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같은 제단에 모여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한 겸손을 청합시다”
Amedeo Lomonaco / 번역 이재협 신부
동방박사들의 순례와 교회 일치를 위한 여정은 인류 역사 안에서 2000년이 넘는 역사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예수님의 빛’이라는 별의 인도를 받아 나아가는 여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거행한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 제2저녁기도의 강론을 통해 동방박사들의 여정에서 출발하는 온전한 일치의 여정을 강조했다. 이날 기도에는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를 대신해 폴리카르포스(Polykarpos) 대주교가 참석했으며, 교황청 주재 성공회 대표 이안 어니스트(Ian Ernest) 주교를 비롯해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표단도 함께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동방박사들이 “빛나는 별을 보고” 동방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방박사들이 “세상의 어두운 세력의 저항”을 체험한 장소인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 엎드려 경배”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도 예수님의 별을 따라갑시다
교황은 제55차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마무리하는 제2저녁기도 강론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의 여정을 동방박사의 여정과 비교해 설명했다. 또한 복음의 빛을 따라 “우리가 하나 되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을 간직하자고 당부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별을 따라갑시다. 반짝이는 듯 보이지만 추락하는 별인 세상의 눈부심에 현혹되지 맙시다. 빛을 잃어가는 유성과 같은 시대의 유행을 따르지 맙시다. 자신의 빛으로 빛나고자 하는 유혹, 곧 폐쇄적인 공동체를 이뤄 자신들을 보존하려는 유혹을 바라지 맙시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별을 바라보길 빕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따라 일치의 길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합시다. 그 길이 아무리 길고 고되다 할지라도 그 여정은 온전한 일치를 이루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별을 바라보면서, 교회는, 일치의 여정을 걷는 우리 교회는 언제나 ‘별의 신비’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동방박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도우면서 함께 소망하고 함께 걸어갑시다.”
동방에서 출발한 동방박사들
교황은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교회 전통은 종종 동방박사들이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묘사함으로써 다른 민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 안에 반영된 우리의 다름, 우리의 다양한 전통, 우리의 다양한 그리스도교적 체험을 볼 수 있는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상에서 걸어간다’는 같은 갈망에서 나오는 우리의 일치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함께 걸어갑시다. 또한 ‘동방’하면 전쟁과 폭력으로 희생되는 여러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떠오릅니다. 중동교회협의회는 이번 기도 주간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동방의 우리 형제자매들은 수많은 어려운 도전과 마주해야 했지만 그들의 증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곧, 그들은 예수님의 별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고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높은 곳에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앞길에 함께하시고 힘을 주신다는 희망을 기억하게 합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 곁에는 신앙고백으로 구별되지 않는 순교자들의 큰 무리가 함께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있는 우리에게 일치를 위한 분명한 길을 알려줍니다.”
예루살렘의 곤혹
동방에서 출발한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품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마태 2,3)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서 세상의 어두운 세력의 저항을 체험합니다. 세상의 부패한 세력과는 다른 새로운 왕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듣고 위협을 느낀 사람은 헤로데만이 아니었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동방박사들의 말에 곤혹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치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의 여정에서도 예루살렘의 군중을 마비시켰던 혼란과 두려움과 같은 이유로 저항이 생길 수 있습니다. 평소 관행과 보장된 안전을 뒤흔드는 새로움에 공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나의 전통과 견고한 계획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공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려 하십니다. 우리 친교의 여정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당부가 다시 울려 퍼지게 합시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5.10). 우리의 두려움보다 형제자매를 택하는 것을 겁내지 맙시다! 우리의 약함과 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잘못과 서로에게 준 상처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믿음을 주고 함께 여정을 걸어가길 원하십니다.”
베들레헴 도착
“인간이 세운 장벽에 의해 하늘에서 보여준 길이 끝나는 것만 같던 예루살렘”에서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교황은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라진 별의 인도”뿐만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는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가르침”(마태 2,4 참조) 덕분에 베들레헴으로 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곧,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필요했다. 그들은 마침내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다. 그들의 여정은 “같은 집 안에서 함께하는 경배”로 마무리됐다.
“각기 다른 민족이지만 일치를 이룬 동방박사들은 ‘갈릴래아 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한 제자들’(마태 28,17 참조)에 앞서 예수님을 뵙고 경배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우리를 위한 예언의 표징이 됐습니다. 곧, 하느님을 갈망하는 우리를 위한 표징, 지상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인 우리를 위한 표징, 역사 안에 계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우리를 위한 표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또한 같은 집 안에서 주님께 올리는 경배를 통해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온전한 친교를 향한 여정의 결정적인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한 기도와 경배, 하느님께 대한 흠숭을 통해 가능합니다.”
일치의 중심에는 예수님만이 계셔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경배하기 위해 “먼저 몸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교황은 “이러한 겸손이 바로 그 길”이라며 “예수님만을 중심에 놓기 위해 다른 갈망은 한 쪽으로 제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만이 얼마나 자주 진정한 친교의 장애물이 됐는지 모릅니다!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구간 안에서 자신들을 낮추기 위해 자신들의 명망과 명성을 버릴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더 없는 기쁨’(마태 2,10 참조)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버리고, 소박하게 하는 용기를 달라고 오늘 저녁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같은 집 안에서, 같은 제단 주변에 모여, 하느님을 경배하는 장소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겸손의 용기를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나눠야 할 선물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만나 엎드려 경배한 후 자신들이 가져온 보물 상자를 열어 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다. “이 장면은 오직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빛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난 후에야 각자가 가진 보물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보물들은 모든 이의 것입니다. 곧, 모두가 나눠가져야 할 선물입니다. 이 보물은 공동선을 위한 성령의 선물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선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받고 싶어하시는 선물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는 가장 귀중한 물건인 황금을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가장 첫 자리에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께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 우리의 길이 아닌 하느님의 길을 바라봐야 합니다. 진정 하느님께서 첫 자리에 계시다면, 교회적 선택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선택은 더 이상 세상의 정치 논리에 근거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근거를 둬야 합니다. 두 번째 선물인 유향은 우리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상기합니다. 유향은 하느님께 올리는 분향 같은 기도(시편 141,2 참조)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서로 함께 기도하는 일에 지치지 맙시다. 마지막 선물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의 몸을 영광스럽게 하는데 사용될(요한 19,39 참조) 몰약입니다. 몰약은 가난한 이들의 상처 안에서 드러나신 예수님의 고통받는 몸을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깁시다. 우리 모두 함께 고통받는 예수님을 모시도록 합시다!”
동방박사들과 같은 온전한 일치를 위한 여정은 예수님의 별을 따라가는 여정이 돼야 하며 “겸손의 길, 형제애의 길, 경배의 길”을 거쳐야 하는 여정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기도로 강론을 끝맺었다. “주님, 저희에게 방향을 바꿀 용기, 회심을 위한 용기, 저희의 뜻이 아닌 당신의 뜻을 따를 용기를 주소서. 당신의 영을 통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려는 당신을 향해 함께 나아갈 용기를 저희에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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