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우리의 실존적 광야에 계십니다. 우리가 회심하면 생명이 피어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5일 그리스 아테네 “메가론 콘서트 홀”에서 거행한 미사 강론을 통해 민족들의 역사와 모든 인간의 삶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기 위한 공간과 시간을 언급했다. 곧, 광야와 회심의 때다. “하느님과 함께 만물이 변하고, 그분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시며,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바꾸신다는 것을 믿는 은총을 청합시다.”

Amedeo Lomonaco / 번역 이창욱

그리스 방문 둘째 날 레스보스섬 난민들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테네로 향했다. 국가 문화유산 “메가론 콘서트 홀”에서 거행된 미사에는 고대 언어가 현대 음악의 선율에 맞춰 울려 퍼졌다. 이 고대어는 유구한 역사의 세월을 따라 그리스와 유럽뿐 아니라 지중해 연안을 넘어 복음 선포와 함께했던 언어다. 라틴 전례 예식과 그리스어, 아람어, 영어로 바친 보편 지향 기도는 동서로 뻗은 여러 문화를 반영했다. 교황은 그리스도교가 유럽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강론을 통해 대림 제2주일 복음의 두 가지 핵심 단어를 강조했다. 곧, 광야와 회심이다.

광야

교황은 “메가론 콘서트 홀”에 모인 약 2000명의 신자들에게 강론했다. 교황은 광야를 강조하기에 앞서 루카 복음사가가 당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언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인물들 가운데는 티베리우스 황제, 본시오 빌라도 유다 총독, 헤로데 왕과 당대의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있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그들에게 내려온 게 아니라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루카 3,2 참조).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복음의 행간에서 미묘한 아이러니가 나타납니다. 권력자들이 있는 높은 곳에서 갑자기 광야로,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사람으로 넘어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그분의 선택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것들은 인간적인 예상을 벗어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관짓는 권력이나 큰 세력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작음과 겸손을 선호하십니다. 구원은 예루살렘, 아테네, 로마가 아니라 광야에서 시작합니다. 이 역설적인 전략이 우리에게 매우 아름다운 메시지를 줍니다. 곧, 권위 있고 교양 있고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실제로 교만과 하느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면은 가난해야 합니다. 광야가 가난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교황은 “광야의 역설”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자고 초대했다. 이어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은 “많은 사람들이 있고 눈에 잘 띄는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메마름의 공간인 광야에서 설교했다고 말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 생명이 없는 곳에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분께서는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드십니다(이사 41,18 참조).”

“여기 또 다른 위안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그때와 같이 슬픔과 외로움이 넘치는 곳으로 눈을 돌리십니다. 우리는 삶에서 이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박수갈채 속에 파묻혀 있고 그저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는 한, 주님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오지 못하십니다. 하지만 시련의 때에는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우리의 내적 공허 안으로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실존적 광야에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메마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광야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느낄 때, 시련을 겪고 있는 인간과 백성을 어루만지신다. “바로 거기에 주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종종 성공했다고 느끼는 이에게 환대를 받지 않으시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에게 환대를 받으십니다. 가까이 다가감, 연민(가엾이 여기는 마음), 온유한 사랑의 말씀을 통해 오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해방시키시려고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고 바로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다시 주시려고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거기로 오십니다. 하느님께서 오시지 못하는 곳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광야를 택하시는 하느님을 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음을 사랑하시고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 주시려 오시는 하느님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작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작음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숫자가 적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여는 것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메마름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메마른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아테네 “메가론 콘서트 홀” 미사
아테네 “메가론 콘서트 홀” 미사

회심

교황이 강론에서 다룬 또 다른 주제는 “불편한” 주제였다. 곧, ‘회심’이다. “광야는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첫 번째 장소가 아닌 것처럼, 회심에 대한 초대도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첫 번째 제안은 분명 아닙니다.”

“회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쁨의 복음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회심을 생각할 때 발생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영적 슬픔과 좌절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회심하길 바라고,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우리의 결점을 극복하고 변화하길 바라지만, 이내 우리가 그 일을 충분히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넘어지고 맙니다.”

더 너머를 생각하기

교황은 우리의 좌절과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경험했던 것 사이에서 평행선을 그렸다. “우리는 바오로가 이 땅에서 겪었던 것과 동일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8-19).” 교황은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바라는 선을 행할 수 없다면, 회심해야 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의 아름다운 언어인 그리스어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동사 ‘회심하다’의 어원은 ‘메타노에인(metanoéin)’입니다. ‘~을 넘어서’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메타(meta)’와 ‘생각하다’를 뜻하는 동사 ‘노에인(noéin)’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회심한다는 것은 넘어서서 생각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서고, 우리의 상투적인 세계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은 모든 것을 우리의 ‘자아(ego)’로, 우리의 자기중심적 주장으로 축소하는 것입니다. 혹은 인생의 광야가 하느님 현존의 공간이 아니라 죽음의 공간이라는 생각과 ‘우리는 항상 이렇게 해 왔습니다’라는 유혹에 빠진 생각으로 경직되고 두려움으로 마비된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넘어 계시는 분이십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 주목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회심하라고 권고하면서 이에 멈추지 말고 더 너머로 가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의 본능이 말하는 것이나 우리의 생각이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실재)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원고 없이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현실은 우리의 본능보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큽니다.”

“하느님께서 훨씬 더 크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회심한다는 것은 희망을 파괴하는 것이나 삶에서 절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매사에 비관적인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안일함의 늪에 빠질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적 두려움은 우리를 낙담시키고, 우리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것이 잘못됐고,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순간에, 특히 시련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넘어 계시고,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첫 자리를 내어드리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이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우리 안에 오시어 놀라운 일을 하시도록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주님께는 충분합니다. 세상에 오시기 위해 광야와 세례자 요한의 말로 충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이상을 청하지 않으십니다.”

희망의 은총을 청합시다

교황이 ‘메가론 콘서트 홀’에서 행한 강론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각자의 마음에 새겨야 할 “기도”였다.

“하느님과 함께 만물이 변하고, 그분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시며,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바꾸신다는 것을 믿는 은총을 청합시다. 희망의 은총을 청합시다. 믿음을 되살리고 사랑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광야가 오늘날 목말라하는 것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 만남이 예수님의 희망과 기쁨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니,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기뻐합니다. 온전히 거룩하신 우리의 어머니께서 당신처럼 희망의 증거자, 우리 주변에 기쁨의 씨앗을 뿌리는 이가 되도록 우리를 도우시길 청합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희망은 실망시키지 않고,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며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매일 우리가 살고 있는 광야에서도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우리의 삶이 회심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내면의 수많은 광야나 우리 주변의 수많은 광야에서, 바로 거기에서 우리의 삶을 피워내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일 용기와 은총을 주시길 빕니다.” 

“저는 내일 그리스를 떠나지만, 여러분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미사 말미에 교황은 그리스에서 받은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교회의 삶의 원천과 관련된 간단한 그리스어로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에프카리스토(Efcharistó)[감사합니다]!” 교황은 ‘감사를 드린다’라는 이 그리스어에서 “그리스도의 선물을 요약하는 단어인 에우카리스티아(Eucaristia), 곧 성찬례라는 표현이 교회 전체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라는 이 말이 믿음과 삶의 핵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존재와 행동 모두를 하나의 성찬례(Eucaristia),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이자 형제자매들에 대한 사랑의 선물이 되게 하시길 빕니다.” 끝으로 교황은 다음과 같이 인사했다. “저는 내일 그리스를 떠나지만, 여러분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저의 기도와 기억에 간직하며 떠납니다. 여러분도 부디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스 순방 둘째 날 일정은 이날 저녁 교황대사관에서 예로니무스 2세의 친교적 방문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교황과 그리스 동방정교회 수장은 지난 12월 4일 정교회 대주교관에서 이미 만난 바 있다.

아테네대교구장의 “감사”

미사 말미에 아테네대교구장인 테오도로스 콘티디스(Theodoros Kontidis) 대주교가 교황에게 감사를 표했다. “교황님의 순방은 세계 곳곳의 신자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으로서 우리가 보편 교회와 하나돼 있음을 깨닫게 해주며 또한 감사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일은 매번 미사에서 일어나지만, 오늘 우리는 이를 특별한 방식으로 느낍니다. 교황님 안에서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교황 성하, 우리 가까이에 오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 미사를 집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세계 교회를 위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 그리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라고 저희를 격려해 주시는 교황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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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12월 2021, 00:40