 뜻합니다.”
복자 로사리오 리바티노의 모범
교황은 “교회 역사상 최초로 복자품에 오른 판사” 로사리오 리바티노의 구체적인 모범을 상기했다. 교황은 복자 리바티노가 “한편으로는 엄격함과 일관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애 사이의 변증법적 관점을 통해” “역사와 사회를 함께 걸을 수 있는 남녀를 생각하며 사법부에 봉사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갔다”고 말했다. 아울러 복자 리바티노가 판사들뿐 아니라 사회계약을 표방하는 모든 이를 위해 “신뢰할 만한 증거”를 남겼을 뿐 아니라 “사법부가 추구해야 할 분명한 생각”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정의는 항상 진리와 자유를 전제로 한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불의로 희생된 이들과의 연대로 함양된 정의감, 정의와 평화가 구현된 통치를 바라는 열망으로 길러진 정의감이 여러분 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가르침
교황은 “개혁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아울러 “‘누구를 위해’, ‘어떻게’ 그리고 ‘왜’ 정의를 이루려는가를 자신의 양심에 따라 먼저 선택하지 않으면, 정의를 위한 그 어떠한 정치적 개혁도 이를 집행하는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를 위해”의 ‘누구’란 “갱생해야 할 가해자, 동행이 필요한 고통받는 피해자, 권리와 의무를 두고 서로 다투는 이들, 정의에 대한 책임을 지닌 법조인, 그리고 일반적으로 교육을 받고 민감한 인식을 지녀야 하는 모든 시민”을 일컫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까닭에 회복된 정의의 문화는 복수의 악순환이나 망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유일하고 참된 해독제입니다. 왜냐하면 끊어진 유대를 회복하고 형제의 피로 더럽혀진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조건으로 회칙 「Fratelli tutti」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교회의 사회 교리를 따르는 길입니다.”
타인을 형제자매로 삼는 인류 가족
교황은 “세계화가 만연한 역사적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인류는 점점 더 서로 연결되면서도 무수히 많은 실존적 외로움 속에서 점점 더 파편화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를 바라보라고 초대하면서 “서로를 형제자매로 삼는” “인류 가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형제로 인정하는 가족, 이는 함께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평화의 토대가 정의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긴장과 견해 차이가 커질 때, 정의의 영적·인간학적 뿌리에서 양분을 받으려면 한 걸음 물러서야 합니다. 그런 다음 다른 이들과 함께 이 두 개의 뿌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패와 과실을 척결하기 위한 사법개혁
교황은 정의를 “어떻게” 집행하는지와 관련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요한복음의 포도나무의 비유가 “권력 투쟁, 후원 관계, 다양한 형태의 부패, 과실, 부당이득 등에 대항하기 위해 정의의 나무를 베지 않은 채 마른 가지를 가지치기하라고 일러준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그러한 “추악한 문제”를 잘 알고 있다며 “그러한 문제가 더 이상 자라나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왜”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해 정의의 미덕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내면의 법관복”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정의의 미덕이라는 법관복은 “갈아입을 옷이라거나 상대방을 정복하는 역할이 아니라” 인격적이며 사회적인 정체성 자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교황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와 다음과 같이 연설을 마무리했다. “‘법을 집행한다,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지혜롭게 다스리고자 하는 이들의 목표이며, 식별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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