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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에서 강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에서 강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강론 “하느님 자비는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열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4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 장면을 떠올렸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버렸던 제자들을 용서하시며 기쁨과 위로를 선사하셨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자비의 일꾼이 되도록 요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온 교회를 자비를 베푸는 공동체로 삼으십니다. 곧, 모든 인류를 위한 화해의 도구이자 표징입니다.” 아울러 고해사제들이 “언제나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한다고 초대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창욱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내는 부활 제2주일에 특별한 방식으로 울려 퍼진다. 올해 부활 제2주일은 서양의 대부분이 전쟁의 분위기에 휘말린 가운데 거행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4일 오전 10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켈라(Rino Fisichella) 대주교가 주례한 미사에 함께했다. 교황은 무릎 통증으로 미사를 주례하지 못했으나 강론은 직접했다. 이날 요한복음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스승님을 뵙고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뀐 제자들, 토마스의 불신앙,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수난의 표징, 용서를 베푸는 이들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 등을 들려준다. 이날 미사에는 많은 사제와 주교들, 자비의 선교사들을 비롯한 850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했다. 

예수님의 자비는 기쁨을 줍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복음사가의 이야기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인사가 예수님의 발현에 맞춰 세 번이나 나온다며, 그 인사말에서 △기쁨을 주고 △용서를 베풀고 △온갖 어려움에도 위안을 주는 “하느님 자비의 세 가지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실 때 제자들은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었다. 무거운 좌절감과 죄책감이 그들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스승님을 버린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잡히실 때, 그들은 달아났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배반자도 있었습니다. 배반자도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느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물론 과거에 그들은 용감한 선택을 했고, 열정과 헌신과 관대함으로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하여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곧,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홀로 버려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평화를 주시려고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교황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뵈었을 때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음에도 오히려 기뻐했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인사는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실패에서 멀어지게 했다. 또한 주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용서를 통해 깨끗해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느끼게 했다. 교황은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그분의 용서를 체험할 때마다 우리도 그러한 기쁨을 느낍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잘못, 죄,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주님께서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때입니다. 죄의 고백을 통해, 우리 가까이 다가오는 어떤 사람의 말을 통해, 성령의 내적 위로를 통해, 예기치 못한 놀라운 사건을 통해 말입니다. (...)”

용서받은 사람에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두 번째 인사 “평화가 너희와 함께!”는 선물, 곧 성령과 함께 다음과 같은 명령이 온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요한 20,23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자신의 공덕이 아니라 “용서받은 이들”의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한 은총의 선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화해를 전할 수 있길 바라신다. 이것이 바로 고해사제, 곧 “자비의 통로”를 통해 일어나는 일이다. 교황은 고해사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언제나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부름받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온 교회는 “모든 인류를 위한 화해의 도구이자 표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죄와 실패의 무게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경험할 때마다, 출구조차 없는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한 후 다시 태어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 알게 될 때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자비의 빵을 나눠야 합니다. 이 일에 우리가 부름받았다고 느끼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렇게 자문해 봅시다. 내가 살고 있는 가정, 직장, 공동체 안에서 나는 친교를 증진하고 있는가? 나는 화해를 엮어내는 방직공인가? 나는 증오가 있는 곳에 용서를, 원한이 있는 곳에 평화를 전하기 위해 갈등을 해소하는 데 헌신하는가? 아니면 나는 항상 사람을 죽이는 험담의 세계로 빠져드는가?”

토마스의 이야기는 모든 믿는 이들의 이야기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는 한 번 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세 번째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인사를 되풀이하신다. 이번에는 토마스도 함께 있었다. 그는 부활을 믿기 위해 표징을 원했다. 예수님께서는 믿기 어려워하는 그의 의심에 다가서시며 상처를 보여주신다. 그러자 토마스는 이렇게 외친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교황은 “토마스의 이야기는 모든 믿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삶이 신앙을 속이는 것처럼 보이는 힘겨운 순간이 있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토마스처럼 우리가 주님의 마음, 그분의 자비를 다시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압도적인 증거를 앞세우시거나 의기양양하게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거창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대신 따뜻한 자비의 표징을 제시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상처를 내보이십니다.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돌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의 상처를 가리키시며 종종 우리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깨닫게 하신다. 교황은 우리가 그들을 돌봄으로써 희망이 다시 태어난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진 적이 있는지 자문해 봅시다. 상처 입은 몸이나 지친 영혼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 적이 있는지,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동행하고, 위로하기 위해 시간을 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때마다 예수님과 마주칩니다. 그분께서는 삶의 시련을 겪는 이들의 눈으로 우리를 자비롭게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자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교황은 원고를 내려놓고 동정 마리아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강론을 마무리했다. “저는 성모님께서 사도들 가운데 계시는 장면을 생각하는 걸 좋아합니다.” 교회가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지내면서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기리는 것처럼,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 다음 월요일에 성모님을 자비의 어머니로 기리는” 생각을 선호한다. “성모님께서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직무를 잘 수행하도록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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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4월 2022,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