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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전쟁의 광기… 거기서 그리스도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강론에서 “우리가 폭력을 휘두를 때, 아버지이신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심지어 형제자매들인 다른 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울러 “증오의 공격에는 용서로 어루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교황을 통해 울려 퍼졌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Antonella Palermo / 번역 이창욱

따스한 햇살 가득한 성 베드로 대성전 앞 광장에서 사람들 손에 들린 올리브나무 가지와 종려나무(빨마) 가지가 바람에 나부꼈다. 살육, 억압, 죽음의 잔혹함으로 뒤흔들린 세상에서 공포와 마주하며 평화와 생명을 간절히 바라는 몸짓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6만5000명의 신자들과 함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가대의 합창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온갖 인간적 논리와 인간적 관심을 뒤엎는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한편, 갈바리아 언덕을 따라가며 예수님의 수난과 자기 자신의 내어줌의 신비로 들어간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부활의 빛에 대한 서곡이자 일찍이 그리스도 안에 요약된 인류 고통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성주간의 첫째 날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으셨지만”(이사 50,6 참조) 당신 자신을 낮추셨기에 하느님께서 높이 들어 올리신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교황은 전쟁을 잊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자들의 기도 소리와 성가대의 합창이 사람들로 빼곡한 성 베드로 광장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교황은 이 말을 반복했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회원들이 제공한 ‘황금빛 빨마 가지’를 들고 성전 앞 북쪽 회랑에서 행렬이 시작됐다. 세 명의 부제가 “주님의 수난기”를 봉독하자 성 베드로 광장은 시공을 거슬러 메시아를 환호하던 예루살렘의 장면으로 돌아갔다. 교황의 강론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며 역사 속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과 우리 동시대의 십자가 못질을 바라보게 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강론에서 교황은 우리로 하여금 전쟁과 그 전쟁이 십자가에 가하는 ‘못들’을 바라보게 했다. 하지만 그 핵심에는 ‘용서’라는 단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용서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사랑으로 열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폭력을 휘두르면 하느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교황의 강론 중 가장 분명하게 돋보이는 구절 중 하나는 이 시대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언급이었다. 우리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에 대한 증인이다. 교황은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는 복음 구절로 이에 대해 부연했다.

“우리가 폭력을 휘두를 때, 아버지이신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심지어 형제자매들인 다른 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폭력에 의존하면 우리가 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토록 터무니없는 잔혹행위를 저지르게 되는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전쟁의 광기에서 이를 봅니다. 전쟁의 광기 바로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렇습니다. 남편과 자녀의 부당한 죽음을 애도하는 어머니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분께서는 팔에 아이들을 안고 포탄을 피해 달아나는 피란민들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분께서는 홀로 죽어가도록 버림받은 노인들, 미래를 박탈당한 젊은이들, 자기 형제들을 죽이라고 파병된 군인들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너 자신이나 구원하라”

교황은 오늘 복음이 우리를 갈바리아의 현장으로 데려가 두 가지 사고방식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고방식과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한편에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 종교지도자들, 군인들, 죄수들 중 한 명이 이렇게 입을 모은다.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다른 한편에는 하느님의 아드님의 방식이 있다. 그분의 방식은 자기 자신의 안위만 신경쓰거나 오로지 “자신의 이익, 곧 소유물, 권력, 겉모습”에만 전념하는 방식과 정반대인 ‘용서하는 것’이다. 교황은 이 중요한 성경적 표현을 성찰하도록 초대했다.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이것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인류의 후렴입니다.”

“‘나’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하느님의 사고방식과 반대입니다. ‘너 자신을 구원하라’는 말은 당신 자신을 바치시는 구세주의 말씀과 충돌합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 세 차례에 걸쳐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고 말한 것과는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세 차례에 걸쳐 말씀하셨다(루카 23,34.43.46 참조). 이 말씀들과 관련해 교황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으셨다”며 “실로 그분께서는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그분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착한 죄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이 말씀을 잠시 묵상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언제 이렇게 말씀하셨나요?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동안, 못이 그분의 손목과 발을 꿰뚫는 것을 느끼실 때였습니다. 그분께서 겪으신 찢어질 듯한 고통을 상상해 봅시다. 거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수난의 육체적 고통이 가장 극에 달한 그 순간에 당신께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십니다. 그 순간에 당신의 모든 분노와 고통을 부르짖고 싶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성경이 설명하는 다른 순교자들과는 달리(2마카 7,18-19 참조), 그분께서는 사형집행인을 책망하시거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위협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굴욕의 교수대에 매달려 계신 그분의 내어 주는(dono) 태도는 용서(per-dono)의 태도가 됩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
성 베드로 광장에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

예수님은 우리를 선인과 악인으로 가르지 않으십니다

교황은 수난하시는 예수님의 ‘방식’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의 행실로 그분을 고통스럽게 할 때, 그분께서는 고통을 감내하시면서도 오직 한 가지 소망만 품고 계십니다. 곧,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봅시다. 그분의 상처에서, 우리가 박은 못 때문에 생긴 고통의 구멍에서 용서가 샘솟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보다 더 좋은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보다 더 온유하고 연민 가득한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합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포옹을 받아본 적이 없었음을 이해하도록 합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시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고 항상 용서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제가 저를 사랑하고 저를 용서하기 어려운 그 시간에도 말입니다.’”

“우리 삶이라는 못에는 사랑으로 반응합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동안, 고통의 절정에 이르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가장 어려운 계명인 ‘원수를 사랑하여라’를 몸소 실천하신다. 교황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실망시킨 사람, 우리의 화를 돋우는 사람,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좋은 모범이 되지 않았던 사람을 생각해 보라고 초대했다. 아울러 나쁜 기억을 강박적으로 되새기거나 상처가 덧나도록 계속 만지는 데 그쳐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는 그 상처에 머물지 말고 그에 반응하여 악과 후회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 삶이라는 못에는 사랑으로 반응하고 증오의 공격에는 용서로 어루만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스승이신 주님을 따르나요? 아니면 우리의 원한 본능을 따르나요?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물음입니다. 우리는 스승이신 주님을 따르나요? 아니면 우리의 원한 본능을 따르나요?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께 속하는지 입증하려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느끼는 대로 혹은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동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한다면 저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이 저의 친구가 되어 준다면 저도 당신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도와준다면 저도 당신을 돕겠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연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서 당신의 자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선인과 악인으로, 친구와 적으로 갈라놓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는 쪽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서 하느님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하느님께 우리 모두는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하고 포용하려 하십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선포하는 데 지치지 맙시다

여기서 교황은 원고를 내려놓고 주님께서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실 때를 떠올리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곧,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종을 초대하신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병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이를 초대하신다. 교황은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사랑받고 용서받는 특권을 누린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하느님의 용서라는 지칠 줄 모르는 힘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처럼 어느 정도까지만 참아 주시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황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루카 24,47 참조)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고 설명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용서를 선포하는 데 지치지 맙시다. 죄의 용서를 거행하는 우리 사제들, 용서를 받고 이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인 모두 말입니다. 하느님의 용서에 관해서라면 절대 지치지 맙시다.” 

교황은 “하느님의 용서를 선포하는 데 지치지 말자”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하나의 역설을 강조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계획했고, 그분의 체포와 재판을 준비했으며, 이제 그분의 최후를 보기 위해 갈바리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폭력을 일삼는 자들을 의롭게 하십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우리와 대적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와 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인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무지를 뜻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시성식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전대미문”의 말씀을 들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오직 한 사람만 이 말씀에 반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비가 그 죄수에게 마지막 희망을 불러 일으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도록 이끌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저를 잊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당신과 함께라면, 저를 위한 자리도 있을 것입니다.’ 착한 죄수는 인생이 끝나갈 때 하느님을 받아들였고, 이렇게 해서 그의 생명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지옥에서 천국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용서의 경이로움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남자의 마지막 청원을 역사상 최초의 시성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 베드로 광장의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성 베드로 광장의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하느님과 함께라면 언제나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교황은 시편 30편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초대로 성주간을 열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모든 거리에도 다리를 놓을 수 있으시며, 비탄을 춤으로 바꿀 수 있으십니다.” 교황은 인류의 미래가 전 지구적으로 불확실성과 비탄을 거쳐가고 있는 현 시기에도 한 가지 분명한 확실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항상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라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언제나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언제나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의 용서와 함께 파스카 여정을 향해 걸어갑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아버지께 빌어 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께 빌어 주십니다. 그분께서 상처 입고 폭력에 물든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시며 지치지 않고 이렇게 되풀이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도 침묵 중에 마음속으로 이 기도를 바칩시다.”

교황의 강론이 끝난 후 잠시 동안 침묵이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채웠고, 침묵의 기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교황, 페루 기억하며 전쟁 종식 위해 기도

교황은 미사를 마치기에 앞서 남미 대륙을 언급했다. 특히 사회적 긴장의 어려운 순간을 겪고 있는 페루를 기억했다. 교황은 “모든 당사자들”이 “모든 사람과 각 기관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가능한 빨리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아울러 마리아에게 전한 천사의 말을 반복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십니다(루카 1,37). 그분께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우리 눈앞에서 나날이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학살과 비무장 민간인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극악무도한 잔학행위를 끝내실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운집한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은 다시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부활절을 기해 휴전에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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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월 2022,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