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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기내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제56차 홍보주일 담화 “엿듣거나 염탐하지 말고 경청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6차 홍보주일 담화에서 “‘공보(informazione ufficiale)’와 관련해 사전에 축적된 수많은 불신이 ‘인포데믹(infodemia)’을 초래했다”며 “정보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신뢰성과 투명성을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주민에 대한 관심도 호소했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들을 숫자나 위험한 침략자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6차 홍보주일 담화에서 팟캐스트, 오디오 챗, 소셜 미디어, 뉴스 보도 등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홍보 매체에 시선을 두고, 언론인과 커뮤니케이션 관련 종사자들을 향해 더 깊숙이 들어가 이야기되고 출판되며 기록되는 내용의 본질을 파악하라고 초대했다. 이는 “경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경청은 “엿듣기나 염탐” 혹은 “뒷담화”가 아니다. 경청이란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각 개인의 깊은 곳에 새겨진 요청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아울러 이주민을 단순히 “숫자”나 “위험한 침략자”로 바라보는 편견을 극복하고,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악화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경청의 한 방법이다. 오는 2022년 5월 29일 지내는 홍보주일의 담화에서 교황이 30회 이상 강조한 단어는 “경청”이다. 지난해 홍보주일 담화에서 “나가서 보고 신발이 닳도록 발로 뛰라”고 강조한 교황은 올해 담화를 통해 “경청하다”라는 동사를 수차례 반복했다. “경청은 교육자, 양성자, 또는 정보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이에게 요청됩니다. 부모와 교사, 언론 종사자들을 비롯해 사목자, 정치인 등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귀를 막으면 상대방에 대한 공격성이 생깁니다

경청은 “인간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오늘날 의사소통은 “등을 돌리고 귀를 막는” 경향으로 흘러간다고 교황은 지적했다. 아울러 “경청의 거부는 종종 상대방에 대한 공격으로 번진다”며, 이것이 심각한 위험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들으며 어떻게 경청하느냐에 주목할 때라야 우리는 소통의 기술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은 이론이나 기법이 아니라 ‘친밀함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 열기’입니다.”

이주민의 사연을 경청하십시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모두 귀가 있지만, 온전한 청력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육체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보다 내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더 심각합니다.” 교황은 이런 맥락에서 강제이주의 현실에 주목하고 “그 누구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미리 마련하지 않은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우리 마음의 완고함을 녹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주민들에게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십시오. 많은 훌륭한 언론인들이 이미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많은 이들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이주민을 격려합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러면 모든 이가 자신의 나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주 정책을 자유롭게 내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눈앞에 있는 이들을 숫자나 위험한 침략자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들은 저마다 얼굴과 사연, 시선, 희망과 고통을 지닌 구체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들어줄 귀를 필요로 합니다.” 

불신이 만든 “인포데믹”

교황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환멸과 냉소의 벽을 허물도록 격려했다. 

“‘공보(informazione ufficiale)’와 관련해 사전에 축적된 수많은 불신이 ‘인포데믹(infodemia)’*을 초래했습니다. 정보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신뢰성과 투명성을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 편집주: 인포데믹은 정보(information)와 유행병(epidemic)의 합성어로, 정보전염병이라고도 부른다. 잘못된 진단과 전망이 전염병처럼 급속히 퍼져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소셜 미디어와 함께 고조되는 엿듣기와 염탐의 경향

교황은 “특히 많은 경제활동의 침체나 중단으로 고조된 사회적 불안에 귀를 기울이고 깊이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청이 진정한 듣기가 아니라 그 반대인 엿듣기”가 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항상 존재하는 유혹은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엿듣기와 염탐의 유혹입니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더 위험한 유혹입니다. 하지만 온전히 인간적이고 좋은 의사소통을 만드는 방법은 우리 앞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며, 솔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곁에서 그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뒷담화

교황은 경청과 관련해 “공교롭게도 우리는 공공생활에서 서로의 말을 듣기는커녕 종종 뒷담화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습은 진리와 선을 추구하기보다 상대방의 공감을 얻어내려 한다는 사실의 징후입니다. 경청하기보다 듣는 사람을 의식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좋은 의사소통은 “대화 상대를 조롱할 목적으로 농담하며 대중에게 큰 인상을 주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어떤 행동에 대한 명분에 주의를 기울여 그 사람의 복합적인 현실을 파악하려고 힘쓰는 것”이라고 교황은 강조했다. 이러한 자세는 교회 내 논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의미를 지닌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념적 진영이 형성되고 경청하는 모습이 사라지며 무익한 대립이 난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두 사람의 독백”이 아니라 진정한 대화를

교황이 지적한 또 다른 위험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우리가 전혀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황은 우리가 단지 “나의 관점을 강요하기 위해 상대방이 말을 마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의 말을 인용하며 이 경우 대화는 “듀올로그(duologue), 곧 두 목소리의 독백”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먼저 경청하지 않으면 소통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청하는 역량이 없으면 좋은 저널리즘도 없습니다. 견고하고 균형 잡힌 완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경청해야 합니다. 보도를 위해 어떤 사건에 대해 말하거나 어떤 현실을 설명하려면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생각을 바꾸거나 처음의 가설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황은 “독백을 제쳐놓을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의사소통을 보장하는 여러 목소리의 조화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중 하나가 “하나의 자료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출처에 귀 기울여” 우리가 전하는 정보에 신뢰성과 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청의 수고로움과 “인내의 순교”

교황은 경청하는 일이 물론 수고롭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 경청을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교황은 교황청의 위대한 외교관 중 한 명인 아고스티노 카사롤리(Agostino Casaroli) 추기경이 말한 “인내의 순교” 개념을 인용했다. 카사롤리 추기경은 “자유가 제한된 조건에서 가능한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어려운 대화 상대와의 협상에서 귀를 기울이고 경청할 줄 아는 덕목”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더해 교황은 덜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청을 위한 인내”와 “비록 진리의 파편에 불과할지라도 작은 진리에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귀의 사도직

교황이 언론인과 커뮤니케이션 관련 종사자에게 당부하는 것은 “귀의 사도직”이다. 아울러 귀의 사도직이 시노드 과정 안에 잘 녹아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시노드가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좋은 기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사실 친교는 전략이나 프로그램의 결과가 아니라, 형제자매들 사이의 상호 경청으로 구축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화음으로 소리내는 성가대처럼, 일치는 한 목소리의 획일성이나 천편일률이 아니라, 여러 목소리와 다양한 목소리의 조화, 다성음악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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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월 2022,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