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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주신 기쁨은 완전하고 사심 없는 기쁨이지, 묽어져서 약화된 기쁨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 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카나의 혼인잔치에 관한 복음을 이 같이 풀이했다. 교황은 여기서 말하는 ‘표징’은 “특별한 치유나 기적”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소박하고 구체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우리의 삶에서 온유한 사랑의 표징들을 살펴보자고 초대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전례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신혼부부의 기쁨을 위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카나의 혼인잔치 사화를 들려줍니다. 사화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 요한 복음사가가 기적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하고도 특별한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복음사가는 제자들의 믿음을 일으킨 ‘표징’이 카나에서 일어났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표징”은 무엇인가? 

그 표징은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실마리입니다. 곧, 기적을 일으키는 행위의 힘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는 사랑에 주목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느님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곧, 항상 가까이 있고, 온유한 사랑과 연민으로 넘치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첫 번째 표징은 부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곤경에 처했을 때 일어납니다. 혼인잔치가 한창이던 와중에 필수적인 요소, 곧 포도주가 떨어져 초대받은 손님들의 비난과 불만으로 기쁨이 사그라질 위기에 봉착합니다. 물만으로 어떻게 혼인잔치를 진행시킬 수 있을지 상상해 봅시다! 끔찍한 일입니다! 그 부부가 얼마나 나쁜 인상을 받겠습니까!

이 문제를 알아차리시고 조심스레 예수님께 알리신 분은 성모님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거의 아무도 모르게, 드러나지 않게 개입하십니다. 모든 일이 “막후에서” 비밀리에 전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씀하시자 그 물은 포도주가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방식입니다. 친밀하고도 신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를 깨닫습니다. 곧, 예수님 덕분에 혼인잔치가 훨씬 더 아름답게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아울러 제자들은 그 순간에 드러나지 않게 섬기시는 예수님의 방식, 곧 예수님의 행동 ‘방식’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되, 드러나지 않게 도와주십니다. 그리하여 좋은 포도주를 내놓은 것에 대한 찬사는 신랑에게 돌리십니다.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직 일꾼들만 알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씨앗이 제자들 안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은 하느님이, 다시 말해 하느님 사랑이 예수님 안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첫 번째 표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생한 특별한 치유나 기적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소박하고 구체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행동, 곧 가정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으며” 신중하고도 고요하게 일어난 기적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일으켜 세우실 준비가 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표징”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정복되어 그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카나의 표징에는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잔치가 끝날 때 내어놓는 포도주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치의 막바지에 이르면 사람들은 좋은 포도주인지 물이 조금 섞인 포도주인지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좋은 포도주’로 잔치가 끝나도록 행하십니다. 상징적으로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 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한계를 정하지 않으시며, 금전적 보상을 담보로 추가적인 성과를 내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표징에는 그 부부에 대한 숨은 동기나 요구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가져오신 기쁨은 완전하고 사심 없는 기쁨입니다. 묽어져서 약화된 기쁨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유익한 실천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내 인생에서 이루신 ‘표징들’을 찾아 우리의 기억을 뒤적여 보도록 합시다. 각자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주님께서 내 인생에서 이루신 표징들은 무엇인가? 주님의 현존을 알려주는 암시는 무엇인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그분께서 행하신 표징들은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 주신 그 어려웠던 순간을 생각해 봅시다. (...) 그리고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각별하고 배려 넘치는 표징들을 통해 당신의 온유한 사랑을 느끼게 하셨는가? 나는 언제 주님께서 더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꼈으며, 언제 그분의 온유한 사랑과 그분의 연민을 느꼈는가? 우리는 저마다 개인사 안에 이러한 순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표징들을 찾아보고, 기억합시다. 나는 그분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발견했으며, 그것이 어떻게 내 마음을 큰 기쁨으로 채웠는가? 우리가 주님의 현존과 마리아의 중재를 체험했던 순간들을 되살려 봅시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처럼 항상 주의를 기울이시는 어머니 성모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의 표징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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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월 2022, 14:34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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