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 만남 “교황님이 우리의 고통에 귀 기울이셨습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진실, 정의, 치유, 화해.”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은 이 ‘보따리’를 들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위해 캐나다에서 로마로 왔다. 과거의 고통을 지울 순 없겠지만 훗날의 고통을 치유하고 예방할 수 있는 공동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교황은 3월 28일 오전 교황청 사도궁 서재에서 두 팀의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을 연달아 맞이했다. 하나는 메티스 원주민 대표단이고, 다른 하나는 이누이트 원주민 대표단이다. 각 대표단은 캐나다 주교회의 소속 몇몇 주교들이 함께한 가운데 1시간씩 교황을 만났다. 교황청 공보실장 마테오 브루니는 이 시간을 가리켜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비극의 생존자들이 들려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하고 그 이야기에 충분히 시간을 마련하려는 교황의 바람으로 특징지어진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화해의 여정
교황은 지난 2021년 6월 6일 삼종기도 당시, 불과 몇 주 전에 접한 비극적인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캐나다 캠룹스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200구 이상의 캐나다 원주민 유해가 발굴됐다. 캐나다의 기숙학교들은 1880년부터 20세기의 마지막 10년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주로 그리스도교 단체가 운영한 이 같은 기숙학교는 원주민 어린이를 캐나다의 주류사회로 동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원주민 어린이들을 전통주거시설에서 나오게 한 후 기숙학교로 수용해 교육하고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학대받은 피해자들이 생겼다. 유해 발굴현장은 캐나다 기숙학교의 잔혹한 과거의 상징이다. 6월의 발굴 당시(이후 다른 발굴작업이 뒤따랐다) 캐나다 주교회의는 즉각 “내 탓이오”(mea culpa)를 외쳤다. 또한 화해 과정을 통해 원주민 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활성화했다. 화해의 정점은 이날(3월 28일)의 만남에 이어 오는 3월 31일 원주민 대표단과의 만남이 예정된 교황의 환대, 그리고 교황의 약속대로 조만간 - 하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은 - 성사될 교황의 캐나다 사도 순방으로 대변된다. 한편, 교황은 오는 4월 1일 교황청 클레멘스 홀에서 캐나다 주교단과 전체 원주민 대표단을 만날 예정이다.
“올바른 일을 하기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3월 28일 오전 교황은 처음으로 “전국 메티스 평의회” 회원들을 만났다. 이야기, 역사, 기억을 비롯해 많은 몸짓이 깃든 만남이었다. 교황과 원주민들은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물론 “진실, 정의, 치유, 화해”라는 공동 여정이다.
원주민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두 대의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도궁에서 나온 원주민들은 오전의 만남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국제 기자단을 만났다. “전국 메티스 평의회”의 젊은 의장 캐시디 캐론이 원주민을 대표해 성명서를 읽었다. “아무도 그들의 진실을 듣지 않고 아무도 그들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기본적인 인류애와 치유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그는 “인정과 사과는 상당히 늦었다”면서도 “올바른 일을 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말했다.
교황의 고통
“전국 메티스 평의회”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희생과 그들의 가족을 이해하는 “어렵지만 핵심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모아들인 이야기는 이날 교황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교황님은 앉아서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우리 생존자들이 각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교황님의 반응에서 큰 고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존자들은 자신의 진실을 말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용감했습니다. (...)”
“우리는 이곳에 오는 여행과 교황님과의 만남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교황님이 이해하실 수 있는 말로 우리의 말을 번역했습니다.” 캐론 의장은 교황과 세계 교회가 이제 “번역” 작업에 나섰다는 게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곧, 경청한 말을 “진실을 위해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우리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초대했을 때, 교황님은 스페인어로 답하시며 ‘진실, 정의, 치유, 화해’를 반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개인적인 약속으로 받아들입니다.”
캐론 의장은 “자랑스럽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우리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과 이누이트 원주민들과 함께 여기에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자랑스럽습니다.” 캐론 의장은 기숙학교와 관련해 바티칸에 보관된 문서에 대한 접근 요청서를 제출했다고도 밝혔다. “우리는 메티스 민족이 온전한 진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계속 지원하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오는 4월 1일 교황님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교황님과 문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 편집주: ‘퍼스트 네이션’은 일반적으로 북미 원주민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들은 스스로를 캐나다 땅에서 살아온 최초의 국민이라는 뜻에서 인디언이나 원주민이라는 표현 대신 이 표현을 쓴다. ‘캐나다 원주민’은 유럽인들이 캐나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살아왔던 ‘퍼스트 네이션’을 이루는 다양한 문화집단, 유럽인과의 혼혈인 메티스, 북극권에서 주로 생활하는 이누이트를 아우른다.
안지 여사의 증언
성 베드로 광장에는 85세의 안지 크레라 여사도 있었다. 짧은 머리, 검정 선글라스, 검은 드레스 위에 다채로운 실로 수놓은 복장을 한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도착했지만 자신의 일생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나눌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교황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지 여사는 지난 1947년 캐나다 북서 지역에 위치한 기숙학교에서 여동생들과 10년 이상을 지냈다고 말했다. “거기서 우리는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언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데 45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안지 여사는 과거의 기억에 짓눌려 있기보다 현재를 바라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더 강해졌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이제 모든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하나의 승리입니다. 잃어버린 모든 세월에 대한 우리 민족의 승리입니다.”
이날 교황과의 만남과 관련해 안지 여사는 “매우 긴장한 상태”로 바티칸에 도착했다면서도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온유하고 친절한 분”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황이 자신을 안아주며 수십 년에 걸친 고통을 덜어줬다고 말했다. “저는 교황님 곁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멀리 떼어놓으려고 했어요(웃음). 참 좋았습니다. 저는 매우 긴장했었습니다. 교황님이 제게 말씀하신 후에, 비록 말씀을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분의 미소, 반응, 신체언어는 이분이 벗이라는 걸 느끼게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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