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반 헝가리 총리 예방 받은 교황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 강조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보호하고 환대하는 헝가리의 총리 빅토르 오르반과 40분 동안 만났다. 오르반 총리는 4월 21일 오전 11시경 바티칸에 도착해 영부인 아니코 레발 여사를 비롯한 3명의 수행원과 함께 교황을 예방했다. 오르반 총리는 교황 예방 후 통상적인 만남인 교황청 국무원총리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 외무장관 대주교와의 만남은 갖지 않았다. 현재 국무원총리 추기경은 멕시코를 방문 중이다.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은 지난 4월 3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하며 네 번 연속으로 의회의 3분의 2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여당이 됐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 4월 21일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총선 이후 공식 해외 순방 첫 목적지는 바티칸”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교황 예방 후 4월 22일 오르반 총리는 같은 페이지에 교황과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4년 전인 2018년 총선에서 승리했을 당시 오르반 총리의 첫 해외 순방지는 폴란드 바르샤바였다.
40분간 이어진 환담
오전 11시5분 교황청 사도궁 서재에서 만남이 시작됐다. 교황은 “총리의 방문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오르반 총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통역을 동반한 만남은 11시45분까지 이어졌다. 교황은 영어로 “하느님께서 총리와 총리의 가정, 그리고 헝가리를 축복하시길 빈다”고 인사하자 오르반 총리도 영어로 화답하며 교황을 헝가리에 초대하는 뜻을 내비쳤다. “저희는 교황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졸탄 코바치 대변인은 오르반 총리가 환담을 마치며 교황에게 “평화를 위한 헝가리의 노력을 지지해 주길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선물 교환
오르반 총리는 교황에게 헝가리 출신 작곡가 겸 음악학자 버르토크 벨러의 책 두 권을 선물했다. “교황님이 그의 음악을 들으시면 헝가리의 정서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오르반 총리는 이 같이 설명하며 오페라 음악 레코드 모음집을 전달하고, 영어와 라틴어로 된 1750년판 성무일도를 함께 선물했다.
교황은 총리의 선물에 대한 화답으로 판노니아(오늘날 헝가리 지역) 출신 투르의 성 마르티노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진 청동 판화를 총리에게 전달했다. 마르티노 성인은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망토를 벗어준 애덕 실천으로 유명하다. 교황은 이 선물을 전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총리님을 위해 제가 직접 이 선물을 골랐습니다. 마르티노 성인은 헝가리 출신입니다. 그리고 저는 헝가리가 성인의 모범을 닮아 참혹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피란민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은 마르티노 성인의 부조와 함께 ▲2022년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2019년 아부다비에서 공동으로 선언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문서 ▲2020년 3월 27일 교황의 역사적인 성 베드로 광장 기도를 엮은 바티칸 출판사(LEV)의 책을 선물했다.
2021년 9월 부다페스트에서의 만남
프란치스코 교황과 오르반 총리의 개인적인 첫 만남은 2016년 8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 근교 프라스카티에서 열린 국제 가톨릭 국회의원 네트워크(ICLN) 연례회의에 참석한 그리스도인 지도자 및 국회의원들이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을 예방했다. 교황과 오르반 총리의 두 번째이자 가장 최근의 만남은 2021년 9월 12일 세계성체대회 폐막 미사를 위해 교황이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다. 교황은 당시 폐막미사에 앞서 교황청 국무원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 외무장관 폴 리차드 갤러거 대주교와 함께 아데르 야노시 헝가리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 셰미엔 졸트 부총리를 부다페스트 미술관에서 만났다. 교황청 공보실은 당시 만남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40분가량 진행됐다며, 양측이 △국가 내 교회의 역할 △환경보호 △가정의 보호와 증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교황은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을 모았던 헝가리 정부측과의 만남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교황과 헝가리 총리는 난민 문제와 관련해 입장의 차이를 보였다. “제가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헝가리 대통령님은 총리님, 부총리님과 함께 저를 기쁘게 맞아 주셨습니다. 헝가리 대통령님과는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교황은 당시 만남에서 환경과 가정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특히 헝가리가 인식하고 대비하는 환경문제는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헝가리 총리와 부총리는 젊은 부부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의 기술적 문제를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은 “이주민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 환대
이주민 문제와 관련한 주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격동 속에서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르반 총리는 4월 초 총리로 당선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즉각적인 휴전을 요청하기도 했다. 오르반 총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의 대답은 긍정적이었으나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며, 프랑스·독일·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회동을 위해 부다페스트로 초청했다고 말했다. 오르반 총리는 모스크바에 대한 제재와 키이우 지원과 관련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거절하기도 했다.
체르니 추기경의 헝가리 방문
헝가리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62만5956명의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헝가리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국경 근처에서 피란민을 맞이하고 그들의 정착을 위한 여러 지원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1만7000명 이상이 인도적 보호를 요청했으며, 10만여 명이 임시체류허가증을 신청했다. 헝가리는 실제로 가급적 많은 피란민이 유럽의 다른 지역, 특히 부모나 친구가 살고 있는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헝가리 가톨릭 단체인 카리타스를 비롯해 적십자와 개신교 단체 등이 헝가리 국경 검문소 다섯 군데에서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셰미엔 부총리 또한 부다페스트에서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임시 장관 마이클 체르니(Michael Czerny) 추기경과 만나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체르니 추기경은 교황의 뜻에 따라 지난 3월 초 헝가리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교황의 함께하는 마음을 전했다. 당시 체르니 추기경은 파견 이틀째 일정으로 헝가리 대통령궁을 방문했으며, 부총리는 그 자리에서 “난민 지원을 위한 국가와 교회의 훌륭한 협력”을 강조했다. “헝가리는 어떤 제한도 없이 피란민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에 체르니 추기경은 헝가리 정부의 이러한 입장이 전쟁으로 인한 비상시국에 한정되거나 우크라이나 피란민에 제한되지 않고, 전 세계 모든 민족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환대가 언제나 더욱 커지길 빕니다.” 부총리는 당시 만남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거부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저희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무력 충돌이 확산되지 않고, 외교적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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