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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7일 이라크 사도 순방 중 모술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21년 3월 7일 이라크 사도 순방 중 모술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설

모술의 폐허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울려 퍼지는 평화와 희망의 목소리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10년 차에 접어든다. 1년 전 이라크에서 외친 교황의 말은 현 상황에 다시 깊은 울림을 준다.

ANDREA TORNIELLI / 번역 이재협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즉위 10년 차에 접어든다. 안타깝게도 올해 그의 교황직은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난 전쟁의 공포로 얼룩져 있다. 그가 수행한 교황직 안에서 매우 중요하고 용감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이라크 사도 순방의 연설을 다시 들어보면 현 상황에 깊은 울림을 주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순방은 안보상의 우려에서 비롯한 수많은 반대 의견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강력히 원했던 순방이었다. 특히 교황은 이라크에서 거행될 여러 전례와 행사에서 만날 사람들을 위해 순방을 감행했다. 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못다 이룬 꿈인 이라크 사도 순방을 2021년 3월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교황은 이라크를 방문해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희생자들에게 자신의 친밀함을 전하고, 이라크 재건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을 걸어가는 이들을 격려하며,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수많은 평화로운 무슬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라크 방문을 결심했다.

당시 사도 순방의 절정은 교황이 폐허로 바뀐 도시 모술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곳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우리 모두 전쟁과 무력 충돌로 인한 모든 희생자를 위해 전능하신 하느님께 목소리 높여 기도합시다. 이곳 모술에는 전쟁과 적대행위의 비극적인 결과들이 너무나 명백합니다. 문명의 요람인 이곳이 이처럼 비인간적인 폭풍우에 시달린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요! 종교 예식을 위한 오래된 장소들이 파괴됐고, 무슬림, 그리스도인, 야지디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테러로 잔인하게 희생됐으며, 강제로 추방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1년 후 세상은 다시금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위선으로 포장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더러운 전쟁의 비극적 결과들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 무죄한 이들의 죽음, 특히 아이들의 죽음, 이산가족, 포격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수백만의 피란민들, 전쟁터로 변한 도시, 무너지고 불탄 건물을 온 세상이 보고 있다. 치유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를 마음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래선 안 된다고 예언적 소명으로 간청했던 이라크 전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전쟁이다. 당시 교황의 탄원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아브라함의 땅은 온갖 테러의 소굴로 변했다. 전쟁은 “돌아올 수 없는 모험”이다. 

이번 사태에서 증오와 폭력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론으로 가려질 수 없으며, 종교적 동기와 관련이 있다고 꾸며낼 수도 없다. 이번 전쟁의 양측 전선에는 같은 믿음과 같은 세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대혼란과 온 세상이 핵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전쟁 고조라는 긴장 앞에서 희망의 표징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1년 전 모술에서 “형제애가 형제살해의 죄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확신을, 희망이 죽음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확신을, 평화가 전쟁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우리의 확신을 재확인하자”고 외친 교황의 말처럼,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간청하고, 그 평화를 찾고 추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서, 휴전을 위한 노력과 진정한 협상의 시작을 위한 지향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이나 억지력에 기반하지 않는 국가 간 공존을 건설하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면 용기와 창의성이 필요하다. 불과 며칠 만에 수백만의 피란민에게 자국의 문을 열어준 폴란드와 같은 나라들의 아래로부터의 연대라는 큰 물결과 너그러움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교황은 1년 전 우르 평원에서 열린 종교간 만남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화의 길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평화의 길은 그 누구와도 대적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별을 바라보려고 용기를 내는 이들,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이들에게는 싸울 원수가 없습니다. 이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오직 하나,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려는 원수가 있을 뿐입니다. 그 원수는 바로 적대감입니다. 어떤 이들은 친구가 되기보다 원수를 만들려 하고, 또 많은 이들은 이웃의 아픔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구합니다. 하지만 약속의 별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길을 걷는 이들은 아무도 적대하지 않으며 모든 이를 위해 살아갑니다. 어떤 형태의 강요, 압박, 권력남용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서도 안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년 동안 교황직을 수행하며 평화의 길이란 ‘마음의 비무장’에서 시작한다고 가르쳤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되시어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력한 희생양이 되기로 택하신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지난 2000년 동안 우리에게 억압받는 이들, 공격받는 이들, 패배한 이들, 가장 낮은 이들, 버림받은 이들의 편에 서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오셨다. 주님께서는 증오, 전쟁, 폭력이 아니라 평화의 씨앗을 뿌리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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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월 2022,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