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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이라크 사도 순방 2021년 이라크 사도 순방 

1년 전 교황의 이라크 사도 순방, 못다 이룬 ‘평화’ 위한 여정

지난 2021년 3월 5-8일 이라크 순방길에 올라 바그다드, 우르, 모술, 기타 중동의 상징적인 장소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쟁과 테러로 위태로운 이들의 영혼을 일깨웠다. 교황의 이라크 사도 순방 1주년을 맞아 이라크 칼데아 동방 가톨릭교회 바빌로니아 총대주교 루이스 라파엘 사코 추기경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의 목소리는 우리 가운데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우리는 전쟁을 겪어왔기에 연대하는 움직임이 크다”면서 “전쟁 너머에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Benedetta Capelli, Salvatore Cernuzio / 번역 박수현

“أهلا بك في الموصل يا قداسة البابا فرنسيس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환영합니다.”

이라크 모술은 지난 2014년 8월 다에시(Daesi, 자칭 이슬람국가)가 자신들의 수도로 선포했던 곳이다. 1년 전인 2021년 3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 모술을 찾았다. 교황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마치 상처를 감싼 붕대처럼 보였다. 무너진 건물, 피로 얼룩진 벽, 총탄으로 뒤덮인 문, 잔해 더미, 감옥이나 법정으로 부적절하게 사용한 흔적이 남은 예배 장소 등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덮으려고 사람들이 싸맨 붕대 같았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지역 중심부에 방탄차를 타고 도착한 교황은 완전히 황폐한 곳이 된 참혹한 풍경을 바라봤다. 교황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려고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을 막론한 어린이, 노인, 남성과 여성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에 나와 교황을 환대했다. 이들은 수년 간의 고통과 공포를 겪은 끝에 마침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평화의 비둘기

“알라라, 알라라.” 이른 새벽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여성들이 이렇게 외쳤다. 분쟁과 지하디스트 테러로 황폐해진 이 중동 지역의 역사적 사도 순방 여정 내내 교황과 함께한 환희의 외침이었다. 이라크 칼데아 동방 가톨릭교회 바빌로니아 총대주교 루이스 라파엘 사코(Louis Raphaël Sako) 추기경은 1년 전 그 순간을 회상했다. 사코 추기경은 로마의 주교(교황)의 사도 순방 동안 교황과 가까이 있었다. 교황이 이라크 무슬림 시아파 공동체 최고 지도자 대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와 만날 때, 테러의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곳 가운데 하나인 니네베 평원을 헬기로 이동할 때, 카라코쉬 박해장소를 방문할 때, 축복과 저격수의 위험이 공존하는 모술의 폐허에서 기도할 때, 칼데아의 우르 사막에서 종교 간 만남에 이르기까지 교황 역사상 유일한 이라크 사도 순방을 교황과 함께했다. 사코 추기경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교황님이 흰옷을 입고 공항에 도착해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길 빕니다. 평화롭게 사십시오’라고 말씀하실 때, 마치 평화의 비둘기처럼 보였습니다.” 

모술에서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한 교황
모술에서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한 교황

모든 전쟁의 고통

교황은 이라크 순방 연설마다 ‘평화’를 반복했다. 유럽의 심장부를 파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전쟁의 함성이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오늘날 절실한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전하는 사진과 뉴스는 이라크 국민들을 무관심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수년 동안 공격과 폭탄테러,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로 수년간 시달렸기 때문이다. 사코 추기경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비극적인 참상을 경험했습니다. 끔찍합니다. 불행, 빈곤, 강제이주, 수많은 재앙이 생깁니다.”  

사코 추기경은 이라크 순방 당시 교황의 “아버지 같은” 몸짓이 전쟁을 그만두고 “우리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인식하고, 성숙한 사람으로서 대화하며, 더 나은 방식으로 사회를 건설하고, 항상 발생하는 어떠한 대립도 피해야 한다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비극에 비춰볼 때 교황의 이 같은 메시지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이 예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건설적인 대화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국가의 존엄과 자유, 정의, 주권의 가치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을 위한 메시지

최근 이라크는 지난 2021년 교황의 사도 순방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치르고 있다. 교황의 메시지는 결코 공허한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사코 추기경은 교황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줬다며 “이는 군주나 국가의 원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의 얼굴”이라고 강조했다. “교황님의 목소리는 우리 가운데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습니다.” 

한편,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가 우르-남무 지구라트의 모습을 희미하게 가릴 때, 칼데아 우르의 붉은 모래밭 한가운데 마련된 연단에서 교황이 속삭인 말은 잊기 어렵다. 이날 교황은 이라크의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이사야의 예언을 떠올렸다. 교황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 2,4)는 예언이 성취되는 대신 “칼과 창이 미사일과 폭탄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찰은 1년 후 키예프와 다른 우크라이나의 도시의 파괴, 핵위협, 대화가 아닌 군비경쟁 등으로 확인됐다. 

카라코쉬 성지의 프란치스코 교황
카라코쉬 성지의 프란치스코 교황

“무기는 이제 그만” 

“무기 생산을 멈추십시오!” 사코 추기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무기는 인류 전체에 대한 위협입니다. 일반 무기가 아니라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요! (...) 이 세상, 특히 서방은 종교적, 인간적 가치를 잃었습니다. 무관심과 이기심이 도처에 만연하고, 모든 것이 오직 소비와 당파적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디로 가나요? 이 모든 대가를 누가 치르나요?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시리아, 이라크, 예멘, 리비아, 아프리카 전역에서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릅니다. (…) 무기를 생산하는 사람들, 무기를 팔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은 양심이 있긴 할까요?”

복수의 유혹에 대한 용서

사코 추기경의 성찰은 비통에 잠겨 있다. 그러나 이 비통은 평화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지 않는다. 지난해 3월 8일 아르빌 프란소 하리리 스타디움에서 미사를 거행한 교황도 이 같은 취지로 말했다. 다에시에 의해 훼손된 성모상이 서 있던 자리에서 교황은 “끝없는 보복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복수에 대한 유혹”보다 훨씬 굳건한 “용서”를 이라크 교회가 보여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교황은 “인류의 착한 사마리아인이신 주님께서 모든 상처에 향유를 바르시고,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치유하시며, 이 땅에 평화와 형제애의 미래를 불어넣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사코 추기경이 “우크라이나 형제자매들”과 공유하길 원하는 이라크의 진정한 유산이다.

전쟁 너머의 미래

사코 추기경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사람들이 전쟁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전쟁을 겪어왔기에 연대하는 움직임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와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이지만, 인류의 친밀함은 강합니다. 이라크에서 전쟁은 끝났습니다. 비록 권력투쟁과 부패가 이어지고 있지만 말이죠.” 사코 추기경은 파멸과 폐허 더미에서 일어난 후 세상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쟁 너머에 미래가 있습니다.”

아르빌에서 거행된 미사. 제대 옆에 다에시에 의해 훼손된 성모상이 있다.
아르빌에서 거행된 미사. 제대 옆에 다에시에 의해 훼손된 성모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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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3월 2022, 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